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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73호-호주 원주민의 드림타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3. 4. 11. 18:25

호주 원주민의 드림타임

 

 news letter No.773 2023/4/11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의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는 그간 멸종 인류로 분류되었던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적 요인을 분류하였고, 이후 2022년에 현생 인류의 진화를 규명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페보의 연구에 의하면, 유럽·아시안계 DNA 1~4%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gene)에서 유래하며, 현존하는 호주와 파푸아 뉴기니아의 원주민은 네안데르탈인에서 갈라져 나온 데니소바인의 유전체(genome)를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 안에 공존하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에 대한 연구 결과가 새삼스레 떠오른 것은 이민자의 땅으로 이주한 나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간 여러 나라의 외국인이 들어온 서울에서 살았으나, 본토인으로서 그들과 공존했다. 그러나 다른 유전체를 가졌다고 여기는 내가 호주의 다민족 무리 안에 들어가 사회의 일원으로 속한 일은 다른 장르에 속한다.

    종교학도로서 나는 토착 문화의 영성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호주 원주민(aborigine)의 전통과 문화는 여러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조상으로부터 이어온 호주 원주민의 땅에 대한 물질적·정신적 유대와 드림타임(Dream Time)을 통해, 허구를 창작하기 시작한 인류의 사유 능력은 종교적 인간, 즉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와 맥이 닿아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호주의 원주민은 6만 년 전에 정착하여 자연환경에 뿌리내린 정신적, 문화적 유산을 발전시켜 갔다. [호주 원주민의 자연과 토지에 대한 종교문화적 인식은 호주 작가 브루스 파스코에(Bruce Pascoe)의 글, Dark Emu(2014)에 잘 나타나 있다.] 원주민의 종교적인 믿음과 실천은 구전을 통해 전승된 드림타임에 기반한다. 드림타임은 세상이 창조되고 모든 생명체가 존재하기 시작한 시대다. 조상의 영혼이 땅에 현존하고, 원주민의 일상인 사냥과 모임, 의식에 이르는 모든 영역이 땅과 연결되었다. 땅에 대한 믿음은 원주민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 근본적으로 작용한다. 원주민에게 땅은 조상과 전통을 연결하는 영혼과 힘으로 이루어진 살아있는 실체로서 땅에 대한 믿음은 자연 세계와의 관계를 알려주는 관습, 가치, 금기(taboos) 등으로 작용한다. 즉, 땅은 세상의 만물이 연결된 실체로 자연계의 모든 요소는 신성한 존재다. 이러한 세계 안에서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이러한 자연관을 기반으로 원주민은 땅에 대한 존경을 반영한 독특한 양식의 환경 관리를 전해왔다.

    호주 원주민이 땅과 영적으로 연결된 것은 ‘지구가 생명의 근원’이라는 믿음에 바탕한다. 원주민에게 지구는 삶의 양식을 지켜온 정교한 자원 관리 시스템이다. 이는 땅에 대한 존중과 지구의 자원이 유한하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즉 땅은 호주 원주민의 영혼의 보고(寶庫)이며 그들의 역사는 그 안에 숨 쉬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원주민의 회화, 음악, 스토리텔링 등의 다양한 문화유산으로 이어져 왔다. 그 안에서 드림타임은 세계의 창조와 인류의 탄생을 묘사하는 서사로 작용하며, 땅의 중요성과 그 땅에 살아 있는 정신을 강력하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원주민 종교문화 양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토템은 영적인 가이드 역할을 하는 동물로 묘사된다. 원주민 동굴 벽화나 예술품에는 캥거루, 에뮤, 뱀, 웜벳, 새 등이 주로 나타난다. 이들에 대한 묘사는 주로 점선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조상과의 연결을 뜻한다. 호주 원주민의 종교적 관습은 춤, 노래, 의식, 동굴 벽화 등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춤과 노래는 영혼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며, 조상과 연결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호주 원주민의 부활과 환생에 대한 이해는 다면적이다. 그들은 죽음을 다른 형태로 자연계에 존속하는 전환으로 바라본다. 드림타임은 조상이 지켜보고, 지도하고, 보호한다는 믿음에 기반하며 조상과 소통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또한 그들은 영혼의 환생을 믿는다. 그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땅으로 돌아가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 새로운 몸으로 환생한다. 생명의 연속성과 모든 생명체의 상호 연결 의식은 종교적 의식, 토지 관리(land management), 동굴 벽화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원주민에게 부활에 대한 인식은 사후 세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생활사에 기반한다. 한 사람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 주변의 땅과 자연 속에 또 다른 형태로 살아감을 의미한다. 즉 모든 생명체는 모습을 전환하여 영구적으로 존재한다. 원주민은 한 사람이 사는 동안 선행을 행했다면, 영원한 세계의 일부가 되어 육체적인 형태로 살아있는 세계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죽은자는 지상 세계의 연장인 다른 영역으로 옮아간다. 이 믿음은 산자와 죽은자의 중개 역할을 하는 조상과 소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주민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서사 양식인 드림타임의 기반을 이룬다.

    이러한 원주민의 전통과 신앙에 의하면, 다른 유전자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들의 조상과 공존했던 시대의 유전체를 이어받은 생명체로서 다른 세상에 존재하다가 본래의 곳으로 돌아온 생명체다. 그들의 드림타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그림을 따라 그리고 있는 나를 보면, 내 안에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체가 남아있어 호모 렐리기오수스의 본능에 충실한 작업을 지금 여기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남반부는 하늘의 북두칠성이 거꾸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남십자성도 볼 수가 있다. 태어나 지금까지 알았고 보았던 것의 가려진 면, 혹은 방향을 뒤집은 모습을 이곳에서 지금부터 볼 수도 있겠다. 다크 에뮤(Dark Emu)란, 빛나는 별자리가 아닌, 그 별을 빛나게 하는 깊고 넓은 하늘의 어둠을 바라보는 원주민의 눈이다. 보았으나 보지 못했고, 들었으나 들리지 않았던 것들을 보고 듣고 있는 호모 렐리기오수스의 시선이다.

 

 

 

 

 

 

 

 

 

 

 

최현주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종교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호주에서 살고 있다. 인문학 전자출판사 Crossing Boundaries Publications를 운영한다.
(cbpublication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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