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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삼국의 추석은?

- 추석(한), 중추절(중), 오봉(일) -


2011.9.6


추석이란 명칭의 문헌상 기원은 예기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추석이란 명칭이 보이지 않고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월석(月夕)이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명칭을 합하여 속명으로 추석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추석이란 명칭은 그다지 많이 쓰이지 않았고, 각종 문헌의 속절(俗節) 기사에도 주로 중추가 쓰였다.

일본에서는 우리의 추석과 유사한 풍속으로 오봉(お盆)이 있으나, 불교 우란분절의 조상 천도의례가 민속이나 신도와 결합하여 민간풍속화한 것이다. 일본의 세시풍속에는 추석이 없다. 중국에서도 최근 추석이 명절화하여 연휴 인파가 북적이긴 하나, 조상 천도의 의미나 가을 곡식 천신의 의미는 없다. 단지 달 구경하며 친지와 모여 월병 등을 먹는 유희-친목를 도모하는 날로 여겨지고 있다.

추석은 역사 시기마다 약간의 변천은 있었지만, 동양 삼국에서 우리나라에만 특유하게 발달한 세시풍속이다. 중국의 세시기인 형초세시기에도 8월 풍속으로 두화우(荳花雨, 8월 비, 콩이 익는다), 14일의 주묵점(朱墨點, 붉은 먹을 아이 이마에 찍어 역질을 막는다) 등의 간략한 기록이 있을 뿐이다. 또한 당나라 때 기록인 입당구법순례행기에도 신라 적산원에서 8월 15일에 전포와 떡을 장만하여 명절로 쇠었는데, 이는 오직 신라에만 있는 풍속이라 하였다. 이는 발해와 싸워 이긴 승전기념일이기도 하여, 이후 조선의 명절과는 그 성격이 다르긴 하나, 8월 15일의 제의(명절) 풍속이라는 점에서 신라의 길쌈의례와 이후 곡령제(穀靈祭) 및 조상제사(祖靈祭)의 추석을 연결지을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추석은 예전에 국가의 공식 사전(祀典)체제에 속하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공식 명절은 아니다. 오늘날 추석은 공식적으로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라 그냥 쉬는 날일 뿐이다. 단지 1962년 이후 일제 총독부의 의례준칙의 변형인 ‘(건전)가정의례준칙’에 설과 더불어 차례를 지내는 날로 지정되었고,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않고 간소하게 지내라고 규정되어 있었다. 그나마 이 가정의례준칙도 현재는 폐기되었다. 추석은 설과 더불어 예나 지금이나 그냥 민속 명절일 뿐이다.

중국의 중추절은 달구경(賞月) 하고 월병(月餠)을 먹으며 가까운 친지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날이다. 고대의 황제는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8월의 밤에 달에게 음악을 연주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이후 조금씩 민간에 달구경하는 풍속이 생기게 되었다. 황제의 달 제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좀더 가벼운 놀이 및 친목도모의 날로 변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중추절에는 월병을 먹는데, 내려오는 이야기에 원나라 말 농민봉기시에 서로 선물로 월병을 주고 받았는데, 월병 내에 쪽지를 넣어서 8월15일을 한족 봉기의 거사일로 약정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는 현재 중국 중추절의 가장 큰 풍속인 월병이 명나라 시기에나 정착되었음을 알려준다.

