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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현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1)
news letter No.897 2025/8/26
최중현 선생님께
선생님, 지금 어디에 계시든, 안녕하신가요?
저는 전에 몇 번 메일로 인사드렸던, 종교학 후배 이정은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고, 아 역시 못 뵙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의 게으름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석사논문을 쓸 때였습니다. 저는 〈신천지 신자들의 개종 요인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쓰고 있었고, 본론 앞부분에 신천지가 등장하기까지의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 이런저런 글을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현대종교》 측 자료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국메시아운동사연구》라는 책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제목이 흥미로워 보여,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 살펴보았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책이 있다니, 신종교 역사와 관련하여 전혀 접하지 못했던 갖가지 이야기들이 이렇게나 빽빽하게 모여 있는 책이 있다니, 감탄하며 책을 읽고는, 집 가는 길에 새 책을 구매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선생님 글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글을 전혀 쓰지는 못했습니다.
박사과정이 시작된 이후, 저는 몇 년 동안 학과 조교로 일하였습니다. 제가 조교 일 인수인계를 받기 시작한 시기에, 멀리서 선생님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학과에서 주최한 행사에 선생님께서 강의자로 참석하셨거든요. 그때 준비에 미비함이 있었던 때문인지, 선생님께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아 하셨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저는 청중으로 멀리서나마 선생님을 뵐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좋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인사드릴 용기까지는 아직 없었습니다.
조교 일이 끝난 이후에, 저는 연구에 조금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펴들었던 책이, 바로 선생님의 《한국메시아운동사연구》 1, 2권이었습니다. 분명 읽은 책이었는데,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필요한 부분을 여러 차례 들춰보기도 했었는데, 전연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1999년에 출판된 1권은, 1993년에 Syracuse University에서 통과된 박사학위논문과 그 이후의 연구를 모아놓으신 책이고, 그리고 2000년부터 2009년까지의 연구물을 모은 책이 2권이구나. 한 주제의 연구를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셨던지, 그저 읽기만 하는 저도 숨이 가빠올 정도였습니다. 직접 발로 뛰며 확보한 수많은 귀한 자료들, 그 자료를 얻는 과정에서 겪으셨을 시행착오와 어려움들, 그럼에도 그와 같은 일을 하게 한 동기가 되었을, 그 의지를 이어가게 했을, 어떤 문제의식. 이런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대부분의 사람이 관심조차 갖지 않는, 이미 잊혔다고도 볼 수 있는 인물들의 삶을, 할 수 있는 만큼 구체적으로 다루셨습니다. 대표적으로 한에녹, 김성도, 백남주, 황국주, 김백문, 정득은, 박태선, 김윤렬, 한종산. 이 외에 일제 강점기에 활발히 활동한 이순화, 남방여왕 같은 인물이나 “육이오 동란 뒤에 등장한 수많은 신종교”들에 대해서도2) 관심을 기울여 자료 발굴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러한 관심을 저는 선생님이 만드신 다음 카페(https://cafe.daum.net/jhchoe1128)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곳에 ‘새종교’를 ‘박달나무 계열, 용화수 계열, 생명나무 계열, 감람나무 계열, 버드나무 계열’로 분류해 놓으신 것을 보며, 이렇게 분류한 이유와 각 이름의 의미는 무엇일까, 언젠가 이에 대한 책도 내시려나, 만나 뵙게 되면 꼭 여쭤봐야지,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며, 선생님의 글들을 한 차례 더 정성스럽게 읽었습니다.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이 사회에, 이와 같은 연구, 내가 하는 연구 같은, 그런 연구가 꼭 필요한 것일까. 왜 사람들이 속칭 피갈음의 초기 형성사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 왜 사람들이 김성도와 정득은, 김백문, 박태선, 문선명 같은 인물들의 생각과 그들 삶과 신앙의 여정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는가. 왜 황국주가 ‘새 예루살렘 순례’를 시작한 해가 1935년인지, 33년인지 31년인지를,3) 사람들이 알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단 사냥꾼의 표적은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현존 이단 단체들”이며, 이는 그의 목적이 이단 단체들을 소멸시키는 데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한 적이 있으시지요?4) 신종교는, 특히 메시아운동을 펼친 개신교계 신종교는, 그들의 공이든 과든 무엇이든, 그 자체로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습니다. 