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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념의 문화적 공간과 역사적 기간

             -브렌트 농부리(Brent Nongbri)의 Before Religion을 읽고-

     Brent Nongbri, Before Religion: A History of a Modern Concept,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2013.

                

                       

                                

 

2014.2.25

 

 

        농부리(Brent Nongbri)가 이 책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것은 종교개념의 역사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와 아랍 그리고 유럽 근대 종교개혁까지 다양한 문화와 장기적인 역사적 기간을 통해 ‘종교’(religion)라는 특정 개념을 추적한다. 특히, 그는 근대학자들이 고대문헌에서 ‘종교’로 인식했던 단어들을 반추하여, 이러한 단어들이 근대적인 ‘종교’ 개념과 차이가 있었음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용어인 ioudaismos와 아랍어 islm은 근대 이후로 유대교와 이슬람교라는 ‘종교’ 개념으로 이해되어왔다. 하지만, 고대적 맥락에서 이 두 단어는 현재의 ‘종교’와는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오히려 전자의 경우에는 ‘유대적 행위’(the activity of Judaizing)로, 후자는 ‘권위에 복종하기’(submitting to authority)로 이해되어 왔다. 고대에 ‘종교’라고 일컫는 단어들은 당시의 맥락에서 민족성과 관련한 어떤 특정한 실천의 방식과 삶을 나타내는 단어였지, 현재와 같이 정치, 경제, 그리고 과학과 구분되어 독립적 영역으로 규정된 ‘종교’는 아니었다. 따라서 현재의 ‘종교’는 먼 과거로부터 지속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이어오던 개념이 아니라 특정 시공간에서 만들어진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교’라는 개념 내부에는 단절을 내포하고 있다. 이 단절은 현재의 ‘종교’라고 이해되는 개념의 역사적 특수성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근대적 ‘종교’ 개념은 ‘종교적인 것’(being religious)과 ‘종교적이지 않은 것’(not religious)이라는 동반개념을 요구한다. 이러한 종교에 대한 이분법적인 논의는 ‘종교’라는 근대적 개념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논의로부터 종교는 세속적인 정치경제과학과 분리되어 개인의 믿음이라는 사적인 영역에 미끄러져 들어가게 된다.

 

 

        세속과 종교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분류의 시각은 역사적으로 종교개혁시기에 나타나게 되었다. 종교개혁 이전의 시대에 유럽에서 진리는 오직 ‘하나의 신’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적 ‘진리’는 다양하게 파편화된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하나의 진리’를 대변하던 가톨릭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도전의 결과, 기독교는 많은 교파들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기독교교파들의 등장으로 인해 유럽은 종교전쟁이라는 피의 역사를 써내려간다. 엄청난 살생이 자행되고 무역과 상업에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면서 유럽 역사에 심각한 불안을 조성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은 당시의 불안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유럽을 안정시킬 방책을 찾게 된다. 이때 로크와 같은 공화주의자들은 영연방의 안정성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종교를 개인적 ‘믿음’과 사적 영역의 ‘신앙’으로 제한하고, 이와 반대로 정치경제과학 등을 세속으로 분리함으로써 근대적 국민-국가의 형성을 제안한다. 결국, 현재의 종교와 세속의 이분법적 분류체계는 근대 유럽의 역사 속에서 창안되었던 것이다.

 

 

        농부리는 이렇게 유럽역사에서 근대 종교개념이 형성된 역사를 되짚어보았다. 그렇다면, 유럽의 근대적 개념인 ‘종교’는 어떻게 전 세계의 보편개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그 원인으로 그는 유럽의 신대륙 탐험과 식민지정책을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한다. 유럽대륙의 신대륙 탐험과 식민지 정책은 유럽인을 제외한 새롭고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러한 사실로 말미암아 유럽인들은 세계에 다양한 종교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이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종교들’에 ‘세계종교’(world religions)라는 이름을 뒤집어씌운다. 그러나 ‘세계종교’는 유럽의 기독교성을 반영한 근대적 개념으로 세계의 ‘새로운 종교들’을 근대적 개념인 ‘종교’로 재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세계종교’는 종교개혁에서 종교들의 경쟁이 그대로 반영된 개념이었다. 따라서 ‘세계종교’는 새로운 종교들을 유럽의 ‘종교’라는 개념으로 범주화한 16-17세기의 작품인 것이다.

