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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898호-오 마이 갓, AI

한종연KIRC 2025. 9. 2. 16:16

오 마이 갓, AI

 

 

 news letter No.898 2025/9/2

 

 

작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109회 총회에서 <인공지능 시대, 목회자 윤리선언>이 발표되었다. 선언문에는 인공지능의 학습 능력이 인간 능력의 한계를 추월했고,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의 출현은 기존의 윤리적 규범들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기에, 인공지능의 개발과 활용에 대한 윤리적 점검이 시급하다는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선언문은 일반사회와 목회자를 구분해서 교회의 윤리적 입장과 지침을 담고 있다. 축약해 살펴보면, 일반사회에 대해서는, “1)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이 아니다. 2)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간 능력의 쇠퇴가 되어서는 안 된다. 3)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4) 인공지능이 인간 생명을 훼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5)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무분별한 상업적 질서를 통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목회자에 대해서는, “1) 목회자는 인공지능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2) 설교문은 성령의 감동으로 되는 것이지 인공지능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3) 생성형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지식이나 정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4)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신공(神工) 지능을 가진 설교자이다.”는 윤리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교단이 인공지능(AI)의 발전이 가져올 사회적·윤리적 파장을 감지하고 AI 활용의 윤리적 지침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이 선언문은 의미가 있다. 여전히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언문이라는 양식이 늘 그렇듯이, 이 선언은 교회의 입장에서 AI 산업의 급속한 발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정도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그 이유는 선언문의 내용은 불과 수년 후에는 전혀 현실에 맞지 않은 담론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AI와 관련된 학계나 업계에서는 AI에서 AGI(범용인공지능 혹은 인공일반지능,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단계에 도달하는 시점이 짧게는 5, 길게는 10년으로 전망한다. 이 분야의 한 기업(삼성SDS)AGI의 정의와 특징을 다음과 같은 카테고리 하에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정의> : 인간과 유사한 지능 수준을 보이는 인공지능, <능력> : 학습, 이해, 추론, 문제 등 인간 지능의 전반적인 기능을 모방, <적용 범위> : 다양한 분야에서 유연하게 적용, <자율성> : 인간과 같은 수준의 자율적 의사 결정 능력, <학습 능력> : 제한된 데이터로부터 일반화된 지식을 학습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용, <창의성> :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창의적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 <사회 윤리적 영향> : 인간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 이 설명서에서 인간과 같은 수준”, “인간과 유사한등의 수식어가 감추고 있는 실질적인 핵심은 그동안 인간의 고유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점차 삭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본 장로교회의 선언문 내용 중,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이 아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인간다움, 즉 인간의 고유성을 다시 규정해야 하는데, 이 과제는 이제 철학적 난제가 되었다. AGI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사회적 상황에서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는 심리 인식과 사회적 지능까지 갖추게 된다면, 인간의 고유성은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통해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AI 기계가 펼쳐놓을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AI 장치들에 대한 기술적 이해와 습득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종교 전문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개체적 본질에 주목하는 기독교와 인간 자아의 공성(空性)에 주목하는 불교의 경우에 AI 시대를 맞이하는 위치와 사유는 다를 것이다. 참고로 대한불교 조계종에서는 올해 승려연수강좌의 하나로 “AI(ChatGPT)와 불교를 개설했다. 불교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고유성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AGI(인공일반지능)는 깨달을 수 있을까?”란 강의제목이 말해주듯이 마음(의식)의 작동방식과 같은 불교와 포스트휴먼 과학의 접점을 모색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런 불교와는 다르게 기독교는 신의 피조물로서 인간의 고유성을 규정해왔던 오래된 틀을 AI 시대의 환경에서 어떻게 신학적으로 처리할 것인가 하는 힘든 과제 앞에 있다. 가령 신(창조주)과 인간(피조물)의 관계 방식과 제작자(인간)와 창작품(AI기계)의 관계 방식을 새롭게 사유해 볼 수 있다. 인간은 조금씩 신의 권한을 축소하면서 자율성과 독자성을 획득해왔는데, 인간 지능의 수준에서 행위하고 심지어 정서적·사회적 대응까지 수행할 수 있는 AI 기계가 그러한 과정을 모방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특히 전 세계의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 투입을 통해 AI 기계의 진화를 촉진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AI의 능력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게 되는 레이 커즈와일이 말했던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하는 시점이 아주 먼 미래는 아닐 것 같다. 특히 인간의 고유성을 AI기계의 설계와 제작에 투사하는 포스트휴먼 기술의 성향 앞에서(신의 형상 Imago Dei을 지닌 인간의 고유성이라는 기독교 관념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면) 인간의 고유성에 의지해서 AI 기계와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거리를 두려는 대응 전략이 종교의 입장에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간 같은 기계와 기계 같은 인간이 공존(또는 공생)하는 포스트휴먼시대에 종교는 위태롭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전이 그러한 위태로움을 종교에 안겼다고 생각해봐야 별 소득이 없다. 앞의 선언문에서 AI와 관련해서 목회자에게 제시한 윤리지침이 현실에서 지켜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쉽고 편하고 빠르게 원하는 결과물을 손에 쥘 수 있다면, “신공(神工)”의 능력을 지닌 목회자라 할지라도 AI에 의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AI의 능력이야말로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절대 신공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공의 기술을 지닌 AI기계 앞에서 종교가 자기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AI 기술의 습득과 활용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종교 본연의 역할을 고민하고 그것을 포스트휴먼 환경에 맞춰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내 개인의 관점에서는 AI시대에 돌봄의 영역에서 돌파구를 찾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지금 종교는 어느 곳을 지향하고 있을까? “오 나의 신 AI!(Oh My God AI!)”일까, 아니면 오 맙소사, AI라니!(Oh My God. AI!)”일까? 조만간 두 입장의 차이는 별 것 아니게 될 테지만, 현재는 AI를 둘러싼 두 가지 태도가 세상과 사람을 나누고 휘젓고 있다.

 

 

 

 

 

 

박상언_
한국학중앙연구원, 비교문화연구소
논문으로 <소록도 한센인의 사회적 공간 구성과 종교적 헤게모니>, <소록도 한센인의 고통서사와 종교의 자리>, <다른 몸들과의 불안한 연결: 종교의 장애인식과 한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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