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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인구 조사와 관련하여 떠오른 몇 가지 생각

 

 

 

 

news letter No.453 2017/1/17

 

 






지난주 뉴스레터(452호, 2017년 1월 10일)에는 “탈종교 시대, 대체종교들이 한국의 종교지형을 새롭게 만들다”라는 제목 하에 2015년 종교인구 센서스 결과를 분석하는 글(윤승용,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이 실렸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최근 한국의 종교지형과 종교인구 변동추이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시사점을 주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이번 조사 결과와 관련하여 종교연구자들 사이에서 좀 더 다양한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도 이번 조사결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이 지면에서 또 다른 분석을 시도하기보다는 종교인구 조사와 관련하여 떠오른 몇 가지 단상을 적어 보고자 한다. 우선 떠오른 것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정부가 우리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종교인구 조사를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이때 먼저 떠오른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의 경우를 조사해 보니, 과거에는 이 나라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종교인구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 왜? 국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당신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행위 자체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에서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 차원의 전문조사 기관들이 종교인구 관련 표본조사 작업을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연구자들은 이 자료를 토대로 미국 사회의 종교와 관련한 연구를 수행한다.


종교인구 조사와 관련하여 떠오른 또 하나의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이 나라에서는 종교인구 센서스는 차치하고 신분증에 개인의 종교도 표기한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천주교, 개신교, 힌두교, 불교, 유교만 공식종교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 여섯 종교 중 하나를 표기해야 한다. 그 이외의 종교에 속하거나 특정 종교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은 ‘기타’로 표기하거나 공란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게 보이는 이러한 제도가 왜 시행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이 제도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


이 짧은 글에서 이 제도의 등장과 관련한 복잡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논할 수 없고(모든 국민은 ‘하나의 신’을 믿어야 한다는 인도네시아의 건국이념과 공산주의자[무신론자]를 색출하기 위한 반공주의의 합작품?) 단지 오늘날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이 제도에 대해 지니는 태도만 간단히 언급해 보고자 한다. 신분증에 종교 표기를 의무화는 이 제도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소수종교에 속한 기독교인들 혹은 특정 종교를 지니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이 제도가 암묵적인 사회적 차별을 조장한다고 하면서 폐지를 요구한다. 하지만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지배종교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슬람의 지도부는 이 제도의 존속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러한 상반된 반응은 특정 사회 안에 존재하는 주류(다수) 종교와 비주류(소수) 종교의 역학 구도를 생각하면 비교적 쉽게 이해될 수 있는 현상이다.


종교인구 조사와 관련하여 떠오르는 마지막 국가는 지중해 동편에 자리한 작은 국가 레바논이다. 이 나라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정부 차원의 종교인구 조사를 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전혀 다르다. 미국은 개인의 인권(종교자유)침해 방지를 위해 정부 차원의 종교인구 조사를 하지 않는 반면, 레바논의 경우는 정치권력의 분배를 둘러싼 역학구도와 관련되어 있다. 이는 무슨 의미인가?


2차대전 종전과 더불어 독립국가로 탄생한 레바논에는 건국 당시부터 다양한 종파가 난립하고 있었다. 거시적으로는 기독교와 이슬람으로 양분되지만 기독교와 이슬람 내부에 각각 다양한 종파가 난립하는 구도이다. 더구나 이 종파들은 여러 이유로 인해 상호간 심각한 갈등과 충돌의 역사를 경험하였다. 따라서 건국 당시 레바논은 종파별 교세에 따라 권력을 배분하는 독특한 종파안배제도(confessionalism)를 채택하였다. 독립 이전에 실시된 종교인구 센서스 결과가 권력배분의 기준이 되었는데 당시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비율은 6:5였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기독교인(마로나이트파), 총리는 무슬림(수니파), 국회의장은 무슬림(시아파), 국방장관은 기독교인(마로나이트파)의 몫으로 배분하는 등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을 종파의 교세에 따라 안배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인들의 해외 이주와 아랍인의 유입으로 기독교인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무슬림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따라서 이슬람 측에서는 종교인구 조사를 다시 하여 종파별 권력배분을 재조정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다수파를 차지하면서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 마로나이트 진영에서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종교인구 센서스 결과가 초래할 후폭풍이 두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레바논에서는 이 제도가 정국 안정보다는 사회 분열을 조장한다고 하면서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지금까지 스케치 해 본 것처럼 3개국(미국, 인도네시아, 레바논)은 각국의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 따라 종교인구 조사와 관련하여 다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만일 우리나라에 인도네시아처럼 주민등록증에 종교표기란을 두자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또 레바논처럼 종파별로 권력을 배분하자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이 두 제도의 도입에 찬성하자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만일 미국의 경우처럼 종교인구 센서스가 개인의 종교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면서 중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 사람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무지의 소치인지 알 수 없지만 필자는 아직까지 우리나라도 종교인구 센서스를 중지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진구_
종교문화비평학회 종교문화비평 편집위원장
논문으로는 <미국의 문화전쟁과 '기독교미국'의 신화>, <최근 한국 개신교의 안티기독교 운동과 대응양상>, <다문화시대 한국 개신교의 이슬람 인식:이슬람포비아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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