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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39호-새해 인사드립니다(정진홍)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26. 16:31

새해 인사드립니다

2010.1.4


또 ‘처음’입니다. 늘 되풀이 되는 일이어서 새해를 맞는 일이 이제는 무감각한 수(數)의 놀이쯤 되었을 법한데 그렇지 않습니다. 또 처음입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없는데 바야흐로 있음이 비롯하는 텅 빈 지평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 끝을 냈는지 어쩐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난해는 다 지났습니다. 끝에 밀려 끝을 낸 것인지, 아니면 끝을 내어 마침내 끝자리를 넘어선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열어 처음 자리에 또 선 것인지, 아니면 밀려 처음자리에 되서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하지만 우리는 처음자리에 섰습니다. 그러고 보면 역(曆)의 문화는 철저하게 제의적(祭儀的)입니다. 시간을 끝에 이르게 하여 끊고, 그리고 거기에서 없던 처음을 여는 것이 제의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의 문화 속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종교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종교에 대한 인식의 논리를 애써 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종교라고 일컬은 현상처럼 정직하게 삶을 들여다보도록 해주는 것이 달리 더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원론은 방법으로는 온전하지 않지만 학문과 실존의 자리가 불가불 겹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승인하는 자리에서 보면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더 편하게 한종연이라 이름한 우리의 모임은 적어도 우리 회원들에게는 운명 같은 것입니다. 선택한 것이라기보다 불가항력적으로 그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감을 지니고 우리가 한 울안에서 살아온 세월이 꽤 길어졌습니다. 한 해를 더 보태고 나니 더 그러한 감회가 새롭습니다.

<< 종교학이 종교의 caretaker인지 critics인지를 놓고 북미 종교학자들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네 맥락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 둘이 우리의 실제 현실에서 딱 떨어져 구분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후자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면 전자의 몫도 해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감히 우리의 종교학은 의도적으로, 또는 방법론적으로, 후자여야 할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한종연의 책무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종교를 삶에서 따로 떼어놓고 ‘별난 것’으로 다루는 방법이 필연적으로 범할 수밖에 없었던 과오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 그동안, 그리고 지난 한 해, 우리 한종연이 지나온 세월이 새삼 보입니다. 참 잘 견뎌왔습니다. 씀씀이가 넉넉지 못했던 괴로움, 여럿이 더불어 일할 수 없었던 외로움, 눈에 보이는 보람보다 안에서 쏟은 땀이 너무 많았다는 자괴감 등등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쯤 살아온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실은 눈에 보이게 이루었습니다. 정해진 학구적인 모임들을 결한 적도 없습니다. 단 둘이 모여서도 계획된 실무적 회의를 반드시 진행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선남선녀들이 있어 살림이 넉넉하지는 못해도 모자라지는 않았습니다. 한종연 학술상을 시상하여 학문 함, 또는 종교학 함의 전형을 찾아 격려하고 기리는 일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종교문화비평이 학진 등재지가 된 것은, 우리 모두의 수고가 낳은 아픈 결실임을 모르지 않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판단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처음입니다. 처음은 이제까지 이룬 것에 기대어 여는 그러한 지평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없음에서 있음이 동터오는 것과 같은 그러한 처음입니다. 그러므로 새해는 첫날부터 흰 종이 위에 그림그리기를 시작해야 하는 긴장을 수반합니다.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정직한 인식을 도모하고, 열린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종교문화에 대한 또 다른 지적(知的) 지평을 새해에는, 어제가 없었듯이, 갓 태어난, 그래서 갓난아이처럼, 펼치고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것임을 새삼 다지는 일입니다.

<<글로, 마음으로, 돈으로, 참석으로 우리 모임을 격려해주시고 이끌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들 드립니다. 새해에도 그 모든 분들의 댁내 제절이 균안하시고 뜻하신 바를 이루시면서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러면서 새해에도 더욱 우리 한종연을 사랑해주시고 도와주시기를 감히 아룁니다.

<<새해, 오직 맑고 투명한 채 우리를 기다리는 가능성으로 가득 찬 새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가슴이 뜁니다. 우리 한종연과 우리 모두가 그렇게 두근거리는 기대로 이 처음을 활짝 열면서 처음 발걸음을 내딛기를 빕니다. 밝고 따듯하고 깊은 빛이 오는 하루하루를 그윽하게 채울 것입니다.

2011. 1.4

(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정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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