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핏줄’, 지금 여기 있는 옛날 이야기
news letter No.521 2018/5/8
얼마전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삼국사기》 완질본이 처음으로 국보로 승격되었다. 문화재청은 1970년과 1981년 각각 보물 제525호와 보물 제723호로 지정한 《삼국사기》 2건을 국보 제322-1호, 제322-2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김부식(1075-1151)을 비롯한 고려시대 문신들이 1145년에 편찬한 이 책은 국가차원에서 제작된 사서로 신라, 고구려, 백제의 흥망과 변천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고조선 건국에 관한 기록은 없다. 다만 고구려 본기 제5 동천왕조에 “21년(247) 봄 2월에 왕은 환도성이 난리를 겪어 다시 도읍으로 할 수 없었으므로 평양성을 쌓아 백성과 종묘(宗廟) 사직(社稷)을 옮겼다. 평양은 본디 선인(仙人) 왕검(王儉)이 살던 곳이다. 혹은 왕이 도읍한 왕험(王險)을 이르기도 한다(二十一年春二月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王之都王險)”고 하였다. 여기서 ‘왕검’이라는 표현을 미루어보아 김부식측 인사들은 단군의 존재는 알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삼국사기》에서 단군의 탄생 경위와 건국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삼국유사(三國遺事)》〈기이〉첫 편에는 중국의 《위서(魏書)》를 인용하여 고조선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이어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건국조 단군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이것은 천신이 하강하여 신성한 혼인을 하여 건국조가 탄생한다는 전형적인 천부지모형의 신화이다. 즉 우리의 시조는 하늘의 뜻에 따라 탄생했으며, 우리 생명의 근원이 하늘에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말에 이르러 망국의 슬픔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근대적 민족의 표상으로 새롭게 부상한 단군이야기는 민족의 기원의 신성성을 천명한 근대신화로 탄생한다. 당시의 신문기사를 보면 국망의 참담함에서 희망을 피워내려는 우리 민족의 의지가 구구절절이 배어있다.
“우리대한의 역사로 볼지라도 고구려 시대에 을지문덕이 수천의 정예병으로 수나라의 백만대군을 몰살하여 한 사람도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양만춘의 탄환같은 작은 성으로 당나라의 대군에 저항하여 전요동을 보전하였으니 이는 그 민족이 강하고 용맹함이 가위 천하에 무적함이라. 그 국혼의 강장함이 과연 대단하였다. 이와 같이 강하고 용맹하던 국혼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 대한은 건국이 4천년이요 그 민족은 모두 단군기자의 신성한 후예요.....”(1908년 3월20일 《황성신문》)
이 시기의 신문기사에서 우리민족은 단군의 신성한 후예이자 혈손이요, 우리 대한 삼천리강산은 백두의 지맥으로 설명하며 혈연공동체임을 공고히 하였다. 지난 달 판문점에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4.27 남북정상 회담이 있었다. 당시 다양한 역사적 장면과 발언이 이목을 끌었지만 필자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핏줄’이라는 두 정상의 표현에서 신화라는 것은 ‘지금 여기 있는 옛날의 이야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가 가재를 잡으려고
저녁 산골 개울에서 돌을 뒤집었다.
돌밑에서 가재가 아니라
달이 몸을 일으켰다.
일어난 달은 아이를 삼키고
집채보다 더 크게 자라서
동구밖에 섰다.
달의 뱃속에 지금 아이가 산다.
(이성선의 신화)
하정현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1920-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의 형성과 전개> ,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신화와 신이, 그리고 역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