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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이후 한국 종교학의 주요 연구 동향

                

                       

                                

2014.2.18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종교학이 어떠한 학문적 방향성을 취하고 있는지를 적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쩌면 지나치게 많은 상이한 목소리들이 혼재되어 있어서 어떤 하나의 지배적인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하나의 단일한 종교학적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환영은 그저 현재의 학문적 불안을 은폐하기 위한 역사주의적 위안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2000년대 이후에 한국 종교학이 어떠한 여정을 밟아왔는지를 서술하고자 하는 이 글의 의의도 마찬가지로 중심을 차지하는 몇몇 주제들이 만들어내는 그러한 단절, 틈, 구멍, 여백, 주변을 확인하는 데 있을 것이다.

 

 

 1. 종교 개념을 낯설게 하기: 근대성 연구의 학문적 유행

 

 

        1990년대 종교학의 향배를 가늠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국내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들이 비로소 자신들의 발언을 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 한국의 종교학계에서는 해방 이후 가속화된 서구화, 도시화,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현재의 한국문화를 만들어낸 ‘역사적 뿌리’를 탐색하는 계보학적 연구의 방법이 종교학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통해서 학습된 역사적 기억을 비판적으로 재성찰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적 분위기는 적어도 향후 20여 년 간 많은 종교학 연구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교는 항상 서구문화의 분신처럼 간주되었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교는 한편으로는 문명과 진보의 상징으로 여겨져 환대받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주의의 첨병으로 간주되어 배척받기도 했다. 그리고 개항 이후 100여 년 동안 근대 한국종교사는 그리스도교를 모델로 삼아 한국의 다른 모든 종교들이 모방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유교처럼 경전만 남아 있을 뿐 그 이외의 다른 종교적 구성요소가 탈종교화된 ‘책의 종교’는 필연적으로 고사할 수밖에 없는 종교적 환경이 만들어졌다. 마찬가지로 불교는 사찰이라는 자연 공간 안에 갇혀 있는 ‘건물의 종교’로서 근근이 자신의 종교성을 보존하면서 문화재와 종교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오히려 근대성의 유입과 동시에 전통적인 정신적 자산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여 서양의 그리스도교에 필적할 만한 ‘한국적 종교 형식’을 발명하고자 했던 노력은 주로 신종교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동학, 원불교, 증산교, 대종교 등의 신종교 운동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전통의 창조적 징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종교 운동은 서양의 ‘종교(religion)’ 개념에 상응하는 한국적 종교를 제작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유교, 불교, 그리스도교와 같은 ‘외래 종교’보다 훨씬 더 ‘종교의 기원’에 근접해 있는 한국의 고유한 종교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무속이 강조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러므로 1990년대의 종교 연구는 단지 그리스도교의 유입에 의해 기존의 한국종교가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를 서술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이라는 식민주의적 이분법이 아니라, 동양적인 것이 어떻게 서양적인 것에 의해 발명되었는지를 논의함으로써 ‘전통의 환영’에 대한 반성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것’이라는 개념조차도 근대성의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라는 이러한 개념적 유령은 필연적으로 종교의 영역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종교’라는 개념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의 ‘종교’ 개념의 유입에 의해서 한국의 종교뿐만 아니라 문화 전체가 어떻게 재구성되었는지를 연구하는 것, 그래서 우리의 현재를 지배하는 모든 개념들의 ‘역사성’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서 그러한 개념의 지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지도를 작성해야 한다는 일정한 학문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종교 재편의 과정에서 상실된 것과 발명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교분리나 종교의 자유와 같은 근대적 가치들이 어떻게 종교 개념을 통어했는지를 연구하는 작업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근대성(modernity)’의 문제로 압축될 수 있는 이러한 학문적 관심은 대략 ‘100년 전’으로 지칭될 수 있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상황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를 지향했다. 개항을 통한 서구 문물의 유입과 식민지 경험에서 ‘새로운 종교들’이 어떤 정치적인 역할을 하였는지, 그리고 ‘전통적인 종교들’은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탐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서구의 ‘종교 개념’이 한국 문화를 재편하기 이전에 한국의 종교 지형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묻는 역사적인 탐구 작업이 종교학 내부에서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것은 미처 역사가 되지 못한 100년 전의 시간을 망각으로부터 건져 올리기 위한 때늦은 작업이기도 했고, 불과 한 세기 전의 기억이 이렇게 철저히 역사로부터 누락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주는 학문적 위기의식의 발로이기도 했고, 켜켜이 쌓여 있는 시간의 먼지로 인해 보이지 않던 역사적 사실들을 재발견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학문적 흥분이기도 했다.

