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선명 선생 추모집 편찬에 참여하며 news letter No.886 2025/6/10 1. 출간을 앞두고 있는 황선명 선생 추모집 편찬에 참여한 것은 대단히 뜻깊은 경험이었다. 2023년 5월에 있었던 한국신종교학회 학술대회에 황 선생님이 패널로 참여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책장에서 너덜너덜해진 《조선조 종교사회사 연구》를 꺼내 학회장인 대진대학교에 갔다. 사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당일 건강 악화로 황선명 선생님은 직접 참석하지 못했다. 급히 연결된 온라인 회의 화면에서 그분을 뵌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마도 나는 선생님과 직접 교류하며 가르침을 받지 않은 세대 가운데에서 그를 가장 활발하게 인용해 온 연구자일 것이다. 석사과정 1년차였던 2007년에 발표한 논문의 각주 1번에..

종교학적 신학자, 한국인 김경재 news letter No.885 2025/6/3 인간 현상으로서의 종교와 신학 ‘종교’는 없다. 불교, 힌두교, 유교, 기독교, 이슬람...이 있을 뿐이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은 없다. 불교인, 기독교인, 이슬람인(무슬림)이 있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살짝 가져오면, 불교든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모두 ‘인간’이라는 ‘속성’을 가지며, ‘인간’이 종교를 종교 되게 해주는 종교의 ‘형상’(eidos)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한 마디로 ‘인간 현상’인 것이다. 불교/인, 기독교/인이라는 것도 허공에 환영처럼 떠 있지 않다. 불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한국이든 어디든 구체적 장소 안에 있고, 역사적 시간과 문화적 공간에 처해있다. 여느 인간이 그렇듯이, 특정 시..

레오 14세 교황 시대의 가톨릭교회 전망 news letter No.884 2025/5/27 레오 14세 프란치스코 교황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새로운 교황이 탄생했다. 레오 14세다. 그의 나이 69세(1955년생)다. 건강이 허락된다면 그는 대략 20여 년 가까이 교황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아우구스티노회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가톨릭 남자 수도회 총장직을 두 차례 역임했다. 총장에 선출되기 전에도 두 관구에서 관구장을 역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런 그를 2015년 교구장 주교(페루 치클라요 교구)로 임명하였다. 2023년에는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동시에 추기경으로도 서임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3분의 1만(청년 시절 이전) 미국에서 살았을 뿐 대부분 페루와..

신탁의 춤: 예언과 질문의 사이공간 news letter No.883 2025/5/20 고대 그리스 파르나소스 산 남서쪽에 위치한 델포이(Delphoi)의 아폴로 신전에는 아폴로 신의 예언을 전하는 예언자 피티아(Pythia)가 있었다. 피티아의 예언은 모호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모호하지 않은 말로 예언했던 트로이아의 왕녀 카산드라의 말은 그러기에 누구에게도 예언으로 가닿지 않았다. 예언의 모호성은 단지 예언의 맞고 틀림을 비켜가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 아니었다. 예언의 언어는 즉각적인 진실의 전달이 아니라, 청자의 해석이 개입하는 일종의 시적 언어이자 그 안에는 여러 해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의도된 공백이 존재한다. 이러한 모호성은 피티아의 예언이 닫혀진 것이 아니라 해석과 토론을 통해 다양한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