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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68호-예에 합당한 살인, 복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3. 3. 7. 18:29

예에 합당한 살인, 복수


news letter No.768 2023/3/7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뜻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구절의 핵심은 본래 ‘눈에는 눈으로만, 이에는 이로만’이라는 복수의 ‘제한성’에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에서의 소위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이란 같은 정도로만 응징하도록 함으로써 더 강력한 응징을 막고자 했다는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이 같은 복수의 주체가 어떠했는지, 또 규정된 바에 따라 복수를 실행하지 않았을 때의 형벌은 또 어떠한 것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적인 복수의 난무는 중앙집권적 형태의 국가에 위협적일 수밖에 없기에 점차 국가의 법률 및 행정 체계가 독점적으로 이를 대행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秦)의 통일 이후, 양한 시대를 거치면서 제국의 체제를 갖추었던 중국의 경우에도 역시 사적인 복수는 점차 금지되지 않았을까?

     역시 낯설지 않은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라는 말과 완전히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같은 의미를 가진 ‘함께 하늘을 이지 않는다(弗與共戴天)’라는 구절이 『예기』 「곡례」에 보이는데, 앞뒤 구절을 보면 ‘아버지의 원수(父之讎)’와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으니 죽여서 복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춘추공양전』은 “군주가 시해당했을 경우 신하로서 적을 토벌하지 않으면 신하라고 할 수 없고, 복수를 하지 않으면 아들이라고 할 수 없다”1)고 하니, 군주와 부친에 대한 복수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교 경전에는―어느 정도의 제한을 두기는 하지만―비단 군주나 부친의 원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족의 원수, 나아가 벗의 원수까지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으며, 널리 읽혔던 사서(史書)와 고전들 안에는 복수를 예에 합당한 행위로, 또는 의(義)를 지키는 고귀한 행위로 상찬하는 구체적인 사건과 서사가 다수 등장한다. 각 복수 사건에는 다양하고 복잡한 사연들이 있겠지만, 여러 전적에 기술되어 전해지는 복수는 대체로 예와 의, 효와 충 등, 유교에서 중시되는 덕목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아서 복수를 한 자는 때로 유교 덕목의 전형을 이루는 인물로 기억되기도 한다. 『사기』 「자객열전」에 실린 예양(豫讓)의 복수는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그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晉)나라 사람 예양은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섬겼으나 크게 인정받지 못하다가 지백(智伯)을 섬겼는데, 후에 지백은 조양자(趙襄子)의 공모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고, 그 후손도 모두 죽고 땅도 다 빼앗겼다. 예양은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이름을 바꾸고 죄수로 변장하고는 조양자의 궁에 들어가 뒷간의 벽을 바르는 일을 하다가 그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하고 잡혀서 심문당했는데, 이때 조양자는 후사조차 없는 지백을 위하여 원수를 갚고자 했던 예양을 ‘천하의 현인’이라고 하면서 풀어주었다. 그 후 예양은 온몸에 옻칠을 하고 숯을 삼켜 목을 쉬게 하여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몰골로 거리에서 구걸을 하였다. 어느 날 조양자가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려 하는데, 말이 놀라 멈추니 조양자는 필시 예양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심문하게 하였고, 과연 복수를 하려던 거지 행색의 예양이 있었다. 조양자는 과거에 범씨와 중항씨도 섬겼던 적이 있었는데, 왜 하필 지백을 위하여 끈질기게 복수하고자 하는지 물었고, 예양은 저 둘은 자신을 보통사람으로 대했으나 지백은 국사(國史)로 대우했으니, 자신도 국사로서 보답을 하려는 것이라고 답하였다. 이에 조양자는 감탄의 눈물을 흘리고, 예양을 예자(豫子)라는 존칭으로 부르면서 이미 충절을 다했다는 명예가 이루어졌고, 자신의 용서도 이미 충분했다고 하면서 그를 포위하게 하였다. 예양은 조양자가 자신에게 베푼 관대함을 칭송하고는 옷 한 벌 달라고 청하였고, 조양자는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 이에 예양은 칼을 뽑아들고 세 번을 뛰어서 그 옷을 내리치고는 “내가 이제 지백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한 후, 칼에 엎어져 자결하였다.

