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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경인년 종교계를 뒤 돌아 보며

- 한국종교, 시대정신에 맞는 문화적인 역량을 키우자 -

2010.1.18


2010년 한국 종교계는 정부 정책과의 소통없이 충돌만 많아지고, 2009년도에 이은 종교편향 문제도 논의 대상과 범위가 확대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종교 간의 갈등문제도 더욱 격화되고 복잡하게 되었다. 특히, 하반기에는 정부의 종교지원에 대한 정당성의 문제를 둘러싸고 불교와 개신교간의 논쟁이 치열했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종교계 사회적 사건으로는 1) 생명과 환경을 고려한 전 종교계의 4대강 개발 반대운동, 2) 정부의 종교지원정책을 둘러싸고 종교편향에 대한 논란, 즉, 종교지원의 정당성을 놓고 전통종교와 전통문화 간의 경계선을 확정하려는 논란이 있었으며, 3)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작년에는 종교계 인도적인 남북교류가 전면 중단되었고, 4)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으로 인하여 사찰재정을 공개하며 사찰운영에 모범을 보였던 명진 스님이 주지 직에서 물러났고, 5) 국내외에서 종교 성직자의 성추행에 관한 사건들이 많아 종교계의 사회적 위상이 적지 않게 추락했으며, 6) 해외 이주노동자들이 증가하면서 한국사회에 이슬람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사회적 파장을 크게 일으킨 것은 천주교 주교회의의 결정사항을 무시하고 4대강 개발을 지지한 정진석 추기경의 발언과 조계종이 강남 최대 사찰인 봉은사를 직영 사찰로 지정하자 명진 스님이 반발하는 가운데 제기된 논란들, 이른바 좌파 승려 퇴출이라는 소문이다.

또한 우리사회 종교 갈등문제도 단순한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의 공적인 사업과 관련해서 발생하고 있어, 갈등의 영역과 대상이 확산되고 복잡해지고 있다. 이런 종교계 내부 갈등들은 대부분 개신교가 그 중심축에 있다. 개신교와 불교의 갈등관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개신교와 민족종교, 이슬람과의 갈등도 때때로 등장한다. 예컨대, 봉은사 땅밟기, 대구불교테마 관광단지 개발 반대, 울산 KTX 통도사 명칭 붙이기 반대, 개신교계의 처치스테이 준비와 지원 요구, 기독교 근대종교문화에 대한 지원요구, 지방민속축제를 통한 미신 조장 반대, 종교편향의 논리 무력화 시도와 역차별의 주장, 이슬람 포비아(혐오와 공포)와 선교 대책, 연말 템플예산 삭감으로 촉발된 불교계 민족문화수호운동 등이 작년 종교갈등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상과 같은 종교편향 시비와 종교 갈등의 문제가 작년부터 격화되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와 문화가 급속하게 변모하고 있는데 따른 종교계의 대응방안이 마땅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런 편향 시비와 갈등 격화는 우리사회의 정치 사회적 문제들을 반영하는 것이긴 하지만 단순히 그런 것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종교 갈등들을 자세히 보면, 한국 개신교가 한국 종교문화의 특성과 우리만의 독특한 사회 역사적인 배경들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발생한 것이 대부분이다. 다원종교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신앙상 자기 오만도 문제가 많지만 그 보다는 개신교의 주류가 ‘친미 보수’라는 우리사회 기득권의 논리에 편성하여 몽니를 부려도 감히 시비를 걸 수 있는 세력이 없을 것이라는, 그리고 사회 정치적 보호막이 아직은 남아 있다는 만용(蠻勇)에서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한국의 종교들 특히, 개신교와 천주교는 개항기와 식민시대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해방이후 남북분단의 좌우 대립과정에서 우익의 탁월한 기수 즉, 친미적인 자유민주주의 체제 이데올로기 수호자로서 대접받아 왔다. 그래서 한국종교들은 해방이후 우리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사회 정치적인 해택을 크게 받았다. 이는 우리사회가 북한의 종교탄압을 부각시키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남쪽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한국 기독교는 한국문화 특히, 민족 전통문화와는 별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60년대 이후 우리사회의 급속한 산업화 즉, 압축적 경제성장이 가져다준 사회격변과 문화적 혼란을 계기로 신앙대중에게 자기 정체성과 삶의 준거 틀을 제공함으로써 양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80년대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정교분리라는 종교의 성역을 이용해서 민주인사들을 보호하고, 사회적 신뢰성과 내적 역량을 확보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정치사회적인 힘을 크게 행사해 왔다. 그 결과 현재 한국사회 종교영역은 자기 영성적 그리고 윤리적 그릇에 비해 그리고 다른 사회문화 영역에 비해 크게 과대 성장하였으며, 종교영역 내에서도 종교의 기본 역량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적인 역량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정치사회적인 힘에만 의존하는 성장과 발전을 도모해 왔다. 이 같은 정치사회적인 힘에만 의존하는 종교의 성장과 발전은 전통종교와 기독교간의 불균등발전을 진행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같은 불균등 발전은 종교의 근대화 또는 제도화에 있어 종교 간에 다양한 문화적인 격차를 낳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본래 전통종교는 개인이 선택한 신앙이라기보다 생활양식에 가까운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와 문화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종교라는 개념은 서구문화의 보편화 과정에서 다른 사회문화영역과 분리된 하나의 ‘사적인 전문문화영역’으로 한정되어 정립되었으며, 그에 편승하여 기독교는 우리사회에 현대사회 종교모델로 정착하게 된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모든 종교들은 이 같은 기독교를 닮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과 양적 성장만 추구하는 이른바 대형교회를 자기 발전 모델로 삼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과거 종교화합의 기초였던 여러 종교의 중층적인 신앙성향이 한국의 종교문화에서 대폭 감퇴되고, 전통종교까지 ‘다른 영역과 유기적인 관련을 가지는 공동체형의 종교’에서 ‘전문적이고 사적인 종교영역’으로 변모하여 보다 분명한 ‘멤버쉽 종교’로 변해 가고 있다. 한국의 모든 종교가 멤버쉽이 분명한 ‘서구적인 멤버쉽 종교’로 전환될 때는 종교조직의 이기주의가 크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동양종교들까지 이와 같은 패권주의적이고 전투적인 종교로 변모해 갈 때 앞으로 우리사회는 종교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종교 갈등의 증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현대사회의 특성으로 흔히들 세계화, 정보화. 탈근대, 삶의 질 등을 거론하고 있다. 세계화의 정신을 세계국가라는 정치적인 이상에서 보면 여러 국가들이 자기 정체성을 지키면서 평화로운 지구촌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고, 정보화는 시공의 압축에 의한 차이의 소통, 개인의 참여와 연대의 정신을 추구하는 것이고, 탈근대는 중심보다는 주변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문화사회를 지향하고 있으며, 삶의 질 차원에서는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환경과 생태를 보존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추구한다. 이같은 현대문화 내지 시대정신은 책임 있는 개인이 참여하는 구성주의적이고 개성이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내고, 구성원의 소통과 연대, 상생과 협력의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종교들은 종교라는 조직과 제도에 묶여 이러한 흐름에 적응하려하지 않고 도리어 역행하는 경향이 있다. 한 사회의 지배종교가 시대정신과 그 문화의 흐름을 역행하면, 문화적인 역할보다는 조직과 제도의 힘에 더 의존하게 되고 그 결과는 사회적 갈등만 키우게 된다.

