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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1호-다윈의 그리스도교(신재식)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6:26

다윈의 그리스도교

2009.2.17



오랜만에 인터넷에서 기사 검색을 했습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몇몇 일간지를 포함해서, 종교계 신문까지 읽었습니다. 검색어는 "다윈"이었습니다.
지난 2월 12일은 다윈의 생일입니다. 올해 2009년은 다윈 출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판 150주년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올 한해 다윈을 기념하는 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열립니다. 다윈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지난 천년동안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천 명을 선정한 결과(1,000 Years, 1,000 People: Ranking the Men and Women Who Shaped the Millennium, 1998)를 보면 다윈은 7위입니다. 과학자로 갈릴레이와 뉴턴만이 그 앞에 있을 뿐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3위이며 깔뱅은 69위입니다.

1992년에 출판된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인물(The 100: A Ranking of the Most Influential Persons in History) 역시 비슷한 위상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는 지난 천 년의 영향력과 역사상 영향력, 이렇게 둘로 나누어 순위를 매겼습니다. 다윈은 지난 천년에는 7위에, 역사상에는 16위에 위치합니다. 역시 뉴턴과 갈릴레오가 다윈의 앞에 있습니다. 루터는 각각 11위와 25위에, 깔뱅은 31위와 57위에 있습니다.

아인슈타인도 다윈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하고, 그보다 300년 전에 태어난 깔뱅도 마찬가집니다. 다윈과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난 아브라함 링컨은 비교도 할 수도 없습니다. 미국인이나 그리스도인들은 달리 평가할 지 모르겠지만....

제가 인터넷 기사를 검사한 것은, 한국에서는 다윈 200주년을 어떻게 보도하는 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일반 언론이 기독교와 관련해서 어떤 보도를 하는지, 그리스도교 관련 언론은 다윈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최근 1주일 사이에 여러 언론매체에서 다양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기획 연재부터 외국의 기사 번역까지, 전문가의 학술적인 글부터 사설이나 뒷담화까지, 굉장히 다양한 형식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관심 갖는 다윈과 기독교에 관련된 기사는 상대적으로 극히 소수였습니다. 그 내용도 주로 가톨릭의 진화론에 대한 태도, 미국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논쟁이었습니다. "바티칸, 진화론과 화해?", "바티칸, 다윈에 포옹 제스처", "교황청, 다윈의 진화론에 수용적 입장", "'진화냐 창조냐' 논란도 진화 중" 이런 제목의 기사가 전부입니다. 종교에 관련해 물리학자와 가톨릭 신부와 대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계 신문에서 다윈이나 진화론에 관련된 기사는 거의 없습니다. 초교파 신문 한 곳에서 "교황청, '진화론 수용'으로 선회... 다윈 기념 행사 후원도", 그리고 어느 군소 기독교계 신문 한 곳에서 사설 일부에서 다윈 200주년을 맞이하면서 진화론과 다윈에 대해 비판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기사 내용이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하나는 '가톨릭이 진화를 수용한다.'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에서는 진화론-창조론이 여전히 논쟁 중이다.'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둘 다 바티칸과 미국의 이야기입니다. 다윈과 그리스도교에 대한 기사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거의 전부입니다.

다윈 200주년을 맞는 그리스도교의 태도를, 가톨릭의 의례적 관심과 개신교의 의도적 무관심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티칸은 3월에 《종의 기원》 출판 15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개신교는 깔뱅 출생 500주년 행사에 더 바쁜 모양입니다.

기사 검색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기사 제목은 역시 "언론"답게 다소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문구를 사용했습니다. 관련 학자들의 다소 무미건조할 글을 제외하고는, 기사의 내용이 충실치 못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외국 보도를 가공한 것과, 부정확한 사실이나 오해가 종종 눈에 뜨였습니다. 아마도 한국에는 생물학이나 과학사를 전공한 기자가 하나도 없나 봅니다.

동시에 우려도 되었습니다.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망라해서 한국의 그리스도교에는 다윈 200주년이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다윈과 진화론'은 여전히 피해가야 할 장애물인가 봅니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됩니다. 여전히 '다윈'이나 '진화'가 그리스도인이 언급해서는 안 될 '금기'가 되고, '경기'를 일으키는 신앙의 장애물이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문화 이해의 핵심이 된 '진화'에 문을 닫는 그리스도교에게, 세상과의 소통은 요원하기 때문입니다. 미몽의 신앙과, 독백의 신학을 넘어서는 그리스도교를 기대합니다. 너털거리며 웃든 계면쩍게 웃든 다윈이 웃으면서 들어올 수 있는 열린 그리스도교를 기대합니다.

신재식(호남신학대학교, jshin@htu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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