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폭력: 불교는 배반했는가?
news letter No.493 2017/10/24
[I] 이 시대의 특징이 폭력과 살상뿐이라고 단순화해도 부정할 길이 없게 됐다. 지나친 폭력과 살상이 우리 주변에서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자행하는 살상은 물론 국가 간의 대량살상을 전제로 한 발언들도 마구 쏟아져 나온다. 일촉즉발 공포분위기의 발언은 이미 정치적 수사(修辭)의 정도를 넘어섰다. “두고 보면 알 것이다” 혹은 “폭풍전야로 생각하라” 등의 발언은 이미 정치지도자의 언행일 수 없다. 내가 이번 여름에 여행했던 지역의 인근인 라스베가스에서는 60명 가까운 사람들이 무차별 총격의 희생물이 됐다. 그 흔한 살상의 명분이나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매니페스토도 한 장 없다. 일찍이 이런 사태를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실로 공전절후의 사태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를 유지시키던 삶의 표준들이 더 이상 아무런 의거처가 되지 못한다. 우리가 위로 받을 수 있는 윤리/종교적 명분들이 과연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폭력과 공포가 휩쓸고 있는 이 시기에 종교의 사랑과 자비, 인내와 용서는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실로 곤혹스러운 난제를 우리는 떠안고 있다. 사랑과 용서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아예 포기해야 할 것인가? 그런데 나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종교를 표방하면서 다른 인종을 말살한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였다.
그 기사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소수인종 집단인 로힝야족에 대해 인종청소 수준의 말살이 자행되고 있다. 그 배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치가 있다. 미얀마정부의 실권자인 수치는 침묵일관으로 사실상 로힝야족의 탄압을 묵인하고 있다는 보도가 뒤따른다. 이 기사를 읽는 불자는 당혹감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미얀마는 전형적 불교국가가 아닌가? 50년대 우누정권은 불교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자본주의 병폐를 극복하려 했다. 불교적 공동체의 삶을 위해 공산/사회주의마저 수용하려했다. 그래서 당시 공산주의, 마르크시즘에 대해 본능적인 의구심을 지닌 우리를 놀라게 한 기억이 있다. 본래 버마(당시 호칭)는 영국의 전형적인 식민통치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영국 식민정부는 로힝야족을 인도 대륙으로부터 대거 버마로 이주시켰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일본은 영국을 패퇴시켰고 이 지역을 장악했다. 그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는 바로 이 때 버마와 태국을 연결하기 위해 세워졌다. 버마는 종전과 함께 독립을 얻어 불교적 사회주의체제를 표방했다. 버마는 민족국가 재흥을 시도했으나 우리의 경우처럼 군부독재에 의해 석권되었다. 얼마 전까지 군부의 네윈 잔존세력은 탄압적으로 버마를 지배해 왔다. 그에 대항한 아웅산 수치는 결국 미얀마의 자유를 가져왔고, 군부와 타협한 새 정부가 탄생되었다. 식민통치의 결과로 버마에 남겨진 로힝야족은 주변 미얀마인과의 공생이 문제가 되었다.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인의 시선은 달가울 수 없었다.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이 겪는 비극적 처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런 역사를 지닌 로힝야족에 대해 미얀마인이 인종차별과 탄압을 하는 것을 보고 특히 불자들은 실망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도 개인적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수치여사의 남편인 마이클 아리스(Michael Aries)는 티벳불교 전공자로서 수치가 연금당하고 있을 때, 하버드 대학교에 와서 불교 강의를 해서 나와 개인적인 친분도 있었다. 한 마디로 모든 면이 불교와 연관된 아웅산 수치의 정권에서 이런 인종말살의 폭력이 자행된다는 일을 상상할 수가 없다. 자비와 관용을 표방하는 불교에서 이런 폭력이 일어나는 일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모든 뉴스미디어는 폭력화된 미얀마 불교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불자들이 그토록 귀중하게 여기는 비폭력과 관용은 사라져 버린 것인가? 과연 “불교는 배반했는가?”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불교 역시 기독교나 이슬람처럼 폭력에 동참한 것은 아닌가 하고 개탄하게 된다. 