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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10호-민중의 종교, 그 존재방식(심형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20. 16:19

"민중의 종교, 그 존재방식"

2010.6.15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은 종교에 관한 가장 ‘악질적’인 문구로 익히 알려져 있는 말이다. 마르크스가 사용한 이후로 공산주의자들의 종교관을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대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이보다 강력한 ‘반종교론’을 찾아보기 어렵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마약이 가지고 있는 위상을 고려할 때 그 규정의 강도를 상상할 수 있는데, 일찍이 민중의 삶에서 ‘거짓’과 ‘환상’으로 이루어진 가르침이 위안을 줄 뿐 어떤 의미도 있을 수 없다는 발상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종의 지식인들의 세계인식이기도 하였다. 독특한 것은 ‘아편의 비유’일 뿐이지, 고래로 지식인들은 ‘환상’을 믿으며 현실의 위안을 찾는 민중들의 삶의 방식에 이러한 진술을 해왔다는 것이다.

‘참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예부터 지금까지 지식 활동의 근본 목표였다. 과거의 버전이 ‘진리’였다면, 지금은 ‘사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의 시선에서 볼 때, 과거의 ‘진리’도 사실의 토대 위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또 미래의 시선으로 볼 때, 지금의 사실이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의 토대 위에 있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각 시대의 시대 언어에 따른 ‘현실 감각’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당해 시대의 ‘현실 감각’이 참과 사실성을 규정짓는다고 할 때, 그러한 참된 세계가 감내할 수 없거나 불안을 불러오는 경우라면 현실감각에 따른 판단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민중의 아편이 작동하는 영역이 부조리한 현실의 소외를 견디기 위한 것이라면 그러한 현실의 구조가 불식되지 않는 이상, 환상에 의존한 다른 현실 감각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식자들이 주로 던지는데, 거기에는 묘한 지향성의 차이가 존재한다. 지식계급의 ‘세계 인식’과 비지식계급의 ‘현실 인식’은 지향성 자체가 다르다. 지식 지배의 목적과 현실 감래의 목적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참된 사태의 인식이 참된 해결책을 결정해 줄 수 있고, 그것으로 세계의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과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견디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현 사태의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후자의 사람들에게 는 사태의 본질, 의미의 심층보다도 살아 있기에 살아가야 한다는 ‘존재의 의지’가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존재의 의지에 이끌려 살아가야 하는 삶의 조건이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지속되어 왔고, 그것이 미래에도 전혀 달라질 수 없는 우리 생존의 기본 조건이라면 ‘판타지의 존재론’은 결코 부정될 수 없다. 오히려 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판타지에 의존해 생을 지속해 가고 있다. 때문에 그러한 판타지를 생성시키는 인간의 욕망을 ‘허위의식’을 낳는 저급한 것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의 지속을 요청하는 자리에서 인간이 만들어 낸 판타지가 어떤 유용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 ‘민중의 종교’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심형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회원 zeekfrid@gmail.com

서울대 박사과정. <종교 개념의 적용과 해석에 대한 연구>라는 석사학위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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