    자결하는 것으로서 막을 내리는 이 복수극은 복수하는 자의 처절함과 숭고함을 전해주는 동시에, 또 다른 실마리를 던져주는 듯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주군을 위하여 복수하려던 예양은 결국 실제로 조양자를 죽이지는 못했다. 그런데 조양자의 옷을 얻어서 그 옷을 사람으로 여기고 칼로 치고 나서 예양은 스스로 복수에 실패하여 면목이 없다기보다는 이제 지백에게 보답할 수 있게 되었다(吾可以下報智伯矣!)고 말하는 장면에서, 복수에 대한 당시인들의 인식은 원수를 죽이는 살인 행위와 완전히 일치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있는 복수 사건에 대한 단편적 기술의 형식이나 의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복수의 프로세스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양의 복수를 포함하여 몇몇 사례를 보면, 복수를 수행한 자는 복수를 마친 후 고인이 된 군주나 가족 혹은 친구의 무덤에 찾아가서 자신의 복수행위를 보고하는데, 때로는 복수한 자의 머리를 가지고 가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술을 땅에 부어 제사 지내기도 한다.2) 예양이 복수를 결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하여 단장한다’고 하였다. 지백이 나를 알아주었으니, 내 기필코 원수를 갚고 죽음으로써 지백에게 보답한다면, 내 혼백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3)

    예양은 복수를 결심할 때 자신의 죽음 이후의 ‘혼백’을 언급하고 있다. 비록 실제 조양자의 목숨을 빼앗지는 못했지만 의복으로나마 상징적으로 조양자를 죽이고는 이를 지하에 있는 지백에게 보고하였으며, 결국 자신의 목숨으로 복수의 보고를 마무리할 것이었기에 죽은 지백을 대할 자신의 혼백이 부끄럽지 않고, 따라서 복수의 공을 이미 이루었다고 여겼던 것 같다. 복수는 예에 합당한 살인이었던 동시에 죽음을 무릅쓰고 절의를 지키는 의미를 가진 행위였기에, 예양은 이를 모두 이루었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아무리 숭고한 의미를 성취하는 복수라고 해도 사적인 복수가 이어지는 것은 국가의 법적 질서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효와 충, 예와 의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복수를 단순한 범죄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복수는 한 제국이 지배이념으로 삼았던 유교의 경전에서 사람됨의 도리로 규정하고 상찬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중국 법제사와 법 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된 연구들을 많이 접해보지 않아서 조심스럽지만, 역사서에 기록된 일부 사례를 통하여 짐작하기로는 복수자 자신의 경우 효성이나 의리와 같은 저버릴 수 없는 인륜 도리에 의하여 복수를 하고 나서는 도피하여 목숨을 부지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을 결박하고 관부에 가서 자수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였던 듯하다. 문제는 관원으로서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것인데, 대체로 위진 시대를 지나 다시금 제국의 법제를 구축했던 당대 이후로 제국의 법률은 따로 복수에 대한 전문적인 규정을 두지 않았고 법률 규정에 따라 처리하였으므로, 적어도 입법 차원에서 복수행위는 인정되지 않았고 엄격하게 금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예교 사상과 관습은 복수를 장려하고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사법 관행에서는 충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법망이 조밀한 국가라고 해도 결코 당한 자의 억울함을 온전히 풀어줄 수 없고, 동서고금의 그 어떤 크고 작은 사회에서도 정의는 완벽하게 실현된 적은 없다. 그러니 사적인 복수의 공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나의 단잠을 깨우고, 또 가려움에 시달리게 하는 모기 한 마리에게도 살의를 느끼곤 하는데, 내 부모, 형제를 죽인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너무 현실감이 떨어진다. 복수라는 말이 다소 처절하게 들리긴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나름의 복수를 꿈꾸고 은밀하게 실현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생각과 말(글)과 행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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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君弑, 臣不討賊, 非臣也, 不復讎, 非子也.” 『춘추공양전』 은공 11년

2) 도미야 이타루(富谷至)는 “복수행위는 살해된 피해자에게 보고되지 않으면 안 되고, 또 그것은 무언가 의례적인 행위를 수반한다”는 것을 고대 중국의 복수 사례들에서 발견하는 몇 가지 공통점 중의 하나라고 지적하였다.

3) “嗟乎! 士爲知己者死, 女爲說(=悅)己者容. 今智伯知我, 我必爲報讎而死, 以報智伯, 則吾魂魄不愧矣.” 『사기』 「자객열전」

 

 

 

 

 



 

 

 

 


이연승_
서울대학교 교수
논문으로〈서구의 유교종교론〉, 〈이병헌의 유교론: 비미신적인 신묘한 종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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