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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04호-쿠스코, 돌의 종교(박규태)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4. 4. 25. 15:36

                          

                                쿠스코, 돌의 종교

                

                       

<사진> 페루인들이 신앙하는 가정의 수호신 또로스                               


 

 

 

 

 

 

2014.3.4

 

        지난겨울, 서른 시간의 비행 끝에 지구 반대편의 쿠스코에 도착했다. 쿠스코는 1821년 스페인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페루의 유서깊은 도시로 안데스 산맥 사이의 해발 3,600m 지대에 위치하며, 1532년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당시 2백여 명의 스페인 군인들이 10만여 명의 잉카 황제 군대를 무력화시켰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같은 수수께끼로 말해지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우수한 화력과 기마병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당시 잉카인들이 재림 구세주로 믿고 있던 태양신 빌라코차의 모습과 스페인 군인들의 모습이 유사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도시를 걷다 보면 발걸음 닿는 곳마다 잉카문명과 스페인문명의 절묘한 조합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일까?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페루 원주민들의 오래 된 슬픔이 진하게 묻어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무언가 알 수 없는 강인하고 신비스러운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쿠스코의 중심에는 전체가 황금으로 치장된 ‘태양의 신전’ 꼬리칸챠가 있었다. 피사로가 당시 잉카제국의 아타우알파 황제를 인질로 삼아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을 약탈했는데, 그때 꼬리칸챠 신전도 완전히 털렸다. 하지만 약탈자들이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돌을 다루는 기술과 마음이었다. 쿠스코를 정복한 스페인인들은 꼬리칸챠 신전을 허물고 성당을 세웠다. 그것이 오늘날의 산토 도밍고 성당이다. 그런데 그들은 꼬리칸챠 신전을 완전히 해체할 수는 없었다. 신전을 지탱하는 건물 하부가 너무도 견고한 돌 구조로 되어 있어 도저히 부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꼬리칸챠 신전의 토대부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성당을 올렸다. 말하자면 쿠스코의 산토 도밍고 성당은 잉카제국과 스페인제국의 기묘한 만남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장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만남은 결코 스페인에 의한 잉카의 완전한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페루에는 지진이 많다. 쿠스코에도 역사상 1650년과 1950년 두 차례의 대지진이 있었다. 그때마다 스페인인들이 세운 성당은 간단히 무너졌지만 잉카인들이 만든 돌기단은 꿈쩍도 안했다. 현 쿠스코 시장은 산토 도밍고 성당을 해체하고 꼬리칸챠 신전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공감대가 널리 확산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무너지지도 않고 정복될 수도 없는 것, 그것이야말로 잉카인들의 ‘돌의 종교’일지도 모른다.

 

        돌의 종교는 우주의 중심에서 태어난다. 과연 쿠스코는 원주민어로 ‘배꼽’을 뜻하는 말이다. 그 배꼽은 삼층적 우주관(하늘=콘돌=평화, 지상=퓨마=용기, 지하=뱀=지혜)과 삼계명(거짓말하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남을 괴롭히지 말 것)의 윤리를 낳았다. 오늘날 페루인의 80%가 가톨릭 신자라고 하지만, 정작 그들 세계의 중심에는 여전히 말(로고스)의 종교가 아닌 돌(라피스)의 종교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지. 페루 산간마을 촌가의 지붕마다에서 나는 묘한 상징물을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분명 십자가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소나 닭 혹은 항아리를 비롯한 각종 민속신앙의 대상들이 함께 부착되어 있었다. 페루인들이 ‘또로스’라 부르는 이 상징물은 사악한 기운을 막고 각 가정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신앙되고 있다. 이 또로스 또한 산토 도밍고 성당의 토대를 이루는 꼬리칸챠 신전과 마찬가지로 돌의 종교에 속한 성물일지도 모른다. 그런 확인만으로도 불안한 여행자는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었다. 해발 3,800m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운송로로 이용 가능한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에서 바라본 하늘과 구름은 영영 내 눈동자에 박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것들은 내 마음 속을 흘러흘러 떠다니고 있다. 이거면 돼, 이걸로 충분해. 그것은 코카잎차의 향기를 수반하는 지독한 고산증의 죽음같은 기억들을 지워버릴 만큼 강렬한 생명의 징표들이었다.

 


 박규태_
한양대학교
chat0113@daum.net
논문으로 <현대일본종교와‘마음’(心)의 문제-‘고코로나오시’와 심리통어기법에서 마인드컨트롤까지->,<고대 오사카의 백제계 신사와 사원연구>등이 있고, 저역서로 <<일본문화사>>,<<신도,일본 태생의 종교시스템>>,<<일본정신의 풍경>>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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