소멸을 목적으로든, 부흥을 목적으로든, 특정 목적하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연구는, 신종교와 관련하여 언급되는 인물과 사건을, 그저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숨을 쉴 수 있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체가, 배타와 혐오와 소외가 가득한 이 사회에, 어떤 새로운 힘을 불어넣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기꺼이 박사논문을 써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한 사람으로서도 정말 궁금했습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 신자이시지요? 그래서 더 궁금했습니다. 신자로서의 선생님 삶은 어떠셨을까. 그 신자로서의 삶이 연구자로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선생님의 연구에서 통일교회 신자의 향기가 잘 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에, 놀라곤 했었습니다. 제게 편견이 있었나 봅니다. 다만 한국의 메시아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통일교회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으신 점, 자료를 인용할 때 문선명 선생이 언급된 부분을 알파벳 처리하신 점, 자료 인용이나 해석에 가끔 통일교회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점 등에서만, 한 인간이자 신앙인으로서의 선생님 면모를 살짝 엿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전에 강돈구 선생님의 논문에서, 아마도 선생님에 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학부에 들어가기 수년 전에 학과의 교수 한 분이 통일교에 대해 비난조의 강연을 공개적으로 하였는데 강연 중에 그 교수가 통일교인으로부터 똥세례를 받았다는 말을 학과에 진입해서 주위 선배들로부터 들었다. 그 교수는 꽤 보수적인 개신교 신학자로 자신의 신앙심에서 그런 일을 했을 것이지만 하여간 학교 내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매우 의아스러웠다. 역시 학부 때 선배 가운데 한 분이 통일교의 합동결혼식을 통해 일본 여자와 결혼한 분이 있었다. 당시 필자가 다니던 학과는 개신교 신학적 분위기가 농후해서 그 선배는 학과에서 꽤 힘들게 생활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하필이면 그 선배는 책상 앞에 그런 글귀를 써붙이고 있었는지 역시 당시에는 매우 궁금했었다. 그 선배는 나중에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현재 모 대학에서 신종교 전공의 종교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5)
선생님, 사시는 동안 많이 외롭지는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선생님, 아이러니하게도 선생님께서 ‘이단 사냥꾼’이라 하신 이단 전문가들에게도 선생님의 글은 사랑받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표적에 제동을 걸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선생님의 글은 그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가치가 있는 글인가 봅니다. 저 또한 그와 같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제가 박사논문을 드릴 겸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다고 메일 드렸던 것 기억하시나요. 그때 선생님을 뵙게 되면,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여쭤보고 싶은 것은 아주 많았습니다. 2000년대 내내 《격암유록》 연구에 그토록 천착하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 이후에는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셨는지, 발로 뛰며 자료를 얻을 때 어떤 점을 숙지하고 있으면 좋을지, 후학들을 위해 선생님께서 모으신 귀한 자료를 공식적으로 공개할 생각은 없으신지 등등. 남겨진 숙제 중 저를 비롯해 후학들이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지상에 있는 저희가 차근히 하나씩 풀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셔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지내고 계십시오.
2025년 8월 26일
이정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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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5년 7월 31일 성화(聖和)하신 최중현 선생님에 대한 추모 글을 편지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2) 최중현, 《한국메시아운동사연구》, 생각하는백성, 2009(1999), 13쪽.
3) 최중현, 〈황국주 ‘새 예루살렘 순례’의 때〉, 《한국메시아운동사연구》 제2권, 생각하는백성, 2009, 59-80쪽.
4) 최중현, 《한국메시아운동사연구》, 18쪽.
5) 강돈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현재와 미래〉, 《어느 종교학자가 본 한국의 종교교단》, 박문사, 2017,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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