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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헝가리인 한국 여행자버이 피테르의 저서 동양의 황제들과 황제국동반구에서

 

news letter No.805 2023/11/21

 

 

 

 

버이 피테르(Vay Péter, 1863-1948)백작은 헝가리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가톨릭 주교이자 선교사제이다. 버이 백작은 헝가리를 건국한 7개 부족 중 하나인 유서 깊은 대귀족 가문인 버이가()의 일원으로, 애당초 외교관이 될 운명이었으나, 로마에서 학업을 마친 후 1898년 헝가리의 에스테르곰 대교구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후 버이는 헝가리에서 사제로 활동 한 후,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로서 1903년부터 1914년까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기구 및 사업을 점검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다.

       버이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며 알게 된 한국의 가톨릭 상황에 관심이 많았던 듯하다. 그는 1902, 1906, 1916년 등 수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으며, 그때의 경험을 동양의 황제들과 황제국(Kelet császárai és császárságai, 1906)동반구에서(A keleti féltekén, 1918)라는 저서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당시 헝가리인은 물론이고 유럽인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서적을 헝가리에서 헝가리어로 출판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버이는 교황 사절의 임무만이 아니라 수집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많은 예술 작품과 골동품을 구입하였고, 이것을 부다페스트에 소재한 호프 페렌츠(Hopp Ferenc)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그의 기증품을 토대로 이 박물관의 전시실이 완성되었다. 호프 페렌츠 박물관은 현재에도 관람객을 위한 상설전시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헝가리에서 아시아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소장품을 연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헝가리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아시아 연구자들이 꼭 방문해야 하는 필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버이는 1918동반구에서가 출간된 이후 헝가리를 떠나 아시시의 수도원에 정착한다. 이 시기는 헝가리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는 와중이었는데, 9세기 말 버이 가문이 자리를 튼 트랜실바니아 지역은 루마니아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버이가 헝가리를 떠난 이유는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후 버이는 수도원에서 은둔하며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있다.

 

버이의 첫 번째 저서인동양의 황제들과 황제국은 헝가리에서 출판된 후 1년 반 만에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20세기 초반 아시아의 각국 사정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여러 일간지와 서평 잡지에 이 책에 관한 기사가 실렸으며, 식자층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이 책은 총 465페이지의 단행본으로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17장의 컬러 그림, 86개의 단어 설명 그림, 50개의 부록(보조 삽화)이 포함되어 있다. 책은 소개본문’, ‘부록3장으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소개장에서는 자신이 여행한 여정에 따라 지나온 곳의 개요를 설명한다. 그가 동양의 황제국으로 소개한 나라는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이다. 이 나라들에 대해 간략한 개요를 서술하는데, 러시아 황제와 황제의 가족에 대해서는 따로 한 장을 할애하여 설명한다. 당시 러시아를 동양으로 간주하던 풍토가 잘 드러나 있다. 본문에서는 각국의 사정을 백과사전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한국에 관해 서술한 부분은 225쪽부터 362쪽까지이다. 130여 쪽에 걸쳐 한국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고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한국의 지리, 풍물, 문화, 역사에 대해 여러 자료를 인용하여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 관한 서술의 말미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 중 하나이며, 지구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매혹적인 지역이다라고 우호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에 관한 서술에서는 한국이 처한 국제적 환경, 중국과의 관계, 한국과 일본의 갈등의 역사, 한국에 대한 일본의 야욕에 대해서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국에 관해 서술한 중요한 또 다른 저서가 동반구에서이다. 이 책은 1916년에 저술하여 1918년 출간되었는데, 특히 이 책에서 한국의 가톨릭 상황에 관해 서술한 내용이 주목을 끈다. 그는 한국인의 종교적인 태도에 대해 한국과 한국 사람이 기독교에 대해 가장 수용적이며, 가톨릭의 윤리와 교리를 더 진지하게 인식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서술한다. 특히 한국에서 최초의 가톨릭 사제들이 활동을 시작한 지 반세기도 되지 않아, 50개의 본당과 5만 명이 넘는 신도를 보유하고 있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유럽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에서 들을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정확하게 대답하고, 고전 라틴어로 자신을 유창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놀라운 감정을 표현한다. 아마도 용산의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나눈 대회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듯하다. 또한 한국인의 신앙심에 대하여 한국인의 가톨릭 수용 자체가 기적에 가까우며, 잔인한 박해와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역적으로 대구와 부산이 앞으로 한국의 가톨릭 신앙과 문화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본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국의 가톨릭 교회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한국 진출과 활동에 관해 서술한 내용도 흥미를 끈다. 버이는 자신이 1905년 베를린의 선교사 총회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한 독일의 성 오틸리엔(St. Otilien) 베네딕토회 수도원장과 여러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물론 베네딕토회의 기록을 대조하며 확인해 보아야겠지만, 기록의 사실 여부를 떠나 유럽의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하는데 버이가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는 점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 가톨릭교회의 초기 전교 상황에 대해 파리외방전교회, 베네딕토회 등의 기록과 더불어 버이의 저서와 대조하며 검토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것이다.

 

동양의 황제들과 황제국동반구에서에는 당대 유럽 최고의 귀족이자 성직자, 지식인이었던 버이의 식견과 혜안이 잘 드러나 있다. 당시에도 한국과 일본 등을 여행하고 기록을 남긴 저자들이 있었으나, 버이 정도의 학식과 경륜을 갖춘 저자는 드물었다. 대부분 그들의 저서들이 일본의 선전을 그대로 답습한 내용이 주류였다는 점에 반하여, 버이의 저서는 한국에 대해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했던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버이의 저서는 저자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으로 인해 정책결정자와 상류사회, 지식인의 관심을 끌었고, 서평과 책 소개 글도 여러 일간지에 실렸다는 점에서 당시 유럽인의 동양관과 한국관을 정립하는 데 일조하였을 것이라는 점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지영_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논문으로 〈미국과 영국의 트란실바니아 문제 해결 방안: 1941-1947〉, 〈헝가리의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기억 논쟁〉, 〈헝가리 백과사전에 나타난 한국에 대한 서술: 1833-1930〉등이 있고, 저서로 《메타모포시스의 현장: 종교, 전력망, 헝가리》(공저), 《헝가리 현대사의 변곡점들: 역사의 메타모포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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