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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05호-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이진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4. 4. 25. 15:38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2014.3.11 

 

 

        오래 전에 우연히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사용하는 지도책을 본적이 있다. 표지에 세계지도가 실려 있었는데 좀 낯설었다. 내가 익숙하게 보아 왔던 세계지도와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계지도 하면 나의 머릿속에는 가운데 태평양이 있고 대한민국이 지도의 한복판에 위치한 지도가 떠오른다. 만일 누가 나에게 세계지도를 간단하게 그리라고 하면 지금도 태평양을 중심으로 왼쪽에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오른쪽에 남북 아메리카가 위치한 지도를 그릴 것이다. 그런데 미국 교과서에 나온 세계지도는 대서양이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당연히 미국(뉴욕과 워싱턴)과 영국(런던)이 세계지도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갑자기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업 시간에 그리니치 표준시나 날짜 변경선 등에 대해 배웠지만 막상 대서양이 한 복판에 있는 세계지도를 보니 매우 생소했다. 시차라고 하는 시간관념보다는 지도라고 하는 공간적 이미지가 위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널리 사용되는 ‘근동(중동)’이나 ‘극동’이라는 용어가 다시 떠올랐다. 대서양을 가운데 놓고 보면 서아시아는 Near East(Middle East), 동아시아는 Far East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의 사람들이 이러한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태평양을 중심에 놓은 세계지도를 보고 자랐으면서도 아직도 근동이나 중동, 심지어 극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한국 사람들의 경우(종종 나 자신을 포함하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외국인 선교사가 세운 극동방송이나 기업인이 세운 극동건설과 같은 건설회사의 명칭은 그렇다 치더라도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에서도 이러한 명칭이 지속되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에드워드 사이드에 의한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나온 지 이미 오래되었건만 극동대학교라는 명칭을 지닌 신생대학이 설립되는가 하면 극동문제연구소라는 간판을 자랑스럽게 달고 있는 대학연구소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아시아 지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세워진 대학부설연구소의 경우에도 여전히 중동문제연구소 내지 중동연구소라는 명칭을 달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세계지도의 차이를 본 다음 떠오른 나라는 인도였다. 지리적으로 보면 유럽과 동아시아의 중간쯤에 위치한 인도의 교과서에서는 어떠한 모양의 세계지도가 실려 있을까? 인도의 초중등학교에서 사용하는 지도책을 직접 보지 못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인도양을 중심에 놓은 지도를 사용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만일 인도나 인도양이 중심에 위치한 지도라면 아메리카 대륙은 지도에 포함되기 힘들 것이며, 억지로라도 포함시키려면 태평양의 폭을 인위적으로 좁혀야 하는 지도가 될 것이다.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미국, 한국, 인도는 모두 북반구에 위치한 나라들이다.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 남미의 우루과이, 남아프리카의 스와질란드처럼 남반구에 위치한 국가들에서 교육용으로 사용하는 세계지도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태평양 중심으로, 북반부 중심으로 세계지도를 보아 온 나의 시각으로는 도무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세계의 중심은 어디일까?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지구는 둥그니까” 중심은 아무데도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모든 곳이 중심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든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발을 딛고 설 나름의 발판이 필요하며 중심을 지닌 지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발판과 중심은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럿 중의 하나일 뿐이며,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축되는 것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단지 지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종교의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오늘날 한국의 종교계가 만드는 다양한 신앙의 지도나 종교연구자들이 만드는 다양한 인식의 지도와 관련하여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진구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찬실장
jilee80@naver.com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 기독교에 대한 소전 종교학의 문화비평>, <최근 한국 개신교의 안티기독교 운동과 대응양상>, <한국 개신교 지형의 형성과 교파정체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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