사랑과 형제애를 주창하지만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북 아일랜드에서 살상을 주저하지 않았고, 간디의 비폭력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 힌두교와 이슬람간의 빈번한 살상은 그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교의 폭력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불교와 폭력의 상관관계는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II] 우리는 군사적 폭력이 자비로 전환되는 전형적인 예로 아쇼카 왕의 선정(善政)을 떠올린다. 칼링가 전쟁의 무참한 살육전 이후, 아쇼카 왕은 폭악 군주에서 정의와 자비의 제왕으로 변신하였다. 아쇼카 왕의 비명(碑銘)은 그가 종교 간의 갈등을 포용과 공생의 관계로 바꾸고, 종교와 현실 정치의 상관관계를 잘 매듭진 것을 보여준다. 그는 힘과 살육으로만 제패하려던 현실을 달리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불교적 “달리보기”로 정치 현장을 풀어갔다. 곧 현실에 참여된 불교를 표방하였다. 그에게 문제는 불교 교설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 어떻게 적응시키는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경우, 서산,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청정수행의 선승으로서 살생이 자행되는 전장 터로 뛰어 들어갔다. 우리는 이 분들의 위대함에 환호한다. 그러나 불승으로서 적을 무찔렀기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말살하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함이었기에 그 위대한 가치를 현양하는 것이다. 동족을 구한 국가주의, 민족주의 때문에 그분들의 정신이 고귀한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의 선불교도 정치 현장에 개입했다. 그러나 일본 선불교의 경우에는 침략정책을 합리화했기 때문에 그 잘못을 지적당하고 있으며, “전쟁을 하는 일본 선(Zen at war)”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살생과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선승의 도리이고 불자들의 확고한 신념이다. 그러나 보편적 사랑과 자비의 이념은 현장을 따라 다른 모습을 띌 수 있다. 불교 이념은 구체적 현장에 적용되고, 이에 따라 현장은 변화되고 현실은 개혁된다. 아쇼카 왕이 그랬고 서산, 사명대사가 그랬으며, 정반대의 방향이지만 일본의 선불교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현장의 평가는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참여된 불교의 현장만이 우리들에게 종교의 구체적인 자비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 불교가 배반을 한 것이 아니라 불교를 담지하는 우리가 배반을 하는 것이다.
외신을 통해 전달되는 곤혹스러운 정치 현장들이 우리 앞에 있다. 그것을 어떻게 돌파하느냐의 요청이 우리들(불자들)의 결단의 태도를 기다린다. 곧 아쇼카 왕이거나 서산, 사명대사 같은 불법의 담지자들이 했던 것처럼 우리가 구체적으로 참여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미얀마의 잔인한 인종청소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종교의 다름, 종족의 차이를 부추기며 그것을 폭력의 원인으로 확대시키는 행위도 중단되어야 한다. 또 그런 차이를 마치 적대적인 세력의 길항관계로 보도하거나 이끌어가는 의도 역시 중단되어야 한다.
아웅산 수치가 받은 노벨평화상을 박탈하라고 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게 한들 노벨상의 이념을 깨끗하게 할지는 모르나, 이미 더렵혀진 학살의 현장이 청정해 질 수는 없다. 깨끗함을 표방한 또 하나의 비난과 저주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뿐이다. 외신이 전하는 미얀마사태를 바라보며 불교의 이념이 얼마나 공허해 질 수 있는지를 절감한다. 하지만 불자 한 사람의 참여가 불교의 배반을 역전시킬 수도 있음에 희망을 걸고 곰곰이 반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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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금강신문> 칼럼으로 쓴 내용을 보완하고 확장한 것입니다.
이민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주요 논문으로 <불교학 연구의 문화배경에 대한 성찰>,<서구 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고, 역서로《성스러움의 해석》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