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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열림과 닫힘>, 산처럼, 2006.05, 422쪽

열림과 닫힘

책소개

개념은 편의를 위한 이름 짓기다. 그러나 우리는 개념으로 경험을 대체하곤 한다. 종교사는 종교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의 변화라기보다 개념의 변화가 초래한 ‘실재의 지도 바꾸기’와 다르지 않다. 오늘날 우리는 마침내 종교라는 개념의 타당성을 근원적으로 되묻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당연히 새로운 언어와 개념을 요청하는 작업이다. 상상은 마침내 현대의 이성이다. 우리가 종교인이기를 그만두면 비로소 우리는 인간일 수 있는데, 우리는 그때 비로소 종교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여러 층위에서 그 의미가 드러난다. 첫째, 이 책은 인문학이 실증보다는 상상에 입각하여 전개될 때 현재의 닫힘을 열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이 책은 인문학의 기본 개념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종교현상의 특수한 개념을 묘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셋째, 이 책은 저자인 정진홍 교수의 사상적 편력이 녹아든 ‘학문적 이력서’의 의미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원숙한 종교학자가 인문학의 틀 안에서 어떻게 종교를 상상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저자

정진홍

1960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이화여자대학교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울산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종교현상학이 전공분야이고, 『종교문화의 이해』,『종교문화의 인식과 해석』,『종교문화의 논리』,『경험과 기억』,『열림과 닫힘』등의 저서가 있다.

목차

경험
현상의 기반

부닥침, 만남, 지님

안으로 지니는 일과 밖으로 드러내는 일

신뢰성의 문제

소박한 승인 : 종교담론의 처음과 끝

물음과 해답
현실과 꿈

물음의 때와 자리

물음의 현상학

물음에 대한 물음

중층성과 중첩성

열린 물음, 열린 해답

믿음
마음결 : 거리두기와 거리 없애기

마음결 : 새로운 세계 그리기와 마음먹기

마음결을 넘어서는 마음결

처음과 끝의 긍정

‘~에도 불구하고’의 역설

문화
서술범주로서의 ‘총체’

일상성과 비일상성

비일상성의 일상성

다양성과 가변성

일상성의 비일상성

역사
수용과 거절의 합류(合流)

불변하는 변화

‘역사’로서의 종교

기억과 망각

공유되는 기억

언어
이름의 존재론

기도, 주문, 강론, 침묵

종교언어의 뿌리

종교의 언어사



해석
사물과 뜻풀이

자료와 주체의 역사화

구조와 자유 또는 한계와 자의(恣意)

창조성과 현재성

해석에 대한 해석학


생각의 틀 : 하나와 둘과 여럿

편리한 분류와 정직한 인식

부정할 수 없는 현실성

몸의 결

몸짓
움직임 : 자존(自存)의 원리

몸짓이 낳는 몸짓

관성(慣性)의 의미론

몸짓의 종교사


가능성의 현실화

신 : 삶이 발언하는 ‘마지막 인식’

절대의 분산

매개의 거절

신의 파기와 교체

폭력의 규범적 요청

타자
‘우리’만들기

‘다른 우리’의 출현

연민 혹은 은폐된 배타성

종말론적 기다림 : 작은 우리

불가피한 구조 : 갈등

비교
토끼와 기계

주체의 자리 : 선택과 강화

다름의 발견

다원성의 합일과 다양성의 공존

성숙의 지표

죽음
금기의 구조와 현상

죽음자리의 상실

신비의 발언과 시적 진술

죽음권유의 문화

금기의 완성과 해체

사회
회상과 기대

처음과 끝의 이야기

힘에 의한 힘의 지배

힘과 의미의 한계

의미의 우산과 메마른 샘

맺음말 - 종교인과 종교적인 인간
개념과 경험의 괴리

실재의 지도 바꾸기

동화의 나라

새로운 언어

상상 : 현대의 이성

‘종교인’은 없다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리뷰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경험
종교는 기본적으로 인간경험에서 비롯하는 하나의 현상일 수밖에 없다.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도 결국은 인간 경험일 수밖에 없으며, 특수한 문화현상이자 역사현상인 종교도 그러한 인간경험의 표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종교경험은 다른 경험과 달리 ‘자기경험의 절대성과 비일상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경험이 없으면 표상도 없다. 경험에 대한 관심은 종교담론의 처음이자 끝이다.

물음과 해답
인간은 ‘물음을 묻는 존재’이다. 종교는 물음을 물으면서 시작되는 것이며 해답을 살면서 그 물음을 완성하는 문화이다. 특히 종교는 존재의미에 대한 물음, 즉 물을 것을 다 묻고 도달한 마지막 물음을 묻는다. 그리고 종교가 제시하는 해답은 더이상 물음을 물을 필요가 없는 마지막 해답이다. 이러한 ‘물음과 해답의 구조’가 우리가 겪는 일상 안에 있는 종교문화의 모습이다.

믿음
인간은 네 가지의 마음결을 가지고 있다. 이성, 감성, 상상, 의지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결들이 함께 모여 가 닿는 마지막 자리를 믿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믿음은 실증 여부와 상관없는 ‘마음결을 넘어서는 마음결’이다. 그런데 믿음으로부터 말미암는 판단은 스스로 과오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믿음은 스스로 도달한 완전성 이외의 어떤 다른 대안적 완전성의 존재도 승인하지 않는다.

