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415호-호모 나랜스(Homo Narrans)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6. 8. 26. 16:52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2016.4.26

 

 

우리는 이야기하는 존재이다. 마치 파편과 같은 우리 경험을 이야기로 엮음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삶을 인식하게 된다. 삶 자체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것은 언제나 이야기의 형태로 우리에게 알려지고 다가온다. 삶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곳에 삶이 있다. 삶은 이야기 행위를 통하여 의미를 잉태한다. 이야기가 없는 삶은 생물학적 생존의 연속일 뿐이다. 이야기는 삶의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혼돈의 요소들을 질서의 구조 속에 위치하게 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는 인간의 삶을 빚는 셈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지칭하는 말들은 지역마다 상이하다. 대표적으로 뮈토스(Μμθος)가 있다. 뮈토스의 뜻은 ‘입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이다. 한국사회에 뮈토스라는 말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육당 최남선이다. 그는 1922년 9월 17일부터 1923년 3월 11일까지 주간(週刊) 《동명》에 〈조선역사통속강화 개제(朝鮮歷史通俗講話 開題)〉를 연재하였고, 신어(新語) ‘신화(神話)’를 설명하면서 “조선어 ‘이악’이 희랍어 미토스(mythos = something spoken) 라는 말과 의취가 비슷함은 언어상에 나타나는 문화계단(文化階段)의 일치를 살필만한 일예증(一例證)을 삼을 만하다”고 하였다.

 

 

 

주목할 것은 이야기로서 전승되던 것의 일부는 근대에 이르러 하나의 범주에 통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신화(myth)’라는 범주이다. 현재 우리가 건국신화라고 하는 것은 근대의 민족적 구심점 확보를 위해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전승 가운데 일부를 선별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가령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왕검조선) 조에서 빈녀양모조(가난한 여인이 어머니를 봉양하다)에 이르기까지 총 138조항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 가운데 고조선 조 중에서도 고기(古記)를 인용한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 단군은 이에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나이가 일천구백팔세였다” 라는 이야기는 신화라고 범주화한다. 또 북부여 조, 동부여 조, 고구려 조, 신라시조 혁거세왕 조, 제사탈해왕(第四脫解王) 조, 가락국기 조의 이야기는 신화라고 한다. 이상의 여덟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 이야기는 신이(神異)한 내용이 있더라도 신화라고 하지 않는다. 이는 신화라는 말이 본래적이고 자명한 말이 아니라 역사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중고등 교과서의 고조선을 서술한 부분을 보면 “단군의 건국이야기는 우리 민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민족의 단결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고등학교 《한국사》, 비상교육, 교육부 검정, 2013년 8월 30일) 또 “단군이야기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기록으로 남겨진 것으로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단군 이야기를 통해 고조선 건국과 관련된 청동기시대의 사회모습을 알 수 있다.” (중학교 《역사 상》, 미래엔, 교육과학기술부 검정, 2010년 7월 30일)라고 하였다. 교과서에서 단군을 언급하면서 공통적으로 ‘이야기’라고 표현한 것을 보며 어떤 사정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필자만의 억측일수 있다. 다만 아직도 일부에서 단군이야기를 신화라고 하는 것이 일제강점기의 식민사관의 잔재라고 성토하는 태도는 바로잡아져야 할 것이다.

 

 


하정현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1920년대-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의 형성과 전개>,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신화와 신이, 그리고 역사〉 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