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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더위 극복하기

 

 

news letter No.880 2025/4/29

 

 

금년 봄에 발생한 역대 초유의 산불에 우리 모두는 간절히 비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때는 내리지 않았던 비가 벚꽃 나들이에 들뜬 주말에 불청객처럼 찾아왔다. 기상은 인간의 바람과 상관없이 운행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사계절 중 여름과 겨울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미 여름 더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사계절은 자연의 섭리이다. 그러니 봄이 지나 여름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여름 더위는 견디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동국세시기에는 내 더위를 사가라고 하여 더위를 파는 상원(上元) 풍속이 실려있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더위에서 벗어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황제도 승덕(承德)에 피서산장(避暑山莊)을 만들어 북경의 더위를 피했다. 그러기에 조선의 사신은 피서산장까지 사행을 가야 했고 덕분에 우리는 박지원의 명문을 얻을 수 있었다. 피서산장 앞에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한중교류에 기여했다는 기념석이 세워져 있다. 다만 성씨인 ()()의 간체로 여겨서 樸趾源(박지원)’으로 표기할 정도로 한국 문화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부족해 보인다. 우리도 황제처럼 여름이면 피서지를 찾는다. 그러나 다산은 피서산장을 부러워할 것이 없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 더위를 피하지 말고 극복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른바 소서(消暑)이다.

 

다산은 해배 후 귀향하였으며 6년 뒤인 1824(순조 24) 63세 여름에 더위를 가시게 하는 여덟 가지 방법소서팔사(消暑八事)을 칠언율시 여덟 수로 짓고, 이를 재첩(再疊), 삼첩(三疊)으로 지어 강조하였다. 또한 여기에 여덟 가지 방법을 추가한 칠언율시 여덟 수를 짓고 재첩을 지어 총 540수의 소서시를 지었다. 또 이어서 초가을의 정취 여덟 가지를 칠언율시로 지었다. 더위는 극복대상임을 거듭 주장하였고 그렇게 버티다 보면 결국 더운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오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토로한 셈이다.

 

다산이 처음으로 제시한 소서 방법 여덟 가지는 첫째, 승패에 따라 벌주를 마시거나 이긴 횟수를 자랑하는 활쏘기를 하는 <송단호시(松壇弧矢)>, 둘째, 구경하는 사람까지 시원하게 바람이 일도록 그네를 타는 <괴음추천(槐陰鞦遷)>, 셋째, 통 안에 떨어지는 화살 소리가 맑은 투호 경기의 <허각투호(虛閣投壺)>, 넷째, 대국자와 구경꾼이 함께 내기 음식을 나눠 먹는 바둑 내기 <청점혁기(淸簟奕棋)>, 다섯째, 연잎과 줄기로 만든 술잔을 들고 시원한 연못의 연꽃을 감상하는 <서지상하(西池賞荷)>, 여섯째, 하루 종일 매미를 따라 다니며 울음소리 듣는 <동림청선(東林聽蟬)>, 일곱째, 운자를 부르면 그 운에 맞는 시를 찾아 암송하느라 고심해야 하는 한시 놀이 <우일사운(雨日射韻)>, 여덟째, 달밤에 물가에서 발을 담그고 난 뒤 평상에서 잠을 자는 <월야탁족(月夜濯足)> 등이다.

 

이 중에 그네 타기, 바둑 대국, 연꽃 감상, 한시놀이 등은 지금 생각해도 합리적 더위 대처 방법으로 여겨지지만 활쏘기, 투호, 매미소리 듣기, 달밤의 탁족 등은 현대인의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이 중에 활쏘기와 투호는 더운 데 힘들게 무슨 경기냐고 할 수 있는데 다산은 예법(禮法)’에 방점을 두었다. 활 쏘는 규칙을 준수하다 보면 호랑이나 표범처럼 사나운 기분이나 행위를 방지하게 된다고 하였고, 스승인 이익(李瀷)을 묘사한 시에서 투호할 때 예법에 밝았다고 칭송한 바 있다. 매미 소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데시벨 높은 소음으로만 다가오겠지만 당대 매미는 선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다산은 <이황을 사숙한 기록>에서 퇴계의 매미 소리 비유에서 옛사람의 풍범(風範)의 진수를 깊이 얻었다고 평가하였다.* 달밤의 탁족을 보면 당시에도 열대야가 있었는가 오해할 수 있는데 다산은 <단옷날 천인암에서 두 분 형을 모시고 놀다>라는 시에서 흐르는 물에 탁족을 하는 이유를 조선 천지의 많은 먼지를 밟아왔기 때문이라고 하여 탁족에 발을 씻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이로 볼 때 다산에게 소서는 단순히 더위 극복 방법이 아니라 세상살이의 편견을 떨치고 유가적 인간상과 예법을 세우는 일이었겠다 싶다.

