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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미래로 전환하면, 통일이 보인다
2015.8.25
필자는 어제(8월 24일) ‘문선명 선생 성화 3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논평(김도공 선생의 후천개벽과 통일교의 평화론)을 맡아 선문대학을 찾았다. 여기서 ‘문선명 선생의 평화통일운동과 비전’이라는 주제 하의 기조강연이 요한 갈퉁의 ‘한반도 미래 전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제2차 대전의 전후 처리와 냉전체제의 유산이 짙게 남아있는 한반도 분쟁의 전문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대 평화학 또는 평화 연구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는 종교학계에서 종교전쟁과 폭력을 논의할 때면 자주 등장하는 학자이다. ‘평화’를 전쟁을 포함한 직접적 폭력이 없는 상태인 ‘소극적 평화’와, 간접적 구조적 폭력 및 문화적 폭력까지 없는 상태인 ‘적극적 평화’로 구분하면서, 복지나 생명, 삶의 희망 등 인간 안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적극적인 평화개념을 도입한 학자이다. 그리고 목표로서의 평화뿐만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평화도 중요시하였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도발하는 모순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베를린자유대 등 세계 유명 대학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그 동안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하여 DMZ의 평화지대화, 남북철도 연결 등을 강조한 바가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기원 교수와 한반도 통일에 대해 얘기하면서 가끔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학자이다. 김교수는 남북통일의 경제학을 공부하겠다고 베를린 자유대학에 갔다가 병을 얻어 예기치 않게 작년에 타계하였다. 김교수 생각이 나서 필자는 논평을 마치고 갈퉁 교수와 일반 참석자간의 자유 토론장을 찾아보았다. 특히, 목함지뢰 문제로 남북이 군사적 시위를 하면서 남북이 고위급회담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의 기조 강연은 필자에게 울림이 더욱 컸다. 다음은 필자가 이해한 요한 갈퉁의 기조발표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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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2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부터 한국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수많은 의제 중에 통일이라는 말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나는 남북 두 나라가 하나가 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비무장지대를 열어 하나의 공동체로서 점진적으로 통합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 두 국가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통일이 하나의 나라, 한명의 대통령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나는 항상 둘 중 하나가 붕괴되고 남은 하나가 모든 것을 넘겨받는 방식, 즉 ‘독일식 모델’의 통일을 반대해 왔다.
‘평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통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서는 먼저 두 개의 체제를 가진 하나의 한반도 연합공동체를 탄생시킨 다음에, 이를 바탕으로 서울도 평양도 아닌 곳에 수도를 둔 느슨한 연방국가를 수립함으로써 비로소 단일국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반도의 통일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점이 있다. 진짜 갈등은 남한과 북한의 갈등이 아니라 미국과 북한 사이에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평화조약을 거부하고 북한이 항복하지 않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60년 넘게 북한 붕괴를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해양 경계선 같은 남북한 사이의 분쟁은, 다툼이 있는 지역에 회색지대(gray zone)를 설치하고 서로 수익을 나눔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조만간에 이런 일이 현실화될 것으로 본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예견하는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유의해야 한다.
첫째, 미래를 상상하고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한 가지 비전이 있다. 바로 동북아시아 공동체(NEAC)구상이다. 로마조약에 기반해 1958년 1월 1일에 창설된 유럽경제공동체(EEC)나 유럽공동체(EC)를 모델로 삼는 것이다.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회원국에는 남한과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대만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일본이 가입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먼저 동북아시아 공동체를 결성하고 나중에 일본을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둘째, 통일과정에 개입하려는 4개 강대국의 이해를 반영하지 않을 수는 없다. 미국을 제외한 중국, 일본, 러시아 3국이 남한과 북한을 동북아시아 공동체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자국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핵심적 프로젝트를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셋째, 이 문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미래를 위해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고,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선동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미국이 참여한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처럼 동북아시아 국가연합의 6개국 회원들은 양자 간 또는 다자간 상호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향후 설립될 동북아시아 국가연합의 긍정적인 면으로는, 극동러시아의 비어 있는 광활한 땅, 인프라 향상을 통한 중국의 경제 성장 능력, 북한의 스스로를 믿는 정신인 주체사상의 끈기, 한국이 수행해온 동서양의 정신적 가교 역할 등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고 미래의 양국 또는 다자간 프로젝트를 위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사고의 중심을 과거에서 미래로 전환하면, 통일이 뒤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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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1930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출생한 세계적인 평화학자이자 평화운동가로서, 그를 현대 평화운동의 창시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1959년(29세) 세계평화연구소를 설립하고 5년 뒤에는 《세계평화연구》라는 잡지를 창간하였으며 같은 해 ‘세계평화학회’를 발족하였다. 1970년대 이후에는 남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유럽 내 한반도 전문가로 불리기도 한다. 60여 권에 이르는 그의 평화학 저서 가운데 《평화를 위한 선택(Choose Peace)》,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Peace by Paceful Means)》가 국내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 연구소 이사
seyoyun@daum.net
논문으로 〈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방안〉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 《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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