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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5호- 프로테스탄트와 기독교 사이에서(이진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3:29

프로테스탄트와 기독교 사이에서

2008.8.12

몇 년 전에 천주교 관련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나에게 주어진 주제는 개신교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제목을 “xxx와 개신교”로 잡아 실무자에게 보냈다. 그런데 얼마 후 실무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논문 제목을 “xxx와 프로테스탄트”로 바꾸었으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교구에 계신 ‘윗분들’이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교구청의 홍보물에는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발표 자료집에는 ‘개신교’로 표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천주교인들은 모두 개신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줄 알고 있었다. 천주교의 ‘윗분들’이 ‘개신교’보다 ‘프로테스탄트’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왜 ‘윗분들’은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것일까? 나중에 가톨릭에서 나온 용어사전을 찾아보고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사전에 의하면 프로테스탄티즘은 개신교를 가리키는 ‘공식 명칭’이고 개신교는 상대방에 대한 ‘존칭’이었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윗분들’은 공식 명칭을 고수한 반면 학술대회 관련자들은 존칭을 사용한 셈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로테스탄티즘의 어원은 부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개신교 세력을 비난하면서 ‘반항하는 자들’(protestant)이라고 부른데서 생겨난 말이다. 물론 개신교 진영은 후에 이 용어의 의미를 전치시켜 긍정적 의미로 사용해 왔지만 한국 가톨릭교회의 보수 진영에서는 아직도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공식 명칭’이라는 객관성의 배후에 부정적 의미가 숨어 있는 셈이다.

한편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스스로를 개신교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개신교 단체들의 명칭도 거의 대부분 ‘기독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한국 개신교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양대 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명칭에도 ‘기독교’가 들어가 있다. 개신교의 역사를 서술한 통사의 제목들도 대부분 한국기독교사, 한국의 기독교사, 한국기독교회사 등으로 되어 있다.

기독교(Christianity)라는 용어가 동방정교회, 로마가톨릭교회,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총칭이라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그런데 명칭상의 혼동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한국 개신교계가 ‘기독교’라는 용어를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개신교사를 전공하는 동료 연구자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본 적이 있는데, 선교 초기부터 ‘개신교’ 대신 ‘기독교’라는 용어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사실 초기 문헌에서부터 ‘기독교’가 개신교를 가리키는 용어로 가장 많이 사용되어 왔다. 그러면 왜 개신교 진영은 초기부터 개신교 대신 기독교라는 용어를 표방하였을까? 당시 선교의 장에서 치열한 경쟁 상대였던 가톨릭을 의식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참된 기독교, 진짜 기독교임을 주장하려는 욕망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동료의 지적처럼 한국 근현대사에서 ‘기독교’라는 용어가 지닌 역사성을 부정하고 싶지 는 않다. 그렇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이 용어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한다. 천주교와의 관계에서 우선 그렇다. 천주교는 개신교가 기독교라는 용어를 독점하는 바람에 이 용어가 오염되었다고 보고 ‘Christianity'를 가리켜야 할 경우 ‘기독교’ 대신 ‘그리스도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태는 혼란만 가중시킨다.

종교학, 사회학, 역사학과 같은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은 개신교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개신교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어려움에 부딪치곤 한다. 한편의 글 안에서 개신교와 기독교라는 용어를 혼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는 기독교라는 용어로 표기된 텍스트 혹은 현상을 개신교라는 용어로 분석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종종 혼동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필자 나름대로 괄호치기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곤혹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얼마 전에는 개신교계 잡지사의 요청에 의해 ‘xxx와 개신교’라는 제목으로 글을 보냈는데 나중에 받아본 잡지에는 제목이 ‘xxx와 기독교’로 바뀌어 있었다.

이처럼 ‘개신교’는 가톨릭교회의 ‘권위주의’와 개신교의 ‘독점주의’ 사이에서 그 존재를 위협받고 있다. 필자와 같은 사람이 아무리 ‘개신교’라는 명칭의 필요성을 주장해도 교회 현장에서는 ‘프로테스탄트’와 ‘기독교’라는 명명법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개신교‘라는 용어를 고수하고 싶다.

이진구(호남신대 초빙교수, jilee80@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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