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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단상
2016.3.22
멋진 일이다. 세상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둔다는 사람과 다섯 번 대국을 해서 4대1의 압승을 거둘 정도로 뛰어난 인공지능이 개발되었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근사한 일인가? 지난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은 그 대국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그로 인해 인공지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제고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여러 매체들이 알파고의 하드웨어 구성과 소프트웨어 알고리듬에 대해 상당히 전문적인 수준의 정보들을 기사화했다. 물론 이는 몇 달 전 알파고의 작동방식에 관한 논문이 《네이처》에 게재되고 몇몇 매체들에서 기사화한 이래로 조금씩 진행되었던 일이다. 그러나 알파고의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이세돌과의 첫 대국에서 알파고가 승리하면서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알파고의 승리에 대한 매체들의 보도 방식은 꽤 흥미로운 것이었다. 매체들은 과학기술의 놀라운 진보에 대한 환영과 축하의 메시지 속에서 알파고의 승리를 기사화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체들은 ‘우리 편’ 이세돌 9단이 당한 패배의 충격을 강조하고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들에게 엄습할지도 모르는 불안한 미래에 호소하면서, ‘상대 편’ 알파고의 작동방식을 소개하는 형식의 기사를 쏟아냈다. 이러한 구도의 논의는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꽤 전문적인 영역의 정보를 대중들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파고의 작동방식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기사들을 통해 ‘몬테카를로 트리탐색(MCTS)’,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 ‘딥러닝(Deep Learning)’ 등의 전문용어에도 어느새 익숙해져 막연하게나마 알파고의 핵심기술에 대한 약간의 개념적 이해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알파고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과 논평을 내어놓았고, TV의 몇몇 채널에서는 관련 전문가들의 토론회도 방영되었다. 거기서 알파고의 바둑은 ‘사람의 바둑’과 다르다든지, 알파고가 ‘인간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했다든지, 알파고가 인간처럼 ‘직관과 추론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든지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 나왔으며, 그에 대한 갖가지 서로 다른 의견들도 제시되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의 바둑’, ‘인간의 실수’, ‘인간의 직관과 추론 능력’ 등이 마치 자명한 것처럼, 혹은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얘기할 만큼 그런 ‘인간적인 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알파고의 바둑능력은 분명 경이롭다. 그러나 그 알고리듬은 인간 마음의 작동방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파악된다. 축적된 인공지능 분야의 지식과 알파고 개발자들의 기술을 준거로 할 때, 알파고의 알고리듬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직까지 우리는 인간이 바둑을 두는 동안 뇌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이는 프로기사에게 바둑을 두는 동안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를 꼼꼼히 물어본다고 해서 확보할 수 있는 부류의 지식이 아니다. 두뇌의 작동방식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의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은 가장 최근에 들어서야 인지과학과 뇌신경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이러한 부류의 지식에 조금씩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바둑의 맥락에서만이 아니라, 정상적인 두뇌를 지닌 인간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실수나 직관 및 추론과 관련한 인지체계, 또 그와 함께 작동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정서체계들에 대한 지식도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즉, 우리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그것이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지는 않을 것이라 예견한다. 언젠가 과학이 인간의 실수, 직관, 추론, 감정 등의 인지적 기반들을 충분히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예술을 향유하고, 사랑에 빠지고, 다투고,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믿음을 갖기도 하는 복잡한 인간의 삶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사실, 인공지능의 발전은 광의의 인간학적 지식 특히 인간 마음/뇌에 대한 지식의 발전과 상보적이다. 마음/뇌에 대한 지식은 인공지능의 알고리듬 개발에 기여하고, 인공지능의 알고리듬은 마음/뇌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알파고가 불러일으킨 놀라움은 광의의 인간학에 남겨진 수많은 과제를 환기시켜준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의 알고리듬이 경이롭기는 해도 신비로운 것은 아니듯이 인간학의 여러 과제들도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신비’가 아니라 과학적 지식의 진보와 함께 답변을 탐색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이는 ‘종교’라고 불리는 복잡한 인간 삶의 양태를 연구하는 종교학자들에게도 분명히 유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종교학자들은 “왜 세계의 (거의) 모든 곳의 사람들이 종교문화를 갖고 있는가?”처럼 ‘호모 렐리기오수스’라는 말로 환원되어 더 이상 물어지지 않던 질문이나, “왜 사람들은 종교를 위해 살해하고 자살하는가?”와 같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끈질기게 물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며,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물음자체를 더욱 적합한 질문으로 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구형찬_
서울대학교
논문으로 <멍청한 이성: 왜 불합리한 믿음이 자연스러운가>,〈'인간학적 종교연구 2.0'을 위한 시론:'표상역학'의 인간학적 자연주의를 참고하며〉,〈다시 상상하는 마나: 그 역학(力學)과 역학(疫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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