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과 네 탓의 딜레마 news letter No.946 2026/8/4 1990년대 초, 한국 천주교회의 '내 탓이오' 운동은 자동차 스티커 한 장으로 사회 현상이 되었다. 이 말의 뿌리는 미사 고백기도의 "메아 쿨파, 메아 쿨파, 메아 막시마 쿨파"(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곧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는 고백이다. 서로에게 삿대질하던 시대에 그 말은 낯설 만큼 신선했다. 남을 겨누던 손가락을 자기 가슴으로 돌리자는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문장은 곧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모든 것이 정말 '내 탓'이라면, 잘못된 제도와 불의한 권력의 몫은 어디로 가는가. 자기성찰의 언어가 어느 순간 강자를 감싸는 보호막이 ..
왕릉은 언제부터 ‘참배하는 공간’이 되었을까? news letter No.945 2026/7/28 내가 조선시대 왕릉에 관해 강의할 때면 꼭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다. 왕릉 제향의 제수는 ‘소식(素食)’이라는 점이다. 곧 제사상에 고기를 올리지 않는다. 희생의 고기를 바치는 종묘의 혈식(血食)이나, 국왕이 생전에 즐겨 먹던 음식을 올리는 진전의 상식(常食)과 구별되는 왕릉 제향만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가끔 뜻밖의 질문을 받는다. “그렇다면 왜 왕릉 앞에는 갈빗집이 많습니까? 태릉갈비나 홍릉갈비가 유명하지 않습니까?”듣고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고기를 제물로 사용하지 않는 왕릉 주변이 오히려 갈비로 이름을 알렸으니 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왕릉 주변이 유원지..
나가사키에서의 단상: 침묵의 성지와 ‘신들의 미소’ news letter No.944 2026/7/21 며칠 전 자료조사를 위해 후쿠오카에 간 김에 나가사키의 일본 기독교 순교 성지를 둘러보게 되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없었기에, 이참에 하루를 비워 순례자가 되어보자 마음먹었다.규슈 나가사키 지역은 1549년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첫발을 디딘 이래, 불과 수십 년 만에 다이묘부터 민중까지 5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세례를 받은 교인이 되었고, 성당과 신학교까지 세워지며 동아시아 가톨릭의 뜨거운 용광로로 타올랐던 공간이다. 그러나 그 뜨거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금교령과 에도 막부의 혹독한 박해로 이어졌고, 1597년 니시자카 언덕의 십자가 형장과 성모상을 밟게 했던 ..
천도교의 동학 해석 news letter No.943 2026/7/14 천도교 이론가 양한묵1905년에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면서 동학의 ‘근대화’를 도모하였다. 특히 사상 분야에서는 중요한 교리서들을 간행하였는데, 이 일을 담당한 이가 지강 양한묵(1862~1919)이다. 양한묵은 한시(漢詩)에 능한 관료 출신으로, 1902년에 일본을 여행하던 중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을 만나 동학에 입도하였다. 1919년 삼일만세운동 때에는 민족 대표 33인중 한 명으로 참여하였고, 유일하게 옥사한 비극적인 인물이다.양한묵이 저술한 텍스트는 거의 연구되어 있지 않다. 1907년에 쓴 『대종정의(大宗正義)』가 번역되어 있는 정도이다(김용휘, 『손병희의 철학』 수록). 『대종정의』는 분량은 많지 않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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