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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 힙함이란 무엇인가
news letter No.834 2024/6/11
지난 4월 초, 여러 SNS는 불교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2024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가 유례없는 대성황 속에 진행된 탓이었다. 이 행사는 불교문화를 확산하고 관련 상품들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2013년 이후 꾸준하게 개최되고 있지만, 올해처럼 화제를 끈 일은 없었다. 그 핵심에는 뉴진 스님의 특별무대인 “극락도 락樂이다”가 있었다. 뉴진 스님은 옛 개그콘서트에서 ‘대머리 동네 바보 형’ 캐릭터인 ‘빡구형’으로 이름을 알린 코미디언 윤성호의 ‘부캐’다. ‘부캐’는 온라인 게임에서 유래한 용어로, 오늘날 연예계에서는 실존 인물이 본래의 자신과는 다른 인격의 가상 인물을 연기하고, 주위에서도 그를 해당 가상 인물로 취급해 주는 현상을 말한다. 윤성호는 자신의 부캐인 가상의 불교 승려를 창출하고 디제잉과 댄스 콘텐츠로 2023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엄숙한 법문이 어느 순간 EDM으로 변주되고, 근엄한 승려를 연기하다 갑작스레 목탁 댄스가 시작되는 ‘낙차’가 웃음 포인트다.
애초에 뉴진 스님과 실존하는 교단 불교 사이에는 별다른 연계가 없었다. 다만 윤성호는 이미 삭발 상태로 활동하는 코미디언이었고, 어릴 적 ‘일진(日進)’이라는 법명을 받은 적도 있는 불교 신자였다. 그래서 이 캐릭터의 초기 활동명은 ‘일진 스님’이었고, 유튜브, 방송, 지역행사 등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게 되면서 불교계에서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뉴진 스님’이란 ‘일진’이라는 단어가 가진, 아마도 웃음을 위해 의도되었을 중의적인 의미를 희석시킬 겸 해서 조계종 소속 승려가 직접 부여한 새로운 법명이었다.
불교계 행사에서의 공연 기록은 2023년 서울의 연등회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당시의 영상을 보면, 이때의 관객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거리의 행인들이었고 승려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일반적인 클럽 음악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불교적인 가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EDM과 디제잉이라는, 클럽 문화에 익숙한 청중들은 그의 공연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나에게 더욱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경북 포항의 지역 축제에서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언제든지 몸을 흔들 준비를 하고 전원 기립해 있었던 서울 시내 연등회의 젊은이들과는 달리,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청중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고, 맨 앞자리에는 불교 승려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장삼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뉴진 스님(당시에는 일진 스님)에게 상당수가 불교 신자인 관객들은 합장으로 인사를 했고, 잠시 후 그는 “부처 핸섭”을 외치며 광란의 댄스를 시작했다.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한 채, 그러나 흥을 감추지는 못하고 합장한 손을 허공에 찌르며 호응하는 노년 관객들의 모습이 압권이다.
