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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6.25
근대화와 다종교상황에 따른 제사의 현대화 모색
오늘날 제사는 그대로 지키기에는 버겁고 무시하기에는 꺼림직한 문제가 되었다. 제사용품이나 음식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회사가 등장하고, 상장례를 전문으로 하는 상조전문회사가 성행하며, 납골당과 수목장 등 새로운 형식들이 부상하는 가운데, 제사의 유교적 전통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안동의 유력한 문중 출신의 인사들조차도 다음 세대에 제사가 온전하게 계승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속내를 고백할 정도다.
최근의 설문조사 결과는 이러한 걱정을 실제 수치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2,000년 보건사회연구원이 서울시와 6대 광역시 주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례와 성묘의 실태 및 의식조사>에 의하면, 제사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공감한 응답자가 87.6%였으나, 2012년 매경이코노미가 성인 남녀 2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63%로 줄어들었다. 제사의 필요성이나 당위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부정적으로 응답한 사람들은 대체로 제사를 실천하기 힘든 현실적 고충과 함께 허례허식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전통옹호자들은 제사의 본뜻이 조상의 추모와 효도의 의무 및 가족의 화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요컨대, 제사가 조상의 추모와 효도를 통해 가족의 화합에 기여하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제사에 대한 현실적 고충은 제사 방식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조선 후기 가부장적 대가족제도가 확립되면서 구축되었던 장자 제사 주재와 장자상속은 점차 협력봉사/윤회봉사와 자녀균분상속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00년 조사에서는 장남이 제사를 주관하는 비율이 88%였으나, 2012년 조사에서는 65.4%만 장남이 주관한다고 응답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다종교상황에 따라 제사의 현대화가 새롭게 모색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 조사에서는 제례의 유형이 유교식 78.3%, 개신교식 16%, 천주교식 2.7%, 불교식 2.7%로 나타났다. 다양한 종교전통들은 각기 고유의 교리에 맞는 제사방식들을 고안하여 전통적인 유교적 제사방식을 간소화하거나 종교별로 차별화된 제사방식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유교적 제사를 수용, 변용, 재구성하는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제사방식을 창출함으로써 독특한 현대적 의례문화를 일구고 있다.
불교식 가정제사: 전통적 기신재의 현대적 재구성
불교는 유교적 제사에 불교적 재齋 양식, 특히 시식施食을 접목하여 새로운 현대적 가정제사를 권장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에서 편찬한 <<불교 상제례 안내>>(2011)에 의하면, 불교식 가정제사는 영가 모시기, 제수 권하기, 불법 전하기, 축원 올리기, 편지 올리기, 영가 보내기, 제수 나누기의 7단계로 구성된다. 영가 모시기는 삼보三寶를 불러 모시면서 합장반배하여 가피를 구하는 거불擧佛, 의식문을 염송하여 영가를 청하는 청혼請魂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수 권하기는 영가에게 차와 음식을 올리는 헌다獻茶에 이어 공양을 권하면서 염송하는 헌식獻食이 이어지고, 불법 전하기는 법문을 영가에게 들려준다. 이어서 극락왕생의 축원을 올리고, 영가에게 편지 올린 다음, 영가를 떠나보내는 봉송奉送의 3배를 올린 뒤 상을 물리고 유주무주 고혼을 위해 헌식을 하고 나서 위패를 태운다. 마지막으로 음복을 하며 조상과 교감하며 불보살의 가르침을 나눈다. 영가를 모시는 영단에 병풍을 펼치고, 병풍 중앙에 탑다라니를 걸어둔 채 그 앞에 영정사진과 위패를 둔 제사상을 설치하고, 계율에 따라 육류와 생선을 제외하고, 술 대신 차를 올리며, 향·초·꽃·차·과실·밥의 육법공양물을 진설한다. 또한 강신할 때에는 술을 사용하지 않고 청혼 의식문을 염송한다. 불교식 가정제사는 조상영가의 극락왕생과 해탈을 위해 삼보의 가피를 청하고 영가에게 법문을 들려주며 계율에 따라 진행한다는 점에서 불교식 기신재의 현대적 재구성이다.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 유교식 제사의 수용과 변형
2012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승인한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에서는 유교식 재계와 진설처럼 집 안팎을 청소하고 목욕 재계한 후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고백성사로 마음 준비를 하고 차례상을 준비한 뒤 벽에는 십자가상을 걸고 그 밑에 선조의 사진을 준비한다. 제사는 성당에서 아침미사를 참여한 뒤 실시하며, 시작 예식(시작 안내, 성호경聖號經, 시작성가, 시작기도), 말씀 예절(성경 봉독, 가장의 말씀), 추모 예절(분향과 배례, 위령 기도), 마침 예식(마침성가, 음식 나눔) 등으로 가정 제례 예식을 진행한다.