 

다산이 다시 추가한 여덟 가지는 집 앞 나무를 베어 바람 통하게 하는 <전목통풍(剗木通風)>, 도랑 쳐서 물 흐르게 하는 <결구유수(決渠流水)>, 소나무를 괴어 높은 단을 만드는 <주송작단(拄松作壇)>, 포도넝쿨을 올려 처마에 잇는 <승도속첨(升萄續檐), 아이종에게 책을 포쇄시키는 <조동쇄서(調僮曬書)>, 아이들 모아 시 짓게 하는 <취아과시(聚兒課詩)>, 배 둘을 이어 물고기 잡는 <구선도어(句船跳魚)>, 냄비에 고기 삶아 먹는 <요요설육(凹銚爇肉)> 등이다. 이상은 환경을 개선하고, 재미있는 일을 찾으며, 잘 먹어서 더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앞의 방법보다 적극적인 더위 극복 방법으로 여겨진다.

 

이 중에 <주송작단>에서 진시황과 한무제(漢武帝)의 태산 봉선(封禪)에 대한 언급이 있어 살펴보고자 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이들이 태산에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한 것은 황제가 된 것을 하늘에 알려 천명(天命)을 받으려는 역성고대(易姓告代)의 수명의식(受命儀式)이라는 설과 불로불사의 신선방술을 얻으려는 의식이라는 설로 양분되어 있었다. 전자는 유교를, 후자는 도교를 믿는 차이라 할 수 있다. 전목(錢穆)은 유교는 인생과 현세를 기준으로 천하태평과 대동세계를 지향하는데 진시황이나 한무제는 이미 이를 다 이루었으므로 마침내 신선을 찾아 장생을 이루려고 하였다고 하였다. 한편, 이때 진시황은 태산에 오르던 중 비를 피하게 해 준 소나무에게 오대부(五大夫)라는 직위를 내렸다고 하는데 다산은 이 시에서 자신의 소나무는 단에 올라 이미 우두머리가 되었으므로 신하에게 주는 대부 벼슬은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고, 태산에 단을 세운 것이 모두 부질없는 일이라 하였으며, 태산에 봉선한 한무제의 연호인 원봉(元封)을 자기 집山家명칭으로 사용한다고 하여 역시 부질없는 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산 역시 진시황제와 한무제의 태산 봉선을 부질없는 신선방술 행위로 본 것으로 여겨진다.

 

근래에는 태산 봉선에 대해 지역에 대한 정복과 지배 선포, 통일제국의 위세 과시 등으로 해석하는 연구도 보이는데 이는 종교적 동기를 납득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인식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 퇴계가 주자(朱子)의 편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여조겸(呂祖謙)에게 준 편지 중 매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높은 풍도를 그리워했다고 한 글을 선정하였다. 남언경(南彦經)이 이는 선정할 만한 구절이 아니라고 비판하자 퇴계는 매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주자와 여조겸의 풍도를 우러러 사모했다고 답하였는데 다산도 주자, 퇴계와 인식을 같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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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다산시문집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석호 옮김, 조선세시기. 동문선. 1991.

전목 저, 이종찬 옮김, 중국문화사개론, 정음사. 1979.

문정희, 秦漢 祭禮國家支配, 연세대학교 박사논문. 2005.

 

 

 

 

 

 

 

 

 

안장리_
한국문화연구소
논문으로 <조선 국왕의 곤충 인식 고찰>, <정몽주와 김삿갓의 고향시 비교 연구> 등이 있고, 저서로《조선 국왕 영조 문학 연구》,《왕실 서고 봉모당의 건립과 운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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