종교는 인간에게 삶의 양식(Way of Life)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적인 임무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국종교는 남북분단 때문에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대로 문화적인 힘보다는 정치사회적인 힘으로 우리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런 가운데 사회정치적인 힘이 부족하고 전통문화의 힘만 가진 불교와 같은 전통종교들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피해의식을 가져 왔다. 본래 멤버쉽 종교가 아니고, 현대적 제도나 조직역량이 부족했던 전통종교들은 우리사회에서 자기주장을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 서구적인 종교개념으로서의 종교와 생활양식으로서의 종교 간에 종교적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런데 21세기 탈근대의 흐름과 문화의 세기를 맞이하자 이제 우리사회에서도 문화적인 힘도 무시할 수가 없는 함수로 등장했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타고 그동안 박탈감을 느끼던 전통종교들이 자신의 문화적인 힘을 좀 발휘해 보려고 하는데, 민족문화에의 취약점을 가진 개신교가 이에 대해 강하게 시비를 거는 형세다. 특히, 우리사회가 문화적인 격변기를 지나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서고, 동시에 종교의 양적 성장도 멈추게 되자 그 동안 사회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종교계가 자기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문화적인 힘을 중심으로 한국의 종교계가 다시 재편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종교편향 문제와 종교 갈등문제가 돌출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관계가 어느 정도 정립될 때까지는 이 같은 종교편향 문제의 논의 대상과 범위는 계속 확대 되고, 그로 인하여 종교 간의 갈등문제도 상당히 복잡해 질 것이다.

*이 글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1월 월례포럼(1월15일/토)에서 '2010년 종교계이슈들' 이라는 주제로 발표되었던 글 입니다.

윤승용_

본 연구소 소장 seyoyun@yahoo.co.kr

주요 논문으로〈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방안〉등이 있고,

저서로《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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