문화
종교는 스스로를 일상적인 삶의 모습과 구분하여 문화 일반의 범주에 넣을 수 없는 비일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일상성은 일상성에 의하여 경험된 실재이다. 종교는 ‘문화 외부’임을 주장하는 독특한 문화현상인 것이다. 하지만 종교도 결국 문화현상이기에 유일하고 순수하고 정통적이고 절대적인 종교란 없다. 종교는 일상에서 구체화된 비일상성이기 때문이다.

역사
종교는 불변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종교도 변한다. 종교도 없어지고 없었는데 있게 된다. 종교도 역사가 서술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종교는 비역사적임을 주장하는 역사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기억의 상실은 동시에 신의 상실이다. 잊음은 삶을 초월했다고 주장되는 신마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한다. 공동체의 집단기억 속에서 살아 있는 한에서만 그 종교와 그 종교의 신은 존재할 뿐이다.

언어
언어는 있던 것을 참으로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없던 것도 있게 하는 존재론적 기능을 수행한다. 종교언어도 기도, 주문, 강론, 침묵 같은 다양한 언어형태를 통해 존재양태를 변화시키고 현실적인 해답을 빚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신화가 없으면 종교도 없다. 신화에서처럼 종교언어는 고백의 언어이지 인식의 언어가 아니다. 종교언어는 산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시(X)의 범주에 드는 것이다.

해석
해석은 겹겹으로 이루어진 사물에 대한 앎을 위해서 그 겹의 구조를 밝히고, 그 틀에 스며 있는 의미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해석은 ‘자료와 주체의 역사화’를 통해 사물을 새롭게 되읽는 일이다. 해석은 결정된 의미를 발견하려는 정답 찾기가 아니다. 해석은 해체된 언어의 재구축을 통해 새로운 언어를 요청하는 창조적인 작업이다. 해석은 ‘상징 만들기’와 다르지 않다. 종교학은 그러한 해석(상징)에 대한 해석학을 의도한다.


몸의 한계는 종교적 관심을 충동하는 우선하는 현실이다. 종교적 관심이란 근원적으로 몸의 현상이다. 몸은 문제 자체이면서 동시에 해답 자체이다. 종교문화를 제대로 만나려면 그 문화가 담고 있는 ‘몸이 움직이는 결’을 아울러 살펴야 한다. 몸을 통해 구체화되는 물음과 해답의 구조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몸짓
삶은 그것 자체로 몸의 연출, 또는 몸의 연희, 또는 몸짓이다. 몸짓은 몸짓 자체로 몸짓 주체의 존재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침내 ‘몸짓의 의미론’을 확인하게 된다. 몸짓은 이전과 무관한 몸짓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인과를 거절하는 ‘새 몸짓’이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몸짓으로 구현되는 ‘해답의 에토스’에 대한 해석학이 우리의 당면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힘의 절정에 이르러 힘과 만나고 싶고, 힘의 근원에서 내가 그 힘과 더불어 움직이고 싶고, 마침내 내가 힘 자체와 하나가 되고 싶은 꿈마저 지닌다. 신은 인간이 추구하는 ‘마지막 인식’ 안에서 드러나는 절대적인 힘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힘은 직접적으로 표현되기보다는 제도, 이념, 정치, 도구 등의 매개물을 통해 파편화되어 표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매개물이 절대화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인간은 매개를 넘어 절대를 회상한다. ‘힘의 상상력’은 이렇게 이중적인 역설적인 모습을 취한다.

타자
종교공동체는 ‘우리 만들기’에서 시작된다. 자기물음에 대한 해답의 발견이 감격스러우면 감격스러울수록 우리 만들기 충동은 더욱 현실적이고 강렬하게 된다. 그러므로 ‘종교적 타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것도 대부분 자신의 감동의 확산을 위한 정치적 방법론으로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해답을 누리게 되었다는 감격은 종교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증언하고 전해주겠다는 사랑이나 자비의 실천에서 종교는 항상 비종교적이거나 반종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비교
우리는 모든 사물을 어떤 사물과도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비교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공유할 수 있는 구조적 중층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비교는 불가능하다. 같은데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비교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종교와 종교를 비교하기 위한 작업 과정에서 비교주체의 문제는 언제나 마지막 열쇠로 작용한다. 비교를 통한 인식이 결국 해석학에 도달하는 것은 비교주체의 실존적 현존이 간과될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문화와 관련하여 비교는 다만 인식을 위한 방법론이라기보다 당연하게 요청되는 규범이자 도덕이다.

죽음
인식과 경험의 괴리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삶의 현실이 바로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인간의 ‘역설적인 경험’은 그것이 금기로 설정된다는 사실을 통해 비로소 더 분명하게 서술될 수 있다. 종교의 죽음담론은 금기현상으로 드러나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시적 진술이다. 또한 종교만이 순교나 성전의 형태로 죽음과 죽임을 권유한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금기의 설정과 해체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
제대로 된 사회 또는 통합된 사회는 언제나 지금 없는, 그러나 이전에는 있었던, 그리고 이후에 이루어질 회상과 기대의 ‘신화적’ 현실이다. 그러므로 사회통합은 철저하게 종교적인 구조에 입각하여 추구된다. 그러나 ‘종교의 비종교화’나 ‘비종교의 종교화’ 현상에 의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조직화되고 제도화된 절대나 초월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사로운 ‘의미의 우산’을 마련하여 전통적인 종교를 대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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