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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차 종교문화탐방
21세기 유교문화가 살아있는 안동(安東)으로
20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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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문화연구소(이하 한종연)는 연구소의 회원을 대상으로 종교문화에 대한 이해와 종교적 감성을
함양하기 위해 년2회 ‘한국종교문화 탐방행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동 프로그램은‘종교문화 체험행
사’와 더불어 관련 종교의 ‘대중 강좌’를 동시에 겸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사를 통하여 한종연 회원들
에게 한국 종교문화체험은 물론, 회원 간의 교류의 장을 제공하고, ‘각 종교의 신앙생활’과 ‘그 종교의
현황과 향후 전망’을 점검해 보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이번 9차 종교문화탐방은 ‘한국국학진흥원’
을 중심으로 7/21(일)-22(월)간 21세기 유교문화가 살아있는 안동지역을 두루 둘러보고자 합니다. 참석을
희망 하시는 분(숙식관계로 15명 한정)은 7월 10일까지 본 연구소로 연락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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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의 고장, 유교의 본향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동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양반을 떠올린다. 양반은 조선시대 벼슬을 지낸 관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안동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벼슬한 양반들이 월등히 많았던 곳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조선후기 영조가 등극한 다음 집권한 노론 세력은 다른 당색의 등용을 견제하였다. 안동 지역의 당색은 남인이었던 까닭에 대과 합격자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고위 관직에 오르는 사람의 수는 아주 적다. 그런데 왜 안동을 양반의 도시라고 부를까. 그것은 아마도 퇴계 이황과 그의 사후 성리학의 맥이 널리 전승된 까닭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황 사후 16세기 말부터 국운이 기울던 20세기 초까지 퇴계 문하에서 문집을 발간한 학자의 수만 1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한 권의 책을 발간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공력이 소요되는 어려운 일이다. 조선시대 문집은 오늘날 개인의 전집과 비슷한 개념이다. 그리고 문집을 발간하기 위해서는 목판을 판각해야 하는 데 그 목판의 판각 비용이 적지 않다. 그런 까닭에 조선시대 문집 발간은 일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 문중의 문제였다. 안동이 양반의 고장이라는 것은 아마도 이런 학문이 살아있는 곳이란 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전국에서 서원이 가장 많은 곳
조선시대 학문은 서원을 통하여 전파되고 확산되었다. 서원은 오늘날 사립대학에 해당한다. 안동에는 조선시대 63개의 서원이 건립되었고, 현존하는 서원만도 26개에 달한다. 대표적인 서원으로는 도산서원·병산서원·임천서원 등을 들 수 있다. 도산서원은 1574년(선조 7) 퇴계 이황을 배향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도산서원은 이듬해 선조가 명필 한석봉이 쓴 편액을 하사함으로서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곳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들은 이렇다. 도산서원 들어가는 입구 천연대는 퇴계가 자연을 감상하고, 그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사색을 즐겼던 곳이다. 천연대 건너에 보이는 작은 섬과 같은 시사단은 도산별시(1792년(정조 16)에 도산서원에서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려서 시행된 특별 과거 시험)가 행해졌던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퇴계가 제자들을 지도하였던 도산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가 있다. 계단을 타고 오르면서 진도문을 지나면 오른쪽과 왼쪽에 책을 보관하였던 동광명실과 서광명실이 있다. 마주보이는 곳은 도산서원 학생들의 수업이 진행되었던 전교당이다. 그 전교당 오른쪽에는 도산서원의 책판을 보관하였던 장판각이 있다 그리고 그 뒷쪽은 퇴계의 위패가 모셔져있는 상덕사尙德祠가 있다. 왼쪽으로 난 문을 지나면 서원 향사의 제수를 준비하는 전사청과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이 살았던 고직사가 있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옥진각이라는 퇴계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한 전시관이 있다. 퇴계의 제자들 가운데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은 특히 유명하다.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 유교식 제사의 수용과 변형
서애 류성룡을 배향한 곳이 병산서원이다.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전쟁을 총괄 지휘한 서애 류성룡과 그의 셋쩨 아들 수암 류진을 배향한 서원이다. 병산서원 역시 다른 서원과 마찬가지로 전강후묘 다시 말하자면 앞 부분에는 공부하는 공간이 있고, 뒷쪽에는 제사를 모시는 제향 공간이 있다. 강학 공간의 이름은 입교당이고, 제향 공간은 존덕사尊德祠이다. 존덕사에서는 다른 서원과 마찬가지로 봄·가을로 향사가 이루어진다. 병산서원은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특히 만대루晩對樓 앞에 펼쳐진 낙동강의 백사장은 여름철 휴양객들로 붐빈다.
학봉 김성일을 배향한 곳은 임천서원이다. 임천서원 경내에는 강당인 흥교당興敎堂과 사당인 숭정사崇正祠와 학생들의 기숙 공간인 동서재로 응도재凝道齋·양호재養浩齋가 있으며 전사청과 주사廚舍 등이 있다. 학봉 종택에는 최근에 학봉기념관이 세워져서 학봉에 관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처럼 안동은 많은 유학자들이 태어나고, 살다 간 곳이다. 그 가운에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은 불천위라하여 영원히 제향된다.
불천위가 가장 많은 곳
안동에는 불천위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유교에서 제사는 대개 고조 할아버지까지 4대 봉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불천위는 영원토록 제사를 지내는 훌륭한 현조를 말한다. 영종회라는 모임이 있는데 대구, 경북지역 불천위 종가 110집의 종손 모임을 말한다. 그 가운데 안동 불천위 종가는 50집이 넘는다고 한다. 불천위는 그 집안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이런 불천위를 모시고 사는 집안의 사람들은 아직도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까지 전통을 고수하면서 살아왔던 안동 사람들은 이제 문을 열고 유교를 브랜드화 하려고 한다. 유교의 브랜드화는 보존과 활용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된다. 불천위 제사와 종손의 승계를 뜻하는 길제吉祭와 같은 의례들은 전통 문화유산은 영상물과 기록물로 보존하고, 또 활용 방안은 지금까지 일반인들에게는 닫혀있었던 종택을 개방하여 한옥 체험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체험은 통하여 현대인들이 잊고 살아가는 소중한 전통문화를 일깨워주고 있다.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조상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왜 소중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밖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유교문화를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김순석_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sskim@koreastudy.or.kr
논문으로 〈근대 유교계의 지각변동: 대동교 만들기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호국불교의 재검토- 역사적 사례와 이론 -〉 등이 있고, 저서로 《백년 동안 한국불교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21세기에도 우리문화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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