 

 

        농부리는 이 책을 통해 종교개념의 근대적 역사를 일관되게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비교적 다양한 문화와 장기간의 역사적 문헌을 참고하여 글을 서술한다. 특히, 1장, “What Do We Mean by ‘Religion’?”은 종교의 정의하는 문제를 소개하고, ‘종교’의 개념의 역사적 분석을 위한 맥락을 제공한다. 2장, “Lost in Translation”은 ‘고대종교’에도 현재와 같은 ‘종교’ 상황이 있었다는 믿음에 대한 진위를 파헤친다. 특히, 근대 학자들이 고대종교 안에서 근대적 종교개념과 유사한 단어들을 찾아내 ‘종교’라고 번역했던 문제를 지적하면서, 오늘날 고대세계에도 현재와 같은 ‘종교’가 있었다는 주장이 근대유럽학자들의 상상이었음을 보여준다. 3장 “Some (Premature) Births of Religion in Antiquity”에서, 저자는 고대세계에 ‘종교’개념의 출현으로 간주되는 4개의 역사적 사건들을 연구한다. 마카베오 전쟁(the Maccabean revolt: 기원전 2세기), 기원전 1세기의 키케로(Cicero)의 대화, 3-4세기에 저술된 유세비우스(Eusebious)의 저작들, 그리고 기원후 7세기의 무하메드(Muhammad)의 출현이 그 것이다. 4장은 “Christians and ‘Others’ in the Premodern Era”이다. 저자는 이 장에서 근대 이전의 기독교 학자들이 타 종교인을 접했을 때, 그 ‘타자’(other peoples)를 해석하기 위해 어떠한 전략을 개발했는지에 주목한다. 이러한 탐구를 위해 저자는 마니교와 초기 이슬람교를 살펴보고, ‘Barlaam and Ioasaph’의 이야기를 통해 서구인들이 낯선 신앙을 어떻게 자기화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5장은 “Renaissance, Reformation, and Religion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이다. 여기서 저자는 서구 유럽의 ‘참된종교’(vera religio)와 진정한 신앙을 위한 논쟁들을 소개한다. 6장, “New Worlds, New Religions, World Religions”에서 저자는 유럽인들이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인도에서 발견한 ‘새로운’(new) 사람들의 종교를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주목한다. 특히 그는 유럽인들이 근대적 종교개념을 토대로 범주화했던 ‘세계종교’의 출현을 이야기한다. 7장, “The Modern Origins of Ancient Religions”는 ‘종교’가 매우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된 작동방식(mechanisms) 가운데 하나를 연구한다. 다시 말해, 근대적 종교개념이 고대 텍스트와 ‘고대종교’ 유물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로마그리스 종교와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종교적 관행을 비교하고 근대유럽인들의 메소포타미아 종교 발견과 창조에 주목한다. 마지막 장인, “After Religion”은 짧은 결론으로 ‘종교’개념의 올바른 사용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종교’개념 자체의 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단지, ‘종교’개념이 기독교적 맥락에서 활용되는 방식에 경계하며, ‘종교’라는 개념 변화의 역사를 기억해서 현재의 ‘종교’ 개념을 신중하게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농부리의 이 책이 그다지 새로운 논의를 하고 있은 것은 아니다. 종교개념의 역사 그리고 근대적 개념으로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종교학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오던 주장이다. 따라서 이 책을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구태의연한 책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흥미는 저자의 주장에 있지 않다. 농부리는 ‘종교’개념의 역사를 꼼꼼히 추적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공간과 기나긴 역사적 기간을 탐색한다. 특히, 고대문헌으로부터 근대문헌에 이르기까지 '종교'개념을 축으로 ‘종교’라고 인식되어오던 개념의 내부를 파헤치고, 그 차이를 표면화함으로써 보는 독자로 하여금 자료해석의 재미를 더해주고, 구체적인 종교 개념의 역사적 자료를 축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종교’개념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라면, 일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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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소개: 농부리(Brent Nongbri)는 현재 ‘맥쿼리 대학’(Macquarie University) 고대 역사학과에서 초기 기독교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박사 후 연구원이다. 그는 2008년 종교학으로 ‘예일 대학’(Yale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그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분야는 종교와 고대지중해 세계의 물질문화 연구를 위한 이론과 방법이다. 특히, 그는 종교를 고대세계를 연구하는 핵심범주로 이해하고 있다. 이 책은 그의 박사 논문을 출판한 것이다.

 


 도태수_
한국학중앙연구원
memendo@naver.com
논문으로 <라이온 킹의 영웅신화 구조와 이데올로기 비판>이 있고, <비평으로서 신화 연구하기>라는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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