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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상실과 인류세의 만남
news letter No.891 2025/7/15
2009년에 쓴 한 편의 논문 「역사의 기후: 네 가지 테제」로 인류세 인문학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역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근대란 외경(reverence)을 상실한 시대”라고 하였다.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류는 고대인들이 간직하고 있던 지구와 만물에 대한 두려움의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1)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근대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도덕 상실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지금은 ‘도덕’이라고 하면 ‘윤리도덕’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삼강오륜과 같이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 할 ‘규범’이나 ‘양심’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원래 ‘도덕’이라는 말은 고대 중국의 노자가 썼다고 하는 『도덕경』에 나오듯이, 우주론과 수양론적인 함축을 지닌 개념이었다. 그리고 ‘morality’와 같은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도’와 ‘덕’이라는 두 개념의 합성어였다. 마치 ‘체용’이 ‘체(substance)’와 ‘용(function)’의 합성어인 것과 같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는 낳고 덕은 쌓는다/기른다(道生之, 德畜之)”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도’는 우주의 운행이나 자연의 과정을 가리킨다. 그래서 way나 course라고 영역된다. 우주가 운행됨에 따라 만물이 생성되는 현상을 노자는 “도는 (만물을) 낳는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덕’은 ‘도’의 운행에 의해서 만물이 길러지는 효과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 대해서 사용될 때에는 어떤 ‘과정(course)’을 삶 속에서 반복해서 쌓아 나가는 인간의 노력과 그 결과로서 얻어지는 가치를 가리킨다. 그래서 덕은 virtue 이외에도 power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이러한 도덕 개념은 기본적으로 19세기까지 이어진다. 물론 유학의 경우에는 ‘인의(仁義)’와 같이 유학자가 길러야 할 윤리적 덕목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지만(인의도덕), 그렇다고 하여도 그것의 기원은 어디까지나 ‘하늘’이나 ‘천지’로 여겨졌다. 가령 신유학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받는 12세기의 주자는 “도는 천리의 당연함(天理之當然)”이라고 하였고, “덕은 하늘의 정리(正理)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중용장구』).
그런데 이와 같은 도덕 개념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이 20세기 전후의 일본이다. 근대 일본은 도덕에서 ‘천’이나 ‘천지’와 같은 우주론적 차원을 지워버리고, 그것을 ‘국가’나 ‘국민’의 범위 안으로 수렴시켰다. 이른바 ‘국민도덕’의 탄생이다(가령 이노우에 데츠지로(井上哲次郎)는 1912년에 『국민도덕개론(国民道徳概論)』을 저술하였다). 이 무렵부터 도덕과 윤리는 ‘국민도덕’이나 ‘국민윤리’와 같이 별다른 차이 없이 통용되게 되고, 심지어는 그 위상도 역전되고 만다. 한국의 공교육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도덕’을 가르치고, 고등학생들에게 ‘윤리’를 가르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윤리학’은 철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고 있지만 ‘도덕학’이라는 분야는 없다.
최근에 서양에서 나온 『인류세와 지구 환경의 위기』의 편집자들은 서구 근대의 특징을 인간 사회를 ‘오로지 사회적인(social-only)’ 차원에서만 이해하려고 한 데에 있다고 하였다.2) 즉 인간을 떠받들고 있는 천지(天地)나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만물은 도외시한 채, 오로지 인간의 지평에서만 인간을 이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에 대한 지적이다. 그렇다면 근대 일본은 도덕을 자연과 분리시키고 ‘오로지 사회적인(social-only)’ 차원으로 끌어내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도덕의 사회화’ 내지는 ‘세속화’가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동학에서 시작된 한국의 ‘개벽파’에서는 종래의 도덕을 강화하고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늘님의 도’를 받아서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새로운 도덕의 필요성을 ‘도성입덕’(도를 이루고 덕을 세운다)이라는 말로 표현하거나, 그 뒤를 이은 최시형이 물질개벽 시대에 요청되는 도덕 수양을 ‘인심개벽’이라고 한 것 등이 그러한 예이다. 최시형은 심지어 도덕의 대상을 ‘사물’로까지 확장하여 “인간 이외의 존재를 외경하는 경물(敬物)의 상태에 이르러야 도덕이 완성된다”(『해월신사법설』「삼경(三敬)」)고 하는 ‘포스트휴먼적 도덕’ 개념을 설파하였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성냥’과 같은 인공물도 나름대로의 ‘권위(power)’가 있다고 하면서, 사물에 대한 외경을 공부의 표어로 삼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도덕’을 천지의 도와 그것의 결과로 드러나는 ‘은덕’으로 나누고, ‘천지의 은덕’을 교리의 맨 처음으로 삼았다(天地恩). 나아가서 전통적인 도덕 개념을 인간관계에도 적용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지켜야 할 윤리를 ‘도’로, 그것을 실천했을 때 얻어지는 효과를 ‘덕’으로 각각 개념화하였다. 이렇게 되면 모든 관계와 모든 상황에서 ‘도’와 ‘덕’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성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은 ‘도’가 되고,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했을 때 얻는 혜택은 ‘덕’이 된다. 이것은 일종의 ‘사물도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기후변화가 가시화됨에 따라 서양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류세 담론은 동아시아적으로 말하면 전통적인 ‘도덕’ 개념을 회복하자는 주장에 다름아니다. 가령 디페시 차크라바르티가 ‘행성에 대한 외경’을 강조하거나 제임스 러브록과 브뤼노 라투르가 “가이아의 복수”를 말하는 것은 『도덕경』에 나오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에서 사냥한 사슴에게 “너의 몸은 나에게 남아”라고 하면서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는 것은 동학의 ‘이천식천(以天食天)’ 사상이나 ‘식고(食告)’ 의례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인류세는 근대에 분리되고 멀어졌던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를 다시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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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ipesh Chakrabarty, “The Planet: An Emergent Matter of Spiritual Concern?”, 2019.
https://bulletin.hds.harvard.edu/the-planet-an-emergent-matter-of-spiritual-concern/
2) Clive Hamilton, François Gemenne, Christophe Bonneuil eds., The Anthropocene and the Global Environmental Crisis: Rethinking modernity in a new epoch, Routledge, 2015, Ch.1.
조성환_
원광대 철학과 교수
저서로 《한국 근대의 탄생》,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 《한국의 철학자들》, 《K-사상사》,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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