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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제의의 변화
2016.3.8
학부 시절 종교학 시간에 종교는 곧 사회를 상징한다는 뒤르깽의 주장이 종교를 사회로 환원시키는 사회학적 환원주의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종교가 정말 사회 자체를 상징하고 사회적 삶을 확인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흔히 동제, 마을굿이라고 불리는 마을제의를 볼 때이다.
마을제의는 마을공동체와 마을 사람들의 평안함을 비는 마을단위의 종교적 행위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마을제의는 마을의 안녕을 위해 마을을 단위로 이뤄지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마을 삶의 공간과 구성원, 삶의 조직과 관행, 규범 등을 확인·인식시키고 전승하는, 마을의 공동체적 삶 자체를 표상하는 종교적 행위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마을의 삶 자체가 종교적 표상으로 드러나는 것은 마을제의의 여러 측면을 통해서 확인된다. 마을제의는 이른바 마을신을 대상으로 하는데, 어떻게 표상되든 마을신은 마을과 마을의 삶을 반영하고, 그것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마을신은 마을을 전제로 그 존재와 의미가 확인되며, 마을 경계 밖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마을신과 마을사람들의 유기적 관계는 마을과 마을사람들의 유기적 관계와 동일시 될 수 있다.
제의준비와 진행과정 역시 마을의 사회적 관행과 규범을 드러내고 확인시켜준다. 그래서 제의준비와 진행과정은 마을제의의 일반성과 아울러 마을마다의 독특한 모습이 나타난다. 제의시간과 공간 역시 마을과 마을의 삶을 드러내고 확인해준다.
마을제의가 행해지는 시점은 마을 삶의 리듬에 의해서 결정된다. 정초와 추수 후 등 생산 활동의 주기와 일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것은 많은 마을이 그러한 시간 리듬을 공유해서 그런 것이다. 기본적으로 마을제의의 시점은 마을의 삶을 반영해 특별하게 정해진 시간에 행해진다. 이런 점에서 마을제의에서 시간은 마을의 특수한 삶을 드러내고 부각시키는 제의적 장치의 하나이다.
마을제의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가시적으로 마을을 상징하고 부각시키는 매체는 마을공간이다. 마을제의는 바로 마을 삶이 이뤄지는 마을공간에서 행해진다. 마을제의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의식하지 못했던 마을공간이 부각되고 확인된다. 마을제의의 한 절차로 행해지는, 마을입구와 주변에 금줄을 치거나 깃발을 꽂는다든지 장승이나 공동우물 등 마을의 경계와 주요 공간을 순회하는 과정은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마을공간의 범위와 경계를 인식시킨다. 유가(游街)돌기나 지신밟기 역시 마을의 공간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는 마을 구성원의 존재를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마을제의에서 공간은 마을과 마을 삶을 표상하는 핵심적인 제의 매체로서 기능한다.
이렇게 본다면, 마을제의는 제의대상인 신, 제의의 시간과 공간, 제의준비와 진행과정 등 여러 측면에서 마을 삶의 공간과 시간리듬, 마을의 구성원, 마을의 관행과 규범 등 마을공동체의 총체적 재인식의 계기를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표면상 마을제의는 마을신에게 마을과 주민들의 안녕과 번영, 삶의 문제해결 등을 기원하는 종교적 행사이지만, 심층적으로는 마을 단위의 “공동체적 삶”이 표상되는 종교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마을제의도 변화한다. 도시화된 마을의 마을제의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공간적 요소의 의미 약화이다. 마을제의 절차에서 가장 먼저 생략되는 것이 마을의 경계를 설정하고 마을공간을 순회하는 등 마을공간을 대상으로 한 행위이다. 그러한 행위는 잠재상태에 있던 마을공간에 대한 인식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독립된 소우주로서의 마을인식을 가능케 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마을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절차가 약화되거나 소멸되는 과정이 지속될 경우, 마을제의가 과연 이른바 지연 공동체 제의로서의 성격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는 제의참여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도시지역 마을제의에서는 그 마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마을제의에 참여하지 않는다. 마을 거주민 가운데 일부인 이른바 원주민, 토박이들만이 참여한다. 따라서 현재 도시의 마을제의는 마을이라는 삶의 공간에 기반을 둔 제의에서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토대로 한 제의로 그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마을제의에서 공간적 요인의 약화, 소멸이 두드러지는 것은 자연스런 변화로 보인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에서 공간이 차지하는 의미의 변화를 생각할 때 그렇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은 말 그대로 거주공간에 지나지 않을 뿐 더 이상 삶의 공간으로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삶의 공간이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삶과 공간 사이의 유기적 관련성에 대한 믿음 역시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이주(移住)는 이제 자연스런 삶의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도시화된 마을에서 마을제의가 보이는 변화의 양상은 이러한 현재 삶의 모습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용범_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조교수
최근 논문으로는 <동막도당굿의 특징-굿의 주체와 진행방식, 종교적 성격을 중심으로->, <개념과 실재: 민간신앙 인식에의 물음> 등이 있고, 저서로 《도시마을의 민속문화》(공저),《전통과 역사의 마을 조탑》(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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