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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56호-조상숭배와 종교학, 그리고 피에타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7. 2. 8. 19:03

 

조상숭배와 종교학, 그리고 피에타스 


 news letter No.456 2017/2/7

 

 

 

 

 

 

 

 


설이 지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깝고 먼 길을 달려 정해진 목적지로 향하는 풍습은 여전하였다. 이날 얼마나 많은 인구가 조상 차례에 참여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제물 준비 과정에서 빚어지는 가족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는 현상을 보면 아직도 적지 않은 가계가 이 오래된 의례를 무시하지 않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특별히 가정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번거롭게 차례를 지내지 않는 가족이라도 조상을 모실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아마도 이런 방법을 활용하면 설 연휴 기간 동안 조상들에게 죄송한 감정을 느낄 필요 없이 해외로 가족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조상숭배(ancestral worship)는 종교학에서 다루는 중심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사실 이 개념은 인류학자나 민속학자들도 중시하였다. 한국의 학계로 좁히면 종교학자보다는 이들이 쌓아올린 연구 성과가 더 많다. 자료를 검색하면 한국의 종교학자들이 조상숭배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외람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최근 들어 필자는 이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동아시아 전통 사회에서 조상숭배는 유교, 불교, 도교처럼 하나의 독립된 종교는 아니었지만, 이들 종교들의 경계를 넘어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었다. 조상숭배는 특정 종교의 독점물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속한 것이었으며, 심지어 그러한 종교가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 곳에서도 나타났다. 조상숭배는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 그 존재가 눈에 띄지 않았던 종교전통이었다. 하지만 조상숭배는 동아시아 세계를 구성하였던 기본 원리로서, 유교, 불교, 도교 등과 같은 개별종교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토양이 아니었을까. 만약 이러한 판단이 그릇되지 않다면 그동안 한국 종교학계에서 다른 주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조상숭배를 소홀히 취급하였던 태도는 단순히 우연에서 비롯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조상숭배는 근현대 한국종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매력적인 주제로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령 현대 한국사회에서 기독교나 불교, 신종교를 전공으로 채택한 경우는 많아도, 특별히 조상숭배에 관심을 보인 종교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종교상황에서 조상숭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조상숭배의 존재방식은 전통시기와 비교할 때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개별종교의 안과 밖으로 사회 저변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는 사실만큼은 공통적이지 않을까 추측한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은 조상숭배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종교현상이 한국사회에 존재한다는 점이고, 이에 대한 규명은 종교학자로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현대 한국종교에 대한 이해는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마이어 포티스(Meyer Fortes)는 아프리카 탈렌시(Tallensi)인들의 조상숭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피에타스(pietas)라는 개념을 제출한 바 있다. 그는 탈렌시 사람들이 보여준 모종의 행위를 지칭하기 위하여 특별히 라틴어 피에타스를 동원하였다. 피에타스는 우리의 효(孝)에 해당하는 개념으로서 살아 있는 부모와 죽은 조상들을 위하여 자식으로서 반드시 지켜야하는 의무를 말한다. 그런데 피에타스가 나온 배경을 살펴보면 의외의 사실이 드러난다. 포티스에 따르면 피에타스는 부모자식간의 애정이 아니라 잠재적 갈등상태에서 형성된 것이다. 부계 혈통을 따르는 친족 구조에서 부자 관계는 잠재적인 갈등과 대립의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가 소유한 모든 권한과 권위는 언젠가는 그의 계승자인 장자에게 넘어가겠지만,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갈등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소유물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다.


피에타스는 이러한 잠재적 갈등이 현실화되는 것을 막고, 궁극적으로는 아버지가 지닌 소유물이 아들에게 원활하게 이양되도록 돕는 기제이다. 아버지의 소유물은 원래 조상들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조상을 향한 피에타스는 부자간 소유권 이전에 윤할 작용을 할 것이다. 또한 아들은 살아 있는 아버지를 향한 피에타스에 충실함으로써 부자간의 갈등을 잠재운다. 결국 피에타스는 탈렌시인들의 친족 및 사회 구조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포티스는 과학기술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피에타스가 행해진다고 말한다. 그는 1961년 당시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했던 소련의 유리 가가린 소령을 예로 든다. 가가린은 비행 직전 ‘이 전대미문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하여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안치된 레닌 무덤을 찾았다. 최근 한국은 피에타스가 정치적으로 효력을 발휘한 대표적 사례를 경험하였다. 딸이 20여 년 간의 장기집권 끝에 죽은 아버지를 향하여 보여준 피에타스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가 얻은 권력은 살아 있는 유권자들로부터 위임 받은 것이었으나, 본질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지지자들이 그의 죽은 아버지를 향해 보여준 피에타스 역시 그의 피에타스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임현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temps82@hanafos.com
최근의 논문으로 〈갑골문에 나타난 상대 후기 사전 체계에 대한 고찰〉, 〈상대 무교 인식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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