이 공연에 잠재해 있던 논란의 소지는 최근에야 가시화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주최 행사인 서울국제불교박람회가 흥행하며 주요 언론들에까지 보도되었고, 2024년 연등 행사에서 “극락왕생”, “이 또한 지나가리”, “부처님 잘생겼다”를 연호하는 공연이 공중파에 소개되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국면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공연이 현지의 불교계와 정계의 비판을 받으며 무산된 사건이었다. 이들 국가에서는 그가 진짜 승려가 아니며, 불교에 대한 희화화, 모독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단순히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차원을 넘어서, 이 공연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불교계 언론인 《법보신문》의 지면에서 이루어진 공개 논쟁이다. 봉녕사금강율학승가대학원 정현 스님은 뉴진 스님의 행보에 대해 “염려하는 반응이나 부정적 댓글이 달리면 케케묵은 사고방식 혹은 고지식한 꼰대의 생각으로 몰아가는 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하며, 출가자가 아닌 사람이 삭발을 하고 승복을 입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뉴진 스님의 공연이 힙하고 파격적인 불교라는 이미지를 전달해 전법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출가 승려의 복장으로 이루어지는 풍자와 패러디에는 많은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동국대 백상원의 일윤 스님은 대중은 대중문화 속의 풍자 및 패러디와 현실의 승려를 구분할 수 있으며, 승복 착용을 규제하는 것은 대중문화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불교의 유연함을 제한하는 일이라고 반박하였다. 이에 정현 스님의 재반박이 이어졌다. 승복은 군복과 마찬가지로 착용자의 의무와 역할을 표시하는 제복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풍자는 군복의 ‘밀리터리 룩’과 같은 ‘몽크 룩’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뉴진 스님이 무대에서 입고 있는 옷은 출가한 승려들에게조차 일상복이 아니라 의례 상황에서 가사와 함께 착용하는 정장인 ‘장삼’이다. 더구나 이와 같은 공연이 단순히 젊은 세대의 불교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포교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조차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한 일윤 스님의 재반론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그에게 ‘굳이’ 장삼까지 입히며 불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섭외하는 것을 보면서, 탈종교 시대의 불교 인구 감소라는 위기 속에서 대중과의 소통 방식을 고민하는 현 조계종 지도부의 절실한 고민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이후 가속화되는 ‘탈종교화’ 현상 속에서 제도종교 소속 인구의 감소는 일반적이지만, 한국 불교에는 몇 가지 더욱 심각한 위험 요소들이 나타난다. 그 핵심은 젊은 세대 신자의 감소다. 조사 방법이나 시기에 따라 수치에는 차이가 있으나 오늘날 20대 이하의 불교 인구는 소멸 수순에 가깝다. 세대 간 종교소속 유지율도 낮으며, 포스트코로나 국면의 회복 탄력성도 낮은 편에 속한다. 출가자 수와 재가 신도 인구 모두에서 미래를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계율 체제를 위협하는 파격과 대중화를 통해서라도 위기를 돌파하는 것이 옳은가, 오히려 전통적인 원칙들을 지켜나가면서 불교의 매력을 알려 나가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해당 공동체의 전략적 선택에 달린 문제다. 종교학자가 말을 얹을 만한 비평은 규범적인 차원보다는 효과에 대한 것이다. 대다수 매체에서 평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뉴진 스님 현상이 보여주는 것은 불교의 ‘힙함’이 아니라 ‘쿨함’에 가깝다. 그의 공연은 처음부터 불교의 전법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불교와 승려의 엄숙한 이미지를 활용하여 그것을 반전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불교 종단이 기여한 지점은 자신들의 권위를 손상시킬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승인하고 일정 부분 지원한 유연함 정도다.
이것을 ‘부캐’ 문화와 관련하여 풍자의 대상이 ‘쿨함’을 발휘한 또 다른 예와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보랏 사그디예프Borat Sagdiyev는 영국의 코미디언 사샤 배런 코헨Sacha Baron Cohen이 창조한 부캐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두 편의 영화에서 가상의 카자흐스탄인인 보랏은 미국 문화를 체험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 미국 극우와 트럼프주의, 반유대주의를 찬양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상이 카자흐스탄에서는 이미 일상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묘사하는 카자흐스탄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노예고, 홀로코스트를 기념하며 유대인들을 학대하고 추방하는 연례행사가 있으며, 유치원 아이들에게 소총을 들려서 군사훈련을 시키는 극우의 낙원이다.
이 ‘풍자’의 궁극적인 타깃은 미국의 우익이지만, 직접적으로 비하된 것은 카자흐스탄이다. 당연히 카자흐스탄 정부와 이민 사회는 공개적으로 이들 영화에 불쾌감을 표했다. 보랏이 유행한 이후 관광객이 크게 늘어난 것을 알고는 자국의 관광 홍보에 보랏의 유행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관심’이 핵심적인 자본이 되는 21세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것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뉴진 스님은 불교에 대한 관심을 그다지 부정적이거나 공격적이지 않은 승려 풍자를 통해서 끌어냈다. 종단 입장에서는 그다지 개입한 일이 없음에도 찾아온 호재에 반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관광 마케팅과 종교의 전파가 어느 정도나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역시 검증되지 않은 문제다.
