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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자국의 전통종교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식
news letter No.900 2025/9/16
‘종법성전통종교(宗法性傳統宗敎)’라는 말은 1990년 머우중졘(牟鐘鑒, 1939~)이 창안한 개념이다. 이 말은 원시시대부터 청대까지 수천 년에 걸친 장구한 역사를 관통하며 단절 없이 존재했던 중국의 전통종교를 일컫기 위해서 만들었다. ‘전통종교’ 앞에 ‘종법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만든 조어라고 할 수 있는데, 간단히 전통종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을 종법성에서 찾았다. 굳이 번역하자면 ‘종법적 전통종교’ 정도가 될 것이다.
머우중졘은 철학자로서 그의 저서 일부가 국내에 번역 출판되었다. 국내 대학의 초청으로 학술 발표의 기회를 가졌던 경력도 있다. 다양한 연구 활동 가운데 1966년 중국사회과학원 세계종교연구소에 들어간 경험이 눈에 띈다. 학문의 출발점은 철학이었지만 한편으로 종교에 관한 관심도 꽤 오래전부터 싹을 틔우고 있었다.
종법성전통종교에 대한 중국 학계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여겨진다. 이 개념을 둘러싼 후속 논문들이 다수 발표된 바 있다. 뤼다지(呂大吉, 1931~2012)의 《종교학통론신편(宗敎學通論新編)》에는 이 개념이 중국의 전통적인 ‘국가종교’이자 ‘민족종교’로 채택되어 수록되기도 하였다. 이 개념에는 중국인들이 자국의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투영되었다. 종법성전통종교는 유불도 삼교보다 더 오래되고 근원적인 종교로서 중국인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종교로 제시된다.
종법성전통종교가 무엇인지 간단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이 종교는 원시시대에 기원하여 하상주 국가형성기에 완성되었다. 하상주 삼대는 원시시대부터 이어온 혈연을 기반으로 국가체계를 구축한 시대로 종법성전통종교가 국가종교 혹은 민족종교로 도약한 발판이었다. 특히 주대는 이전 시기의 유산인 종법 질서가 최종적인 형태를 드러낸 시대였다. 종법성전통종교도 주대의 종법 질서에 따라서 더욱 성숙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주대 이후 청말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회적 변화에도 종법 질서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종법성전통종교도 ‘정통 대종교(正宗大敎)’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종법은 부계 혈통을 중심으로 적장자 계승 제도를 원칙으로 상하 등급 및 원근 친소의 사회관계를 형성한다. 이와 같은 종법 질서가 반영된 결과가 종법성전통종교이다. 신들의 세계는 등급에 따라 구분되어 신봉되었다. 신들에 대한 제사의 권리와 책무도 종법 질서 내의 신분 관계에 따라서 차등화되어 배분되었다.
신들의 세계는 천신, 지신, 조상신, 물령(物靈) 네 가지 범주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호천상제(昊天上帝)는 지고신으로서 수많은 신들을 통할하는 지위에 있다. 역대 왕조는 교사(郊社)나 종묘 제도와 같은 다양한 제사 체계를 마련하여 신들과 소통하였다. 명대와 청대는 제사 체계를 대사, 중사, 소사로 구분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
종법성전통종교는 독립적인 교단 조직이 없다. 대신 국가를 비롯한 각급 종법 조직에 의하여 운영되며, 천자를 비롯한 각 조직의 장이 제사의 주제자이다. 불교나 도교처럼 신도와 비신도의 구별이 없이 모든 국가 구성원이 신도로 참여하는 전 국가적이며 전 민족적인 종교이다.
머우중졘이 제출한 종법성전통종교 개념에는 오늘날 중국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숨은 의도가 스며있는 듯하다. 첫째, 중화민족의 정체성을 향한 갈망이 엿보인다. 중국의 역사서술은 원시시대 많은 민족이 각지에 거주하는 가운데 중원의 황제족과 염제족을 중심으로 전쟁과 연합을 거듭하면서 이른바 중화민족이 탄생하였다고 가르친다. 중화민족은 하상주 삼대는 말할 것도 없고 요순시대 이전에 이미 형성된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그렇다면 한참 후대에 나타난 유불도 삼교에서 중화민족다움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시간상으로 일천하다. 종법성전통종교는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개념으로 등장하였다.
둘째, 종교 자체에 대한 중국 학계의 안목이 어떤지가 엿보인다. 종교에 대한 철학적 사유 혹은 합리적 사유의 우위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점은 종법성전통종교와 유학의 차이를 역설하는 대목에서 읽힌다. 사실 종법성전통종교에서 말하는 신학적 진술이나 의례적 실천 행위는 한대 이후 국가적으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유학의 입장과 중첩된다. 이에 대하여 종법성전통종교를 옹호하는 학자들은 양자는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전혀 다른 전통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들에 따르면 유학에서 말하는 천명론이나 귀신론, 제사와 상례 등의 예학은 종법성전통종교의 영향을 일부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 유학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고 인사와 수신을 중시하는 인문적 학술 이론으로서 치국을 향한 소망을 현실화하는 데 있다. 오히려 유학은 ‘국가철학’으로서 종법성전통종교의 발전과 영향력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였다. 유학은 서한 이후 독보적인 국가철학의 위상을 차지한 이래 국가종교인 종법성전통종교를 종속적인 지위에 머물게 하였다.
종교가 비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인 사유에 의해서 통제되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종교학계와 상당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런 대립 구도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임현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의 논문으로 〈상대 갑골 점복의 복조 해석에 관한 소고〉, 〈商代 토테미즘 설에 관한 비판적 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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