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理): 인간과 자연의 접점 news letter No.790 2023/8/8 동아시아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리(理)는 흔히 원리(principle)나 패턴(pattern)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에 대한 이의도 제기되고 있다. 1986년에 윌러드 피터슨은 성리학의 리를 ‘coherence’(어우러짐)로 번역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후에 브룩 지포린은 피터슨의 아이디어를 중국철학사 전체로 확장시켰다. 2012~2013년에 나온 Li(理) 연구서 2부작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시카고대학 신학대학원에서 행한 강연에서 주자학의 리 개념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물었다: “마른 나무에도 리가 있습니까?” 답했다: “사물이 있으면 리가 있다. 하늘은 붓을 만들지 않았다. 사람이 토끼..
에드워드 호퍼의 빛의 시선이 머문 길 위에 대한 단상 news letter No.789 2023/8/1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는 독일 철학이 실패했다고 하면서 그 비유로 당대의 독일 학계의 동료들이 쓴 글들이 그에게 부담스러울 정도의 묵직한 삶을 요구하기에 너무 익힌 채소 내지 고기와 같다고 보고 자신의 글과 인성이 그 맛이 풍성하면서도 가볍고 섬세한 만족감을 통해 정갈하게 기운을 북돋는 맛있는 리소토(risotto)와 같기를 바랐다고 한다. 한편 이처럼 니체에게 부담스러웠던 헤겔(George Wilhelm Friedrich Hegel)이나 칸트(Immanuel Kant)의 논리를 당대의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lio Ficino)는..
기후변화의 함의를 생각한다 news letter No.788 2023/7/25 요즘 뉴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종잡을 수 없는 날씨이다. 과거의 기록을 깨는 고온과 가뭄, 그리고 재앙적인 산불이 빈번히 일어나는가 하면 일 년 치에 해당하는 분량을 하루 이틀에 퍼부어대는 폭우도 마치 흔한 일처럼 되고 있다. 태평양, 인도양, 지중해, 대서양을 빙 돌아가며 북반부의 바다가 빨갛게 익어감에 따라, 갈 곳을 잃은 물고기는 배를 드러내고 물 위로 떠오르거나, 육지를 피난처로 여겨 상륙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북극에 가까운 지역의 기온이 현재 40도에 육박하고 있다니, 시베리아 등지의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는 건 불문가지다. 그 밑에 저장되었던 대규모의 메탄가스가 분출하여, 온난화의 악순환을 가속화하는 것도 ..
‘사유의 방’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사유하다 news letter No.787 2023/7/18 지난 7월 12일 밀란 쿤데라 별세의 소식을 들으며 초짜 강사 시절 강의실에서 그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화두처럼 들먹였던 젊은 날의 표박이 떠올려진다. 알 수 없는 혼돈에 사로잡혀 만성적인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은밀히 그걸 즐기기까지 했던 당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대로 내 안에서 ‘참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무거움’과 거의 겹쳐져 있었다. 쿤데라는 에세이집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에서 인간을 ‘안개 속으로 나아가는 자’로 정의 내린다. 어둠이 아니라 안개이다. 어둠 속에서는 맹목이며 자유롭지 않지만, 안개 속에 있는 자는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누구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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