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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 도서출판 강, 2003, 380쪽

책소개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학자(전 서울대 교수)인 정진홍이 한 평생 읽어 온 책 중에서 가려뽑은 책 8권에 대한 감상과 해설을 담은 책.

이 책에서 저자는 '당신들의 고전' 이 아닌 '나의 고전'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묻는다. '나는 왜 이 작품들을 거듭 되풀이 읽게 되었는가? 왜 읽을 때마다 이들 책은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로 다가오는가? 내게 고전은 무엇인가?' 고전은 낡은 권장도서 목록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곳에서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이윽고 삶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되읽기는 그 동행의 풍경이라고. 고전을 앞에 둔 저자의 고백은 감동과 찬사의 말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불만에 찬 항변과 신랄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고전은 무서운 권위의 이름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십여 년의 시간을 두고 전개되는 고전 작품들과의 투명한 대화는 살아있는 실체로 고전을 호출하는 아름다운 울림을 남긴다.

저자

정진홍

1960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이화여자대학교 이화학술원 석좌교수로 있다. 종교현상학이 전공분야이고, 『종교문화의 이해』,『종교문화의 인식과 해석』,『종교문화의 논리』,『경험과 기억』,『열림과 닫힘』등의 저서가 있다.

목차

머리말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 도스토예프스키
역사가 쓴 시 / 일연
문학과 경전 사이 / 허먼 멜빌
연극이 끝난 뒤의 침묵 /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이야기 / 귀스타브 플로베르
돈 끼호떼, 도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 세르반떼스
"내가 바로 아Q야!" / 노신
니체를 위하여 니체를 잊다 / 니체

출판사서평

나는 왜 고전을 읽는가 ― 되읽기의 즐거움에 대한 고백

어떤 책은 한 번 읽고 그만이지만, 어떤 책은 평생을 두고 계속 다시 읽게 된다. 후자의 경우 책은 한 인간의 삶에 실존적인 만남의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을 다르게는 울림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 일컫는 책들이 그러하지만 만남의 방식과 책의 목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나만의 고전’이 있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를 지낸 종교학자 정진홍이 이 책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나만의 고전’ 이야기다. 따라서 아주 사적인 독서 체험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의 글 어느 모퉁이에서도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권위적인 목소리를 찾을 수 없다. 저자 정진홍이 고백하는 이야기는 때로는 작품의 어두운 그림자에 가위눌리고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면서 끊어질 듯 이어온 고전과의 진솔한 대면기(對面記)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전 읽기의 당위와 필요성을 역설하는 그 어떤 글에서도 볼 수 없는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책과의 만남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세상에는 한 번 읽고 덮을 수 없는 책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저는 이것을 ‘축복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어떤 책을 평가하는 데는 그것이 되풀이해서 읽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분명한 척도는 없을 듯합니다. 되읽음을 충동하는 긴 여운, 끝내 그 여운을 지울 수 없는 아련한 유혹을 내 안에서 일도록 하는 어떤 ’처음 읽음‘의 경험, 그리고 그것에 대한 회상, 그렇게 해서 어쩔 수 없이 되읽음 속으로 들어가 침잠하는 일, 이러한 일련의 구조가 이른바 ‘고전’을 마침내 일컫게 하고, ‘고전 읽기’의 문화를 일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머리말에서)

다시 읽게 만드는 힘, 그리하여 처음 읽었던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처음을 경험하게 만드는 긴 울림이야말로 저자에게는 고전 읽기의 원체험이었다. 그리하여 저자는 “처음 읽어 좋았던 책, 그런데 두 번 읽어 다시 좋았던 책, 그래서 읽을수록 새삼 새 책을 읽는 듯한 새 감동이 빚어지는 책, 그것을 저는 저 나름으로 ‘고전’이라 일컫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기준으로 자신의 삶에서 거듭 되풀이 읽으며 그 의미를 되새겼던 작품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는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물론 저자의 삶과 동반한 고전의 목록이 이 여덟 편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빈번하게 반복해서 읽은 책들을 임의롭게 선정한 것일 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일연 『삼국유사』. 허먼 멜빌 『모비 딕(백경)』. 셰익스피어 『햄릿』.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세르반떼스 『돈 끼호떼』. 노신 『아Q정전』.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저자는 반복되는 독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매번 이들 책에 감동을 받거나 설득당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때 그때의 자신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심지어 불만스럽기까지한 부분도 많았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예를 들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를 읽으면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사치스런 고뇌에 대해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마담 보바리'의 통속적인 줄거리에 대해서는 도중에 책을 덮어버릴 정도였다고 실망감을 숨기지 않는다. '모비 딕'을 두고는 불만스러운 부분을 잘라내고 다시 쓰고 싶다고 말한다. '햄릿'의 아포리즘 과잉과 독백의 소음도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돈 끼호테를 미친 사람으로 마음껏 부려먹는 작가 세르반떼스에 대한 항변은 신랄하기까지 하다. 고전 작품의 권위가 감동과 이해를 강요할 수 없으며, 독자의 자유로운 읽기가 마침내는 진정한 감동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항변과 비판이 다양한 이해의 자리를 품어내고 시간의 변덕을 견뎌내는 고전의 힘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한편, 알료사로부터 돈을 받은 가난한 사람이 그 돈을 구두 뒤축으로 짓밟는 장면을 문득 떠올리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를 다시 찾아 읽기로 했다는 저자의 고백은 늘 자존심과 씨름하며 가정교사 생활로 학비를 벌어야 했던 저자의 아픈 시간을 보여준다. 말고도 허기를 채우느라 빵값으로 사라져버린 책값 앞에서 망연해했던 경험, '아Q정전'과 겹쳐지는 고등학교 동양사 선생님의 기억 등은 책과의 만남에 이어지는 저자의 실존적 풍경을 풍성하게 되살려준다.

고전과의 만남을 충동하는 감동적인 독서 체험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은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아온 한 종교학자의 소중한 독서 체험록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단순한 책읽기의 경험이 아니라, 책과의 살아 있는 만남이다. 어떤 한 권의 책은 운명처럼 다가와서 평생을 함께한다. 처음 읽을 때는 그저 줄거리만 따라간다. 어떤 대목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러다 되풀이 읽으면서 그 책의 새로운 얼굴과 만난다. 전혀 다른 책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가능케 하는 책이 곧 ‘고전’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사십여 년의 시간을 두고 전개되는 고전 작품들과의 투명하고 풍성한 대화,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에서 우리는 살아 있는 실체로 고전을 호출하고 되만나는 아름다운 광경들을 본다.

여덟 편의 독서 체험기 각각의 말미에는 저자가 가려 뽑은 ‘나를 움직인 대목’이 들어 있다. 반복되는 독서 속에서 저자 정진홍이 거듭 밑줄을 그은 대목이다. 작품 인용문 뒤에 붙은 저자의 짧은 코멘트는 그것만으로도 고전 작품의 흥취를 되새기는 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고전 작품에 대한 독서가 갈수록 드문 일이 되어가고 있는 이즈음, 이 책은 고전과의 만남을 충동하는 감동적인 독서 체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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