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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봄, 그리고 ‘성스러운 생태학’
2016.3.29
1.
시골로 이사온지 반 년이 지났다. 조금씩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가령 고양이만 해도 그렇다. 우리 동네에는 고양이가 많다. 그런데 봄이 되니 훨씬 더 자주 눈에 띈다. 지난 여름에 처음 우리집으로 찾아온 ‘나비’를 필두로 대략 여섯 마리의 고양이들이 오며가며 우리집에 들리는데(편의상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나비, 까망이, 어미, 얼룩이, 포스, 예쁜이),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도시에서 살 때도 아파트 단지 안에 길고양이들이 많았고, 나름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고 먹을 거리를 챙겨주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고양이들을 자세히 관찰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굳이 고양이들을 관찰하려고 따로 시간을 낼 것도 없이, 그냥 고양이들은 우리 마을의 또 다른(인간 이외의) 주민일뿐더러, 열린 대문으로 가끔씩 찾아오시는 동네 할머니들보다 더 규칙적으로 자주 만나는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식물들이다. 도시생활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크고 작은 각종 식물의 ‘개성’을 마당 안에서, 근처 산책길에서 더 자주 접하고 있다. 봄이 되니 겨우내 안 보이던 갖가지 식물들이 갑자기 존재를 온몸으로 드러내는데, 머위, 민들레, 곰보배추, 부추, 돌나물, 광대나물을 비롯해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초록이들로 마당이 뒤덮이고 있다. 가시오가피와 동백, 감나무, 매화나무에도 새순이 움트니 놀랍다. 느리지만, 주변의 수많은 생명들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아가면서 서로에게 적응하고 있다. 물론 지역민들이 보기에는 어리숙한 서울촌놈들의 생명 감수성이란 개탄스러울 정도로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2.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의 ‘살아있음’을 인지하고 생태계의 변화에 민감해지는 것. 흔히 생태적 감수성이라 일컬어지는 것인데, 오늘날 적지 않은 생태주의자들은 인류의, 나아가 지구의 지속가능한 미래는 인간의 시들어버린 생태적 감수성을 되살리는 것과 불가분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문명의 생태적 변화를 위해서는 개인적 수준에서부터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적 감수성은, 자연에 밀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간을 위주로 주위 환경이 구획된 도시에서는 아무래도 인간 이외의 생명의 변화에도, 생태계의 변화에도 무뎌지기 십상이다.
이와 관련해서, 생태문제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태적 감수성의 계발을 ‘영성’과 관계된 문제로 보려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생태문제가 일찍부터 가시화된 서구사회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사회에서도, ‘영성 회복’이야말로 생태문제의 해결을 위한 핵심적 열쇠라는 주장이 생태주의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생태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제도종교 안팎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생태영성을 통해 생태적 변화를 모색하는 흐름은 다양한 주체에 의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내용의 강조점에 따라 가령 고양이 같은 주위의 동식물 생명체들을 개별적인 영적 존재들로 여기면서 각각의 살아있음에 민감해지는 소위 ‘애니미즘적 영성’에서부터, 지구 생태계 전체를 신성한 영적인 존재로 여기는 이른바 ‘가이아 영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근대 과학적 지식의 한계를 지적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생태영성의 고양을 위한 장치로서 종교적/영적인 강렬한 느낌과 동기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의례와 신화가 활용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일부 생태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점점 확산되는 다양한 생태영성 회복의 프로젝트들은, 생태적 위기에 직면해서 일종의 ‘성스러운 생태학’을 소환하는 흐름으로 일컬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성스러운 생태학의 소환 현상과 관련해서, 학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성스러운 생태학의 소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학자들도 있지만, 이를 일종의 전 지구적 종교현상으로 보고 연구를 진행한 학자들도 있다. 예를 들어, 종교학자 브론 테일러(Bron Taylor)는 여러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영성생태론자들이 종교계에 미치는 영향 및 그들 자신이 새롭게 일으키는 종교현상이 생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만 거두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이를 ‘어두운 녹색 종교(dark green religion)’라고 비판적으로 지칭하였다.
근대 과학적 지식체계와 대비되는 성스러운 생태학의 지적 토대에 주목한 연구들도 있다. 가령 해양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버크스(Fikret Berkes)는 크리 족의 고기잡이를 현지에서 연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근대 과학에서 소외된, 흔히 신화나 종교 등의 형식으로 표현되어온 토착민들의 ‘생태계에 관한 지식’을 성스러운 생태학이라고 명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재평가하고자 한다. 팀 잉골드(Tim Ingold)에게 영향을 받은 인류학자인 케이 밀턴(Kay Milton)은 ‘감정의 생태학(Ecology of Emotion)’을 제안하면서, 세계(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문화에 의해서만 형성된다는 인류학계의 주류 이론을 비판하고, 인간의 직접적인 (생태환경)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감정이 환경과 우리를 연결하는 기본적인 생태적 메커니즘이라고 제안하면서, 자연과 하나가 된다거나 자연을 성스럽게 느끼는 경험 등 이른바 성스러운 생태학에서 중요시하는 주요 주제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3.
생태적 위기 의식이 심화되면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모두가 동의한다. 그런데 ‘어떠한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가?’, ‘그 변화를 어떻게 일으킬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다양하다. 어떻든, 생태적 위기에 직면해서 제기되는 다양한 물음들과 변화의 모색들은 결국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기본 물음과 불가분 연결되어 있다. 레이첼 카슨은 1960년대에 환경오염의 심화로 인한 ‘침묵의 봄’을 이야기했지만, 생태적 파국에 대한 불안이 사라진 온전한 봄이 찾아오기까지, 근대 과학적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성스러운 생태학’에 대한 사람들의 다방면의 관심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유기쁨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저서로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등이 있고, 논문으로 <생태의례와 감각의 정치>,<인간과 종교,그리고 생태 -더 큰‘이야기’속으로 걸어가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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