 

 

 

 2. 종교문화에 대한 관심: 종교 언어와 종교학의 언어

 

 

        2000년 이전까지 한국의 종교학 연구자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종교학의 정체성이라는 문제였다. 한편으로는 신학이나 교학과의 차별화를 통해서 종교를 바라보는 비종교적 시선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인간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종교학이 인문학 안에서 어떻게 새로운 언어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그러나 사정은 훨씬 더 복잡한 것이었다.

 

 

        먼저, 신학이나 교학과는 다르게 종교를 비종교적 언어를 매개로 하여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이 종교학의 일차적인 과제라고 인식되었다. 이때 종교학과 첨예한 대립을 겪었던 것은 주로 그리스도교와 불교와 같은 ‘살아있는 종교들’이었다. 종교의 자리에서 볼 때 종교학은 종교를 탈신비화하는 탈종교적이거나 반종교적인 기획으로 여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나 불교를 내부자가 아니라 외부자가 발언한다는 사실에 대한 기본적인 반발이 존재했던 것이다. 종교학의 설명을 들으면서 당해 종교인은 마치 타인이 자기를 설명할 때 느끼게 되는 묘한 공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 자기 충족적인 종교가 종교학이라는 종교 외부의 언어를 불가피하게 요청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전통적인 공식 언어를 제쳐 두고서 당해 종교인이 종교학의 언어를 승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종교는 경계선 안에 들어온 자에게만 일정한 발언권을 주기 때문에, 종교 밖에 있는 자격 없는 화자들의 발언이 결코 달가운 것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종교학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발언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종교학은 종교를 대신하여 종교의 정수를 발언해야 하는가? 아니면 비종교인이 거부감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희석된 종교’를 제조하는 것이 종교학의 역할인가? 아니면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가로질러 인간 일반에게 진술하고자 하는 ‘종교 이야기’는 어떤 동기에서 추동되는 것인가?

 

 

        사실 2000년 이전에 종교학의 정체성은 일정 부분 ‘탈종교화’의 길을 걸으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종교학이 다른 학문 분과와 가장 달라지는 부분은 바로 학문의 객체가 매우 강력한 배타적 언어의 형태로서 눈앞에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태는 필연적으로 종교학이 그리스도교와 불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거의 발언하지 않게 되는 사태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큰 종교’는 각자 알아서 자기 식대로 발언을 하게 내버려 두는 대신, 종교학은 이제는 말하지 않는 ‘죽은 종교’를 대신하여 말을 하거나, 아니면 마땅한 체계적인 언어가 없는 ‘방언의 종교’를 위한 신학을 제조하는 데 골몰하게 되었다. 2000년대 이전에는 유교나 도교처럼 이미 종교로서는 거의 빈사 상태에 빠진 종교 전통을 연구하거나, 아니면 무속처럼 문어를 지니고 있지 않은 구어 종교를 연구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종교학의 영역에서 팽배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980대 이후에 본격화되기 시작했던 ‘한국종교’에 대한 학문적 관심으로 인해서 한국 고유의 종교 언어를 탐색하고자 하는 연구 충동이 대부분의 종교 연구자의 화두로서 기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여전히 서양과 동양이라는 이분법적 패러다임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언어에 의해 여과된 실체로서의 동양이 아니라 동양인의 자기 발언에 의해 이루어지는 동양의 재발견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종교학자에 의한 한국종교사의 집필은 여전히 많은 종교학 연구자의 ‘희망사항’으로만 남아 있다. ‘전범’이 되는 한국종교사를 서술하고자 하는 실증주의적 경직성이 그러한 집필을 방해하는 주요한 원인일 수 있다. 또한 미시사 연구의 유행과 더불어 “신은 세밀한 곳에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도 한국종교사의 집필을 방해하는 한 요인일 수 있다. 나아가 종교학 연구자들의 학문적 전문화가 진전됨에 따라 개인의 차원에서는 더 이상 ‘일반 종교사’를 서술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서술이 ‘사실의 기술’이기보다는 ‘사실 만들기’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더 이상 연구자들이 역사를 쓰지 않게 된 것도 한국종교사 서술의 중요한 장애물일 것이다.