중국에서는 가을의 둥근 달이 단결과 화목의 상징이라 여겼기 때문에 단원절(團圓節)이라고도 불렀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중국인들은 달의 둥금과 이지러짐으로 ‘슬픔과 기쁨, 이별과 상봉’을 표현하였고, 타향살이 나그네들은 달에 애틋한 감정을 실어 시로 담아내기도 하였다. 당나라 시인 이백의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보고 고개 숙여 고향을 그리네’, 두보의 ‘이슬은 오늘 밤처럼 하얘지고 달은 고향 달이 밝겠지’ 와 송나라 왕안석의 ‘봄바람은 또 강남의 강가를 푸르게 하는데 밝은 달은 언제나 나의 귀향 길을 비출까?’ 등의 시구는 천고의 명시로 남아 있다. 중국에서는 중추절에 각지에서 대규모의 경축행사가 벌어지는데 제일 대표적인 것이 등회(燈會)이다. 중추 등회로는 반용채등(蟠龍彩燈), 각양각색의 채색등, 연화주마등(蓮花走馬燈), 금용비무(金龍飛舞), 등용전(燈籠展)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풍속에 공식적으로는 추석이 없다. 대신 유사한 풍속으로 오봉(お盆)이 있다. 오봉은 원래 우라봉(盂蘭盆 : 우란분)이라고 하여, 범어의 ullambana(울람바나 : 倒懸)을 음사한 용어의 준말이다. 지옥(아귀도)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받는 부모를 구제하는(救倒懸) 날(盂蘭盆節, 음력 7월 15일)로서 부처의 일생과 관련한 4대 명절과 더불어 5대 명절로 치기도 한다. ‘우란분경(盂蘭盆經)'이라는 불경이 이 행사의 직접 근거가 되어 있다.

오봉은 음력 7월 13-16일로 4일간 지낸다. 각 가정에 모신 불단(佛壇)을 청소하고 13일 집 문에 무까에비(迎え火)를 켜놓고 조상님을 모신다(맞이하는 盆). 특별한 제사는 지내지 않고, 불단에 등을 켜놓고 오는 사람마다 향을 켜 불단에 놓고 합장을 한다. 15-16일에는 조상의 영혼을 다시 저승으로 보내는데(보내는 盆), 그때 등불을 켜놓고 바다나 강물에다가 띄우는 도오로오나가시(燈籠流し)는 자못 환상적이다. 조상님 전송하는 일종의 유등제(流燈祭)라 하겠다. 사찰이나 신사를 방문하여 제를 지내기도 하고, 집안에서 오봉을 모시지 않을 때는 고향을 방문하여 부모님께 선물(주로 생선)을 하고, 성묘를 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묘소는 대부분 사찰에 있기 때문에 성묘(하까마이리, 墓參り)는 사찰로 간다. 오봉 시기에는 일본인 약 2천만 명이 이동을 한다고 한다. 음력 7월 13-6일이 공식 휴일이라 대부분 이 시기에 오봉을 지내나 때로 양력 7월 15일, 혹은 양력 8월 15일 전후하여 조상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오봉 때 가장 큰 행사는 봉오도리(盆踊り)라는 축제 행사다. '봉'은 오봉이며, '오도리'는 '춤'이다. 이는 하나의 민속 춤인데, 동네 사람들이 저녁에 유까따(浴衣)라고 하는 예쁜 무명 홑옷을 입고 모여 망대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춘다. 보통 신사나 절 구내에서 거행하며, 통나무를 짜서 높이 3~4m 정도의 망대를 만들고, 그 위에 북을 올려서, 민요 같은 음악(대개 레코드로 재생된다)에 맞춰서 북을 친다. 봉오도리의 원뜻은, 조상과 그 밖의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고 저승으로 다시 보내자는 데 있었다. 저승에서 찾아온 영혼들이 이승에 있는 후손들과 함께 즐겁게 춤추고 다시 저승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봉오도리의 뜻은, 일반적으로 노오료오 봉오도리따이까이(納凉盆踊り大會)라고 불리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한여름의 무더위를 잠시라도 잊어버리고 시원한 저녁 바람을 즐기는 행사로 변형되었다.

이상 살펴본 대로 음력 8월 15일은 한국에서 특히 발달한 풍속이다. 신라나 고려 시기의 추석이 조선과는 많이 다르지만, 신라의 가배-고려의 9대 속절-조선의 조상제사와 수확의례로 이어지는 전통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보기 어렵다. 중국은 달구경과 월병 먹기, 일본은 조상천도(오봉)로 우리의 추석 풍속이나 의미와는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 추석이 중국이나 일본에 없는 한국의 고유문화라 하여 특별한 의미를 억지로 부여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보름에 달보고 잔치하고, 혹은 조상 모시고 풍농 즐기고 하는 것은 그 형태와 문화의 비중은 다를지라도 어디나 있는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달 관련된 문화양상의 하나다.

진철승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교수

jcs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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