천주교는 미사와 유교적 제사가 절충된 방식을 통해 하느님과 조상을 모두 의례적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의식의 절차가 하느님에 대한 의식과 조상에 대한 의식이 차례로 병렬적으로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조선 후기 제사 거부에서 근대 교황청의 ‘종교적 공경’과 ‘민간적 예식’ 구분에 따라 반함飯含, 고복皐復, 합문閤門 등 조상의 혼령이 상제례 때 직접 와서 음식을 먹는 것을 뜻하는 의식들을 금지하면서도 사진이나 위패의 설치, 분향, 제상 차림, 절하기 등 제사 형식을 일부 수용하고 변형하는 양상이 특징적이다.
개신교 추모예배/추도식: 유교식 제사의 거부와 대체
개신교의 추도식 혹은 추모예배는 조상제사에 대한 배타적 거부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조상에 대한 공경과 효의식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세계 개신교 전통에 없었던 추모예배 혹은 추도식을 만들어서 유교적 제사를 대체하고 있다. 추모예배 혹은 추도식은 우상숭배의 혐의를 지우기 위해 철저히 예배의 형식을 고수하면서 고인의 약력보고사와 추모사와 묵념 등 고인을 추모하는 의절을 추가되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며, 조상신은 의식의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개신교의 <<21세기 네트워크 시대의 기독교적 추모예식 연구>>(2011)에 의하면, 추도식 혹은 추모예배의 절차는 묵도, 신앙고백, 찬송, 기도, 성경봉독, 설교, 기도, 고인의 약력보고, 추모사, 찬송, 축도, 폐회 등으로 이루어진다.
개신교는 공식적으로는 철저하게 제사를 금하고 있지만, 개별 교인이나 교회 차원에서 전통적 방식대로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있고, 최근에는 젊은이들과 진보적인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제사를 허용하자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속한 경동교회의 추모예배처럼 향을 피우고 절하는 의식을 허용하는 경우도 일부에서는 생기고 있다. 경동교회는 일반적으로 우상숭배로 해석되어 금지된 절하기를 ‘성도의 교통’라는 차원에서 새롭게 해석하면서 전통적 제사의 형식 일부를 수용한 것이다.
현대적 제사문화의 미래는?
일제 강점기 <<의례준칙>>을 통해 강요된 제사문화의 축소와 간소화 경향은 근대화의 진행과 더불어 <<가정의례준칙>>을 거치면서 전면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가족문화의 의례적 울타리로 기능했던 제사는 현대의 다종교상황 속에서 유교적 제사의 의의와 기능을 수용, 변용,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의례로 거듭나고 있다. 전통적인 사회적 기반을 상실한 제사는 다종교상황의 현대사회에서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을 것인가? 제사문화의 새로운 흐름은 종교학자들의 깊은 성찰을 요청하고 있다.
박종천_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
baummensch@naver.com
논문으로 <조선 후기 유교적 가족질서의 확산과 의례적 양상>,<다산 예학의 경세론적 성격>,<상제례의 한국적 전개와 유교의례의 문화적 영향> 등이 있으며, 저서로 <<서울의 제사, 감사와 기원의 몸짓>>,<<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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