 

 

        종교학이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발언하는 내용과 유교나 도교나 무속에 대해서 발언하는 내용은 매우 다를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이전에 특히 그리스도교나 불교에 대해서 발언할 때 종교 연구자는 ‘신학적’이고 ‘교학적’인 발언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극도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종교학적 연구’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가 학문성을 측정하는 상당히 중요한 척도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교나 도교와 같은 ‘죽은 종교’에 대한 발언은 상대적으로 폭 넓은 자유를 향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외래종교가 아닌 자생종교에 대한 민족주의적 탐구의 맥락 속에서 무속은 가장 ‘한국적인’ 종교 현상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2000년대 이전의 종교학 연구자 가운데 상당수는 그리스도교와 불교 같은 종교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에서 다루거나, 아니면 유교와 도교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를 수행하거나, 아니면 무속에 대한 현지조사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종교에 따라 종교학의 학문적 자세가 달랐다고 말할 수 있다.

 

 

 

 3. 새로운 언어를 찾아서: 종교학과 인지과학

 

 

        그동안 종교학은 인문학이라는 작은 도시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시민권 획득의 노력을 경주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학은 종교로부터도 의심의 눈길을 받았지만, 인문학의 다른 학문 분과로부터도 엄밀하지 않은 이상한 학문의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종교를 ‘신념’의 대상에서 ‘지식’의 대상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종교학 연구자가 아닌 이상, 타학문의 연구자들은 종교 자료를 대할 때 필연적으로 ‘종교적인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종교뿐만 아니라 학문의 영역에 두루 스며들어 있는 ‘종교적 편견’을 해소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2000년대 이후에 한국의 여러 종교학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진 문제는 종교학의 언어와 개념에 대한 철저한 반성 작업이었다. 이러한 관심은 종교학의 언어가 여전히 학문적 의사소통에 적합하지 않은 ‘종교 언어’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자의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학이 타학문과 대화하지 못하는 고립 상태에 직면해 있다면, 그것은 종교학이 학문 언어가 아니라 종교 언어를 가지고 종교를 설명해 왔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일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종교학의 언어에 만연해 있는 ‘종교성’을 제거하여 학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종교학 담론을 발언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종교학 연구자들은 종교학이 이용할 ‘새로운 언어’에 대한 탐색의 노력 가운데 하나로서 인지과학 같은 ‘종교 외부의 언어’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인지종교학 영역의 연구 성과들은 특히 진화심리학이나 발달심리학 같은 심리학적 연구 성과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주변 사물과 자연 환경과 동료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미치는 위험과 영향력을 평가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비록 의식되지 않더라도 인간의 마음은 항상 바쁘게 움직이면서 사물과 사람과 사건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마음들을 포착하여 읽어내고자 한다. 그리고 진화의 과정 속에서 이러한 지속적인 마음의 활동은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며 일정한 마음의 원리로 정착하게 된다. 그러므로 종교는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 마음의 자연스러운 작동 방식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인지종교학은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종교’의 발생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어떤 지점에서 종교가 ‘부자연스러운 것’이 되는지를 더불어 이야기한다. 인간 문화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자연스러운 종교’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많은 비종교적 변수들에 의해 영향 받을 수밖에 없으며, 차츰 인지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종교로 발전하거나 전락하게 된다. 예컨대 유일신교처럼 마음의 작동 원리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복잡한 종교가 만들어질 때, 이러한 종교 형태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지속을 위해 엄격한 종교 내적 규율과 폭력과 배제의 역학에 의존하게 된다.

 

 

        우리는 인지종교학의 다양한 주장을 통해서 종교가 어떻게 자연스러운 것에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이동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종교가 어떠한 변화를 수반하게 되고 어떤 종교 외적 요소들을 흡수하게 되는지 등의 종교사적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인지종교학의 주장이 모두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현재 인지종교학 연구자들은 고전적인 종교학의 주요 이론과 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기존의 종교학을 새로운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종교학계 내에서는 극소수의 연구자만이 인지종교학의 연구 성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인지종교학의 어휘가 종교학의 일반 어휘가 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 현재의 글은 "《학문연구의 동향과 쟁점 제2집: 철학·심리학·교육학》, 대한민국학술원, 2012, pp. 209-222"에 실린 「종교학 편」 제2장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제1장. 21세기 종교학의 몇 가지 특성"은 정진홍 교수가 집필하였으며, 제1장과 제2장의 형식은 대체로 동일하다.

 


 이창익_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단 HK연구교수
changyick@gmail.com
주요 논문으로 〈신 관념의 인지적 구조: 마음 읽기의 한계선〉, 〈사랑이 조각하는 죽음의 공간〉, 〈죽음에 관한 일곱 가지 이야기〉 등이 있고, 저서로는 《조선시대 달력의 변천과 세시의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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