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개벽종교들의 변신을 보며
news letter No.480 2017/7/25
한국의 근대 신종교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암담한 시기에 개벽사상을 토대로 민족정신 을 개혁하고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하고자 일어난 보국안민의 민중종교였다. 이들은 지금이 개벽의 시기이고 그 개벽은 한반도에서 일어나며 한민족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문명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신종교 창시자들은 그런 개벽의 시운을 잡기 위해서는 자신을 천지와 합일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수련해야한다고 가르쳤다. 이들은 자신의 삶인 동도(東道)를 과감히 개혁하여 민족의 자존을 지키고 새로운 인류문화 건설에 앞장서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자신의 종교 교리에 집착하지 않고 민중의 이상과 희원을 담은 인류공영의 지상천국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민중지향적인 성향 때문에 일제에 의해 유사종교 혹은 사이비 종교로 낙인찍혀 일제 36년간 내내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하여 일제 말기에는 일본의 종단에 통합되거나 지하화하거나 체제 순응하면서 민족해방의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해방의 날을 맞았지만 모든 문명이 화합하고 통합되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해방이 되었다고 해서 근대 신종교에게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도리어 남북분단체제가 정착되면서 ‘민족과 반공’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면서 서구 근대성을 기반으로 한 문명종교의 기세는 한층 더 강화되었다. 일제하 ‘문명종교와 민족종교’의 대립구도가 ‘반공종교와 민족종교’의 대립구도로 전환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명종교는 문명화의 과제를 전제한 종교개념이고, 반공종교는 냉전체제를 전제한 정치적 종교의 개념이다. 양자는 모두 민족의 표상인 단군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기독교가 중심이 되는 종교모델이다. 하여 해방 이후 많은 종교들은 개항이후 지속된 기독교 따라 하기를 계속하게 된다.
한편, 해방이후 미군정은 미국적인 정교분리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모든 종교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그러나 이때 종교의 자유는 일제 탄압을 받았던 개벽의 종교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문명종교 체제를 갖춘 법적 사회적 종교들에 혜택이 되는 수단이지, 그렇지 않는 전통적이고 문화적 종교에는 적용조차 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말하자면 문화전통을 계승하고 민족 공동체의 미래 전망을 가진 문화적인 종교에 적용되기 힘든 원칙이자 제도다. 그리고 미군정은 일본종교들이 남기고 간 종교 적산자산을 가지고 기독교의 물적 기반을 제공해 주고, 한국전쟁 때는 해외원조물자를 기독교를 통해 배급함으로써 반공종교로서의 기독교의 팽창을 크게 도왔다. 결국 해방 당시 남한 사회에서 남한 국민의 3%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기독교가 한국의 지배종교로 역할을 하였다.
그에 반해 기독교 세력과 친일세력들이 정치적, 종교적 패권을 장악하자 민족중심의 개벽종교들은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민족진영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온 개벽의 종교들이 민족 분단의 냉전 체제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해방이 되었음에도 개벽종교의 활동을 구속해왔던 일제의 ‘유사종교’ 개념은 70년대까지 그대로 통용되고 있었다. 이에 천도교와 대종교, 갱정유도(更正儒道)와 같은 개벽종교들은 남한 단독정부의 설립을 반대하는 세력으로 몰려 해방의 혜택은 고사하고 도리어 미군정과 이승만정부의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자 개벽의 종교들이 변신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근대 개벽의 종교들은 분열과 변신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시대의 대세에 따라 기독교의 옷을 입고 반공의 종교로 변신하여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한국적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계 개벽종교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이들 형식은 기독교적인지만 신앙 내용은 여전히 한반도가 중심이고 이 시대가 개벽의 시대라는 이전의 개벽종교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들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김백문(金百文)의 이스라엘 수도원(1945), 박태선의 전도관(1949), 문선명의 통일교(1954), 나운몽의 용문산기도원(1956) 등이 대표적이다. 신천지와 같은 기독교도 동일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근대 전통적인 개벽종교의 세력은 쇠퇴하고 그 자리에 기독교적 성향을 가진 새로운 개벽의 종교들로 채워졌다. 기독교계 공동체형의 개벽종교들이 대거 흥기한 것이다. 민족분단의 냉전체제, 한국전쟁으로 인한 사회혼란과 공동체 해체, 일제라는 투쟁 대상의 상실, 일제 적산자산 처분과 해외원조물자 배급, 해외 기독교 선교단체 대거 유입 등과 같은 여러 원인으로 개항 이후 ‘민족주의’를 담지하고 있던 근대 전통적 개벽종교들은 해방공간에서 대우를 받기는커녕 자신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이후 이들 중에 많은 종교들은 분단체제와 산업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원불교, 통일교, 대순진리회와 중산도와 같은 근대적 운영과 조직의 종교들만 성공하여 살아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은 아쉽게도 세상을 바꾸는 개벽의 추동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민족문화의 전통과 전통종교의 정감(情感)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해방 후에 나타난 기독교계 개벽종교들은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기성 기독교계와 신앙상의 갈등을 보이면서 후원(後援)없이 외로이 그들과 맞서 온힘을 다하여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분단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개벽을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개벽은 아직도 한반도를 규제하는 세계체제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민족주의는 다른 나라의 국가 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민족주의다. 일제하의 민족종교를 중심으로 한 민간 민족주의였기 때문에 민중에 뿌리를 둔 거대한 분출을 기다리는 민족주의이다.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논문으로 〈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방안〉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 《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