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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인사드립니다
news letter No.503 2018/1/2
2018년입니다. 새해입니다. 그렇게들 말합니다. 2017년이 들으면 좀 마음이 불편할 것 같습니다. 한해 전에는 자기를 새해라 일컬으며 마냥 즐기더니 삼백 예순 다섯 날이 지나자 졸연(卒然) 마음을 바꿔 자기를 이제는 낡았다고 쳐다보지도 않고 이번에는 2018년을 새해라고 환호하는 모습이 씁쓸하기를 넘어 측은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한 해”라는 단위가 무척 짧은 것 같습니다. 아예 태어나 죽을 때까지를 하나의 단위로 하든지, 아니면 백년을, 또는 천년을 마디로 하여 세월을 끝내고 시작하면 숨고르기가 훨씬 수월할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조차 하게 됩니다. 시작과 끝이 너무 잦아 시작도 시작 같지 않고 끝도 끝 같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건강하지 못한’ 생각은 나이 탓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해의 되풀이가 너무 여러 번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또 이런 자리에서 보면 실은 한해를 단위로 하여 시작과 끝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길고 지루한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게 됩니다. 매일 매일 우리는 시작하고 끝내곤 하면서 세월을 이어 살고 있으니까요. 끝나지 않는 날이 없고, 새날이지 않은 날이 없는 것이 우리네가 사는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시작과 끝을 삼백 예순 다섯 번을 거듭한 끝에 겨우 끝났다든지 새로 시작한다든지 하는 것은 뜸을 드려도 너무 드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 길이의 단위가 어떻든 간에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사는 모습이란 언제나 끝과 시작, 시작과 끝의 이어짐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굳이 새해 첫날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면서 말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새날 또는 새해’와 부닥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새것과의 부닥침이란 달리 말하면 ‘미지(未知)와의 직면’입니다. 기존의 쌓인 앎이 내일의 나를 위해 기다리는 것이 현실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지(旣知)조차도 새롭게 만나야 하는 것이 새 날과의 만남이라고 한다면 그 또한 ‘미지와의 직면’의 범주에 넣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예상하고 기획하고 시간표를 작성하여 새날들을 맞는 실천적 태도가 실재하는 한 새날은 이미 충분하게 도안된 것이어서 ‘알지 못하는 것’을 수반할 까닭이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안한 것과 이루어지는 것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짐작하면서도 이러한 발언을 한다면 그것은 불안합니다. ‘오만함’이 풍기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새것은, 새날은 새해는 미지와의 직면입니다. 철저하게요.
그런데 새것과의 만남은 또한 ‘자유에의 진입’이기도 합니다. 끝의 뒤가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끝남은 기존의 모든 것의 현실적인 타당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정 또는 거절의 선언이 불가능하다면 아직 그것은 끝에 이르지 않았고, 그래서 새로움에의 진입도 이루어지기 이전임을 뜻합니다. 새것, 새날, 새해는 이전의 것, 어제, 작년과의 구체적인 결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컫는 끝과 시작이 이어짐을 전제한 끝과 시작임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시간에서 일탈하지 않는 한 그 연속을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당연하게 우리는 새해에도 지난해의 유산을 기리며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관성적인 지속이 아니라 새로움의 첨가에 의한 연속이고 그래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한, 새것과의 만남은 자유에의 진입임을 다시 확인하게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새것과의 직면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미지와 자유가 더불어 마련하는 ‘가능성의 장’입니다. 못한 것, 하지 않던 것, 감히 하지 못한 것을 의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장, 그것이 새것과의 직면이 내 앞에 펼치는 공간입니다. 새날이 그러하고, 새해가 그러합니다. 그 시간들은 모두 가능성의 지평을 내게 열어줍니다. 우리는 이 때 비로소 새로운 삶에 들어섭니다. 때로 새날, 새해가 이렇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관성적인 반복의 경험 때문에 무감각하게 잊거나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깐 문득 멈추어 서면 갑작스러운 가능성의 장의 열림을 우리는 매일, 매해 감격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2017년도 그렇게 미지와 자유와 그것들이 어우러지는 가능성의 장에서 우리의 삶을 펼쳐왔습니다. 그리고 그 해를 그렇게 그 가능성을 채우는 일로 끝냈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 가능성의 장이 모두 소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의 도래가 그러합니다.
올해는 우리 한국종교문화연구소가 서른 해가 되는 해입니다. 결코 소진되지 않는 새 가능성의 장에 들어서는 일이 새삼 미지와 자유를 격률(格率)로 하여, 그래서 탐구와 책임을 규범으로 하여, 확인될 수 있는 때를 맞은 것이지요. 2018년 새해가 참 즐겁게 두근거려집니다.
삼가 새해를 맞아 우리를 아껴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우리 연구소 울안에 계신 분들 모두에게 댁내 제절(諸節)이 균안하시고 만사여의(萬事如意)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정진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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