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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29호를 맞이하여
2016.4.19
종교에 대한 문화비평 혹은 종교문화에 대한 비평을 목표로 창간된 〈종교문화비평〉이 어느덧 지령 29호를 맞이하였다. 우리네 인생에 비유하자면 20대의 마지막에 다다른 셈이다. 30대로 넘어가기 전에 한번쯤 지난 시절을 회고해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면 30대를 목전에 둔 〈종교문화비평〉도 지난 세월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번호 특집 주제는 ‘종교 가르치기’이다. 종교(학)을 가르쳐 본 사람이면 누구나 가르치기에 따르는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물론 강의하는 사람마다 어려움의 내용이 다르고 시간이 지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의 성격도 달라지겠지만 강의를 하는 한 어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르치기는 독백이 아니라 타자를 대상으로 한 공적 행위로서 타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동시에 그에 따르는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르치는 자는 늘 긴장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러한 긴장감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이번 호는 종교 가르치기에 수반되는 이러한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나름의 대안을 모색해 보기 위한 장으로서 ‘종교 가르치기의 안과 밖’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다섯 편의 글을 실었다. “당신은 왜 종교를 가르치십니까?: 종교는 그저 예일 뿐”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물음과 답변을 던지면서 시작하는 첫 번째 글은 종교 가르치기와 관련되어 제기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즉 종교와 학교, 신학과 종교학, 연구실과 강의실, 나아가 종교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두 번째 글은 종교사 서술에서 오래 동안 강력한 패러다임 역할을 해 온 ‘세계종교’ 개념에 대한 최근의 논쟁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논의를 강의 현장에서 어떻게 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던지고 있다. ‘종교를 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탐색한 세 번째 글은 강의 내용의 전달 도구로서 ‘영화 보기’가 아니라 ‘종교를 보는’ 행위 자체가 기존의 종교학적 개념이나 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 가르치기’의 한 부분으로서 ‘신화 가르치기’에 주목한 네 번째 글은 동아시아 근대의 단일민족 신화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면서 신화가 지닌 정치적 함의를 드러내는 동시에 이러한 ‘신화 만들기’의 과정을 강의에서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글은 대학 강의실보다는 미션스쿨이라는 교육공간에서 ‘종교교육’ 담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종교자유’ 논쟁을 종교권력, 국가권력, 시민 권력의 삼각구도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종교 가르치기의 바깥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
이상 다섯 편의 특집 논문을 통해 ‘종교 가르치기의 안과 밖’을 살펴보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는 지적이 있어 보완 작업의 일환으로 특별 좌담회를 개최하고 녹취 내용을 실었다. 이번 좌담회에는 수십 년간 강의를 해 오신 원로학자, 대학에서 종교학을 가르쳤거나 현재 가르치고 있는 종교 연구자, 대학원생, 그리고 현재 전공을 탐색하고 있는 학부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의 구성원이 참여하여 종교 가르치기와 종교 배우기에 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구논문은 세 편을 실었는데, 조선시대의 국상(國喪)에 등장하는 음식의 의미를 탐구한 첫 번째 논문은 망자에게 올리는 음식이 망자의 영혼 안정 및 상주의 충격 극복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세밀하게 추적하였다. 일본 창가학회와 공명당의 관계를 다룬 두 번째 논문은 언론의 기대와 달리 공명당이 자민당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여당 프리미엄을 갖고 싶어 하는 공명당 지도부의 조직보존의 논리에서 찾고 있다. 프로이트의 종교론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한 마지막 글은 프로이트의 종교론이 최근의 인지과학이나 진화심리학과 관련하여 재평가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최근 돈황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의 이민용 이사께서 〈종교문화기행〉을 맡아 주셨는데 이번 글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불교(학)와 종교(학)에 대한 나름의 견해, 그리고 젊은 날의 학문적 열정을 생생한 사진자료와 함께 ‘환상적’으로 풀어낸 옥고이다. 〈설림〉은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대학의 허남린 교수가 지난 30여년의 학문 활동을 되돌아보면서 느낀 소감으로 채워 주었는데, 종교연구와 관련하여 깊이 유념해야 할 메시지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주제서평〉은 최근 인지과학 분야에서 나온 파스칼 보이어의 《종교, 설명하기》와 대니얼 데닛의 《주술을 깨다》를 비교의 관점에서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글은 <종교문화비평>29호(2016년 3월31일 발간) 권두언에 실린 글 입니다.
이진구_
종교문화비평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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