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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6호- 종교사상가 함석헌 이해하기(김영호)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6:41

종교사상가 함석헌 이해하기

2009.3.24



근간에 함석헌(1901-1989)에 대한 담론이 다소 활발해지는 추세가 보인다. (필자도 그런저런 인연으로 떠밀려서 참여하고 있는 셈이지만.) 이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갈구에서 세계에 내세울만한 사상이나 사상가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로 보인다. 이 암울하고 무도덕한 시대에 지침이 될만한 가르침과 실천의 모델이 있는가 찾아볼 볼 때 더 큰 인물의 부재도 한 몫 했을 터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갈구의 물결을 타고 그를 상품화하고 이에 편승한 지식인과 기업인이 있다. 관심을 촉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하겠지만 상업주의와 물질주의 속에 함몰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씁쓸한 풍경이다.

학문이 세분화되면서 통합적 사유를 하는 지식인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에 함석헌은 고전적 희소성을 지닌다. 역사, 사상, 시, 종교, 철학, 신학, 교육, 고전 주석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는 함석헌을 여러 시각에서 조명할 만하다. 그의 사상이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조명되어왔지만 제한적이었다. 소설가 박태순은 그를 무엇보다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해야한다고 말했다.

여태까지 가장 많이 거론, 연구된 분야는 신학이었다. 신학이라면 대개 서구신학을 지칭한다.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세계신학을 제의한 바 있고 근자에는 불교신학을 말하는 학자도 있고, 한국에서는 ‘한국신학’(안병무), 풍류신학(유동식)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한국에서의 신학은 기독교 토착화문제와 맞물려있다. 아프리카신학 만큼이라도 독특한 한국신학이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진정으로 토착화한 한국신학이 되려한다면 동학, 증산교 같은 근대종교를 통과해야 할 것이고, 함석헌의 기독교해석이 토착화의 한 준거가 될 수 있다. 그의 신관은 한 종교전통으로 묶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다. 마치 그가 골격을 세운 ‘씨알’ 사상이 인도전통까지 회통하면서 동서를 아우르는 틀을 보여주듯이, 그의 신관도 범재신론(汎在神論panentheism)이나 나아가서 최수운의 대각이 상징하는 ‘인내천’적 구조까지 내포한다.

바로 이 점에서 함석헌에 대한 종교학도들의 관심을 제고하고자 한다. 그의 삶과 사상을 의미 깊은 종교현상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가 위대한 사상가냐 아니냐 하는 것보다도 그가 표상한 한국인의 종교성과 영성이 더 의미 있고 중요하다. 마치 마하트마 간디의 전기에서 종교의 요소를 빼면 간디가 일개 정치인으로 격하되는 것처럼 함석헌도 종교를 떠나서 그의 사상을 논할 수 없다. 두 인물에게 진리는 종교적 진리였고 종교는 다른 무엇보다 수월한 가치였다. 그에 대한 연구는 서구신학이나 철학자의 단순한 시각으로만 표피적으로 다루어져왔다. 몸집이 큰 동물을 작은 동물원 울타리 속에 가두어놓은 셈이었다.

함석헌 개인만이 아니고 그가 비로소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씨알’들에게 다 해당하는 것이지만, 그의 사유와 삶을 일종의 성현(hierophany)이나 성전기(聖傳記)(hagiography)로서 접근해볼만하다. 사실 그는 ‘신성’(holy)을 ‘전체’(whole)로 사회화시켰다. 그의 복합적인 사유구조를 꼭 인위적인 절충주의(eclecticism)나 혼합주의(syncretism)보다는 한국정신에 원형적으로 본유하고 그가 규정한 ‘수난의 여왕’ 한국인에게 생존기제로 작용해온 회통(會通)정신의 표출이나 발생반복(recapitulation) 쯤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함석헌은 20세기의 척박한 이 땅의 토양에서 건져낸 원광이다. 그 원석 속에 종교학적 주제들이 기본성분으로 깔려있다. 종교가 물질주의의 가치와 시장경제의 상품으로 전락되어 어찌 보면 혹세무민하는 풍토에서 어 “낡은 종교는 벗어서 역사의 박물관에 걸어라” 같은 주장은 이 시대에 풀어야할 화두이다. 그가 동조한 무교회주의는 오늘날 무(조직)종교주의로 확대할 수 있다. 그런 개혁적 명제들을 화두로 제시한 인물자체를 무엇보다 종교현상으로서 주목할 가치가 백번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_김영호

yohokim@hotmail.com
한양대 서울대, 펜실베이니어대(MA), 맥마스터대(PhD)에서 수학, 〈스웨덴 연구소〉펠로우,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소〉시니어 펠로우 역임. 인하대 명예교수. 함석헌기념사업회 산하 함석헌씨사상연구원 원장/『씨의 소리』편집위원장.
*저술(저서, 논문) 주제: 불교(중국, 한국, 인도, 서구), 종교철학, 다원주의 및 세계종교, 한국종교, 함석헌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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