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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자의 시선으로 시작된 신화 연구, 그 이후

 

 

 news letter No.807 2023/12/5

 

 

 

 

 

올해는 주목할 만한 종교학 서적이 잇따라 출판되는 반가운 일이 있었다. 지난 4월에는 유기쁨 선생님의 애니미즘과 현대세계: 다시 상상하는 세계의 생명성, 이어 7월에는 방원일 선생님의 개신교 선교사와 한국종교의 만남이 간행되었다. 이미 두 책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있었고, 여기서는 그러한 평가와는 별도로 개인 공부와 관련하여 신화 연구에 이 책들이 길라잡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피력하고 싶다.

 

애니미즘과 현대세계는 고전 종교학의 애니미즘에 대한 이해, 더 나아가 애니미즘 개념을 새롭게 사유하고 해석하여 저자는 인류가 직면한 생태적 위기에서 이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길을 모색하였다. 특히 이 책에서 고전 종교학 이론을 새롭게 사유함으로써 당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 대안을 찾는 시도는 신화 연구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개신교 선교사와 한국종교의 만남에서 제1장은 종교라는 말 대신 신화를 대입해도 무방할 만큼 초기 종교학과 초기 신화학의 뿌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골치아픈 종교 정의 문제와 관련하여 종교 개념은 현상을 다루는 학술적 도구로서 인식하여 그 유연성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또 초기 종교학과 초기 한국 선교는 서구적인 종교 개념을 확장해 보편적 개념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종교들을 비교의 시선으로 성찰하고, 자기 개념을 수정하는 과정을 겪는다는 점에서 양자가 겹친다는 문제의식은 한국의 초기 신화학 이해에 시사점을 준다.

 

새삼스럽지만 19세기 말 ~ 20세기 초 한국 신화 연구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당시 한국(朝鮮) 내부에서는 신화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우리 신화를 처음 연구한 집단은 외국인들이었다. 인도-유럽 신화학에서 볼 수 있듯이 근대 신화학은 제국 사업의 일환으로 유럽 제국에서 파견된 유럽의 비전공자들이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시기의 한국 신화 연구의 초석을 마련한 외부자들은 두 가지 부류로 대별된다. 우선 19세기 말에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개신교 선교사들, 이보다 앞서 한국에 정착한 가톨릭 신부들이다. 이들은 효과적인 해외 선교를 위해 한국 신화를 수집하고 연구하였다. 1914년에 성공회 신부 세실 허지스(Cecil H. N. Hodges)가 한국의 신화와 민담 연구를 촉구하는 글을 기고하였는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그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1)

 

현재 한국은 망국(亡國)을 의식하고 있으며, 일본과 서양의 문명에 어리둥절해 하면서 자신의 관습과 옛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경멸하고 잊으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옛이야기를 우습게 여기고 무익한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으며, 그런 것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탓하고 있다.

 

당시 서양 선교사들은 신화를 인간 문화 이해의 중요한 통로로 여기고 그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이러한 전승을 무익하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허지스는 한국의 신화 연구의 시급성을 주장하며, 신화 연구를 통해 인류의 동일한 발전 경로를 확인하고자 했다.

 

또 다른 외부자 집단으로는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을 제공했던 일제의 관학자들이 있다. 서양 선교사들과는 달리 이들은 동양사 혹은 고대사를 전공하는 사학자 집단으로 관학 아카데미즘의 전형이다. 1894년에 조선고사고(朝鮮古史考), 단군고(檀君考), 1924년에 단군 전설에 대하여에서 단군을 전설이라고 칭하면서 그 사적 및 상고사를 부정하여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논란은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에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신화연구를 촉발함으로써 한국 신화학 태동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특정한 문헌 신화 중심의 연구, 신화와 역사의 이분법으로 인한 소모적인 논쟁 등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불씨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신화, 종교라는 말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서구에서 형성된 용어로서 어떤 현상을 다루는 학술적 도구로 인식되어야 한다. 아울러 근대성의 산물인 신화-역사, 종교-세속의 이분법을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 신화가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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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ecil H. N. Hodges, “A Plea for the Investigation of Korean Myths and Folklore,” Transactions of the Korean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Vol. V, Part I, 1914.

 

 

 

 

 

 

 

하정현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1920-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의 형성과 전개>,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신화와 신이, 그리고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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