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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95호-국정 교과서와 역사 전쟁에 관한 단상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7. 11. 7. 22:22

 

국정 교과서와 역사 전쟁에 관한 단상

             


 

news  letter No.495 2017/11/7 

 

 

 

 

 


       어느 새 2년 전 사건이 되었다. 2015년 10월에 박근혜 정부는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하고, 2017년부터 역사교과서로 한 종(種)의 국정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하여 찬반논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새롭게 출범한 정부의 공약에 따라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폐지를 위한 절차를 마무리함으로써 국정 역사 교과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와 유사한 국정 교과서 관련 논쟁은 1970년대에도 있었다. 당시에는 국정교과서의 고대사 내용을 문제 삼았는데, 그 중심에 단군개국 논쟁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74년 7월 27일 《동아일보》에 실린 〈치열해진 단군개국 논쟁, 신화냐 사실(史實)이냐〉라는 기사를 보면 지금까지 끊임없이 우리사회에서 제기되는 단군이야기 논쟁의 온상(溫床)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고대사학회(회장 안호상)는 성명서를 25일에 발표하여, 국정 교과서가 단군개국을 완전히 신화로 규정, 한국사의 상한을 대폭 위축시킴으로써 일제 식민지 사관을 그대로 도습한 역사교육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하였고, 26일에는 재건국민운동 중앙본부에서 ‘국사교과서 평가회’를 열어 단군 신화론에 대한 공개비판을 가졌다. 이 기사에 따르면, 비판자들은 새 교과서가 단군조선의 1048년, 기자조선의 928년, 부여조선의 164년 등 2,140년간의 역사를 신화로 전락시켰으며, 우리역사의 출발을 위만으로 잡아서 단군개국의 사실을 부정하고 우리를 시조 없는 민족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요약하자면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은 식민사관 극복을 위해 국정 교과서에 단군개국을 신화가 아니라 역사로 서술하자는 것이다. 당시 단군을 신화적 인물로 해석한 주류학계의 주장이 교과서에 반영되자 재야학계를 중심으로 거센 개정 요구가 일어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재야학자들 가운데 다수는 단군신화 = 식민사학의 잔재라고 보고, 단군을 신화라고 하는 것은 반민족적 사관이라는 도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염연한 현실이다.


       최근 주류 역사학의 일부 소장파 학자들이 재야사학자들 몇몇을 겨냥하여 ‘사이비’ 사학자라는 용어로 비판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소장학자들이 단군을 사화(史話)로 보는 견해를 공격하면서 단군의 신화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학자들 간의 소위 역사 전쟁에 필자가 감히 끼어들 생각은 없다. 다만 일부에서 1970년대의 단군개국 논쟁을 떠올리게 하는 ‘단군은 신화인가, 역사인가’라는 이분법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것은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물음보다는 물음의 상황 자체를 문제시하고 그 해결을 모색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비슷한 물음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왜 이러한 물음이 또 다시 제기되는지, 그러한 물음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그러한 물음을 둘러싼 논쟁의 배후에는 어떤 욕망과 권력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규명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신화라는 것은 민족 정체성의 근거이며 ‘신성한 이야기’라는 서구적 신화 정의를 대입하는 것으로 그 물음은 종결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신화라는 개념어는 신화학의 태동과 함께 등장한 학술어이자 외래어이다. 이러한 개념어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초월하여 실재하는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서로 다른 의미와 기능으로 쓰이는 유연한 언어적 구성물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하정현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1920-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의 형성과 전개>,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신화와 신이, 그리고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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