뉴진 스님의 유행 이후 온라인에서는 “불교 또 나 빼고 재밌는 거 하네”라는 밈이 유행하였다. 현대 한국 불교의 힙함을 상징하는 이 문구에서 핵심은 ‘재미’다. 온갖 상담에 응해 주는 AI불상이나 기발한 불교 굿즈, 승복 입은 DJ가 가져올 수 있는 효과는 고리타분한 종교전통이라고 생각했던 불교를 가지고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경험까지다. 불교 종단에서 기대하는 ‘전법’ 효과는 그 재미를 실재하는 불교 전통과 연결시킬 수 있을 때에만 발생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거론된 파격적인 불교적 콘텐츠들의 재미는 사실 현실 불교에 대한 반작용이다. 정적이고 엄숙한 종교 전통이라는 재료를 떠들썩한 놀이의 장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에 가져온 카타르시스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뉴진 스님의 재미는 현실의 불교가 재미없기 때문에 나타난 부수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이런 공연을 불교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조직 차원에서 동원하려 드는 순간 대중의 흥미는 빠르게 식을 것이다.
뉴진 스님 현상을 통해 불교 종단이 얻은 이익은, ‘대중문화가 불교를 가지고 놀아도’ 화내지 않는 ‘쿨함’을 과시함으로써 자신들이 그렇게 꽉 막힌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는 것 정도에 한정된다. 반면 불교적 ‘힙함’은 그와는 반대의 실천에서 드러날 수 있다. 즉, ‘불교가 대중문화를 가지고 노는’ 상황이다. 뉴진 스님류의 현상에 비해서는 그다지 자극적이지도 않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그런 시도의 몇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몇 해 전 화제가 되었던 “쇼미 더 붓다Show me the Buddha” 공연이다. 동국대 백상원 소속의 젊은 승려들이 힙합 형식으로 출가의 동기와 승려의 일상, 팔정도의 교리를 표현한 이 퍼포먼스는 당시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졌지만, 일회적인 교내 행사로 그쳤다.
또 다른 사례는 한 승려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재한 불교 웹툰이다. 이것은 영화, 만화, 인터넷 밈 등을 자유자재로 패러디하며 불교 경전 이야기를 기발하게 풀어낸 일련의 작품들이다. 공권력 밖에서 범죄와 싸우는 자경단인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은 억불 사회에서도 수행을 이어가는 승려인 <그레이 나이트>로, 악당을 일격에 날려버리는 히어로를 그린 만화인 <원펀맨>은 깨달음으로 온갖 번뇌를 날려버리는 <원각맨>으로 패러디된다.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명장면은 붓다와 데바닷타의 대립을 그린 <붓다의 기묘한 모험>으로 재창작되었다. 이들 웹툰은 온라인상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지만, 언론 노출은 공중파 방송의 유튜브판에 작가 인터뷰가 소개된 정도다.
뉴진 스님의 공연에 대한 불교계의 반응은 분명 한국 불교 종단의 ‘쿨함’을 보여주지만, 아직은 그것이 ‘힙한 불교’로 이어지려고 하는 어떤 정황도 감지되지 않는다. 종단 밖의 대중문화가 불교를 가지고 노는 것을 단순히 방임하며 그것을 활용하는 일에는 종단 차원의 책임도, 변화도 필요 없다. 언젠가 문제가 발생하면 처음부터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처럼 외면하면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대중문화를 가지고 놀며 ‘불교적 힙함’을 추구하는 젊은 승려들의 산발적이지만 창의적인 시도는 종단 지도층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불교는 앞으로의 세대에게 불교의 매력을 전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성패는 내부에서 분출하고 있는 이 자생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한승훈_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
최근 저작으로 〈무당이즘, 점복, 의례: 김효경 무속 연구의 주제들〉, 〈전근대 동북아 종교 범주로서의 교(敎)〉, 《왕의 수명을 줄여라: 반역 사건으로 보는 조선의 이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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