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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12호-거리응원의 종교문화적 함의(박승길)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25. 16:01

"거리응원의 종교문화적 함의 "

2010.6.29



6월의 한반도를 뜨겁게 만들었던 월드컵 열기는 아쉬운 우루과이와의 16강전 패배로 식어들었다. 여전히 이 기간 중에도 우리만의 새로운 축제마당이었던 거리응원전은 그 열기의 중심부를 태우고 있었다. 2002년 월드컵 기간 중에 쏟아져 나온 거리응원 인파는 2,100만명으로 집계된 바 있듯이, 이제 붉은 티셔츠의 거리 응원 인파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문화 컨텐츠가 되었다. 한국인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우리의 거리응원은 2006년에는 독일 월드컵에서 독일이 팬 축제장(Fan Fest)을 만들게 하였다.

뒤르껨(E.Durkeim)은, 이런 광기어린 집합적 열기는 도덕적 밀도를 높여 종교성을 간직한 집합 표상으로 사실화된다고 했다. 누구나 존경심을 갖고 따라야할 도덕적 힘의 발생이라는 관점에서 종교와 사회의 기원론을 찾던 그의 눈에는, 호주원주민들이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그들의 잔치인 코로보리(corrobbori)가 행해질 때는 쉽게 자제력을 잃고 격렬한 흥분 속에 빠져들면서 특별한 힘들과의 관계를 맺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세계를 체험함에 주목하여 얻어진 결론이었다. 그런 뒤르껨의 논리를 빌린다면, 거리응원 열기 그 자체가 열광적 축제이라는 점에서 분명 어떤 종교적 함의를 엿볼 수 있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흔히 현대를 가름하는 포스트모던의 특징으로 서사주의(narrativism)를 말한다. 서사행위가 사회관계의 가치이념으로 작용하는 서사주의 사회란, 이야기를 하는 화자와 듣는 청자가 서로 소통하는 것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네트워크사회로 대변되는 정보화사회는 매체를 이용한 자아와 타자와의 소통을 절대적 가치로 삼는다. 같은 관심사를 두고 타자와 감정을 나누는 소통행위는,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표현을 빌리자면, ‘타자와의 근접성에의 반응’으로서 타자의 존재에 대한 책임윤리를 필요로 한다. 근접성은 밖으로부터 나에게 가해지는 무게로서, 그것은 자아라는 고립성속으로 들어와 나의 에고이스트적인 즐거움을 방해하는 타자에 복종하도록 한다. 이와 같이 타자가 자아 속에서 자리 잡게 되는 것을 그는 대속(代贖;substitution)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대속을 통해 타인이 아닌 나에게 속한 나의 존재는 비로소 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서사주의속에서 찾을 수 있는 소통의 가치는 타자의 존재에 대한 무한 책임을 대신 지는 대속이라는 종교적 가치도 포함한다. 그런 대속적 책임윤리의 대상이되는 타자에는, 현대의 상대주의 문화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 천상에 존재하는 신, 외계인, 성령, 때로는 사탄 등도 포함될 수 있다. 흔히 현대의 영성주의나, 뉴에이지운동, 오순절운동, 심지어는 사타니즘 등에서도 보여지는 어떤 타자이든 소통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 오늘날 종교문화의 새로운 특징이기도 하다.

현대 소비사회는 차이의 숭배로 설명되듯이, 차이가 있는 경쟁력으로 각 개인을 분리하여 차별화시킨다. 동시에 일자리의 축소와 예측불가능한 금용자본주의의 파고, 잦은 테러리즘, 환경파괴 등은 현대인의 불안을 가중시켜 위기사회로 지칭되기도 한다. 이런 경쟁적 가름과 불안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타자의 존재에 대한 책임이 강조되는 하나됨을 만드는 소통에의 목마름은, 이미 2002년의 거리응원을 목도한 세대들의 참여정부탄생에의 적극적 참여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사회의 새로운 구원에의 목마름일 수도 있다.

축구나 야구와 같은 대중적 스포츠가 월드컵과 같은 국가간 경쟁일 경우 등장하는 우리의 거리응원은, 전통적으로 의례적 권위주의가 억제시켜 온 타자와의 거리낌없는 소통의 장을 열여줌으로써 ‘억압된 나’의 구원뿐 아니라 선수를 포함한 타자의 존재의 책임을 지고 가는 대속의 장이었던 셈이다. 그 점에서 거리응원은 소통을 통한 하나됨의 구원을 기대하는 세대들의 집회였는지도 모른다.

박승길_

대구가톨릭대학교 sgpark@cu.ac.kr

저서로 <<현대한국사회와 SGI>>,<<한국사회사연구>>,<<한국내 일본계 종교운동의 이해>>등이 있고, 역서로 <<현

대세속화이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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