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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77호-사소하거나 혹은 중대하거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7. 7. 4. 16:19

 

사소하거나 혹은 중대하거나

     

 

     news  letter No.477 2017/7/4

 


 

 

 

 


       필자는 7남매 중 둘째 딸이다. 어머니는 줄줄이 딸 여섯을 낳은 뒤에야, 눈물겨운 막내아들을 얻었다. 대개의 시부모들이 간절히 손자를 기다리던 시절이다. “딸만 낳은 죄인”이라서 막내를 낳을 당시 어머니는 해산기(解産氣)가 있음을 가족에게 알리지도 못했다. 그때 아버지는 친척집 제사로 출타 중이었다. 외할머니는 딸만 둘을 낳았는데, 막내딸인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우리를 키워주셨다. 평범한 나의 가족사가 무슨 소용이라고 이렇게 사설을 늘어놓는지, 독자들이 궁금하실 것 같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어른들이 나를 “미륵”이라고 부르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머니를 통해서 들은 외할아버지 친척 중에는 생업을 돌보지도 않고 불교공부에 묻혀 살던 분이 있었다. 또 ‘육이오 난리’ 통에는 외할아버지가 고창 선운사에 숨어 있다가 인민군에게 붙들려가서 총살을 당했다고 들었다. 그처럼 우리 집안은 나름대로 불교와의 인연이 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초로(初老)에 천주교에 입문하여 독실한 신자로 당신의 생을 마감하셨다. 당연히 어머니의 장례 미사는 평소 다니던 작은 성당에서 보게 되었는데, 그 날 신부님의 집전 태도가 얼마나 정성스러웠던지, 신자가 아닌 나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천주교 신자가 되고자 결심한 것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들이 없으니 평생 딸네 집에서 더부살이 하듯 사신 우리 외할머니의 서럽고 초라한 장례식장에 아파트 이웃주민인 천주교 신자들이 찾아와서 많은 고마운 일을 함께 해주었다. 어머니는 그 일의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의리(義理)를 지키기 위해 천주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물론 어머니는 변함없이 유교 제사를 성실히 모셨고, 간혹 내가 절에서 받은 강의료를 용돈으로 드리면 그 사찰의 이름이 적힌 봉투째 성모 마리아 상(像) 앞에 놓고 감사기도를 하였다. 그런 가운데 우리 집의 칠 남매는 각각의 인연에 따라 자유롭게 천주교인 3명, 불교인 3명, 개신교인 1명이 되었고, 서로의 신앙에 관련해서는 아무런 거리낌도 불편함도 없었다.

 


       그 일곱 중 다섯째인 동생이 엊그제 세상을 떠났다. 그 동생은 여고시절 불교학생회 활동을 시작한 이후 거의 40년을 줄곧 불교신자로 살아왔고, 최근 1년 남짓의 암 투병을 하는 동안에는 사정상 개신교인 셋째 언니의 돌봄을 많이 받았다. 다섯째가 호스피스 기관에 입원을 해야 했을 때도, 셋째가 10여년 봉사활동을 해왔던 곳이면서 유명한 호스피스 병원을 선택하였다. 그 병원의 설립자 겸 원장인 목사님이 정말 훌륭한 분이었고, 간병하는 의료진이나 봉사자들의 미소 짓는 얼굴이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우리 육 남매는 매주 한 번씩 교대로 병실에서 1박2일 셋째를 돌봤다. 지금도 한 달 남짓 거기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게 환자를 돌보고 위로해주던 그 모습이 고맙고 아름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자꾸만 걸리는 문제 한 가지가 발생하였다. 아마도 그 문제는 사소하거나 혹은 중대하거나, 어느 한 쪽에 속할 것이다. 그것은 병원 관계자들이 우리 다섯째에게 기독교 세례를 받으라고 계속 권하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매일 두 번씩 전체 병실의 TV에서 예배 방송을 보여주는 것은 아예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직접 환자에게 세례 받기를 권하는 일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되어갔다. 몸이 무너져가고 치료도 소용이 없어진 말기 환자에게 잠시나마 몸에 활기를 주는 것이 림프 마사지라고 한다. 그런 림프 마사지를 땀 흘려가며 간절하게 해주는 이에게 우리 집 다섯째는 정말 감동을 한 모양이었다. 성실한 마사지로 환자의 마음을 얻은 그 친절한 집사는 환자에게 세례받기를 당부하며 돌아갔고, 마지막을 앞 둔 어느 날, 우리 집 다섯째는 개종(改宗) 세례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필자는 그 날 그 자리에 없었다. 다섯째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세례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우리가 그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다섯째가 떠나고, 둘째인 내가 굳이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하였기에 장례는 기독교식으로 진행되었다.

 


       다섯째가 그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종교문제를 확인했다. 종교와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했고, 개신교인이 아닌 환자도 많다는 설명도 들었다. 여하간 임종(臨終)을 지키지 못한 나로서는 동생에게 개종의지를 확인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예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생각들이 교차하는 요즈음이다. 더욱이 다섯째의 아들 즉 내 조카의 말로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도 계속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계셨어요. 세례는, 병원에서 돌봐준 사람들이 고마우니까 받은 거래요.”라고 했다.

 


      그곳의 장례식을 ‘천국 환송예배’라고 칭하며, 우리 집 다섯째가 “평생 주님을 모르고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나마 주님의 품에 안겨 천국으로 가게 된 것을 크게 다행으로 알고 기뻐하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정녕, 곧 죽을 자가 살아남은 자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받아야 할 세례인가? 사대(四大)로 돌아간 동생에게 묻고 싶다. 평생 불자로서 함께 호흡한 둘째 언니가 절에 가서 49재를 지내고 싶은데, 다섯째 자네 생각은 어떠신가?

 

 


이혜숙_
금강대학교 초빙교수
hesook56@hanmail.net
논문으로 〈불자 신행교육의 평가를 위한 예비적 고찰〉, 〈불교계의 청소년지원을 위한 정책적 제언〉, 〈구조적 폭력과 분노, 그 불교적 대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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