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전제적(authoritarian) 종교와 인본적(humanistic) 종교


 

 

2013.8.20

 

 

이 글을 쓰기 위하여 나는 새삼스럽게 ‘권력’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보았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알아듣도록 타일러서 힘쓰게 함”이라고 되어 있다. 교회나 사찰에서 경건한 의례(儀禮)에 몰입해 있는 신도대중의 모습과 일상의 종교권력이라는 개념을 대조해 보면, ‘복종’이나 ‘지배’에 초점을 둔, 위의 사전적 정의가 너무 단순한 것도 같다. 오히려 한병철(한병철 저, 김남시 역,『권력이란 무엇인가』문학과 지성사, 2012. p.17)의 설명대로, 권력이란 움직이던 물체를 다른 방향으로 가게 하는 기계적 충격처럼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가 하려는 것을 권력에 복종하는 자 스스로가 이미 자신이 하려고 했던 것처럼 내면화하는 작용이라는 개념정의가 더 적절하게 느껴진다.

 

권력이 그와 같은 의미라는 점에서, 기성종교는 물론 신흥종교도 복잡한 수준의 권력체계를 갖고 있다. 종교조직의 권력체계는 E. Fromm의 분류처럼 인본적(humanistic) 종교로 작동되기도 하고, 혹은 전제적(authoritarian) 종교로 작동되기도 한다. 인본적 종교란 처벌과 복종보다는 인간의 자주성· 책임성· 자기실현 등을 강조하는 경우이고, 전제적 종교란 인간이 비하되고 완전한 굴종과 무능력함이 강조되는 경우이다(오경환, 『종교사회학』 서광사, 2003. p.302.). 여하튼 종교권력이라는 단어가 과도하고 부정적인 용례로 연결되는 경우가 흔한 것을 보면, 오늘날 종교가 인본적이라기보다 전제적인 속성을 더 많이 갖는 것은 아닌가. 어느 시점에서 자연발생적이었던 종교권력이 점차 억압적이고 지배적인 의미로 기울어지고 강화되는 요인들을 현상중심의 세 가지 범주로 추론해 본다.

 

첫째, 종교교의에 대한 지식을 특정한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것처럼 차별화시키는 종교집단의 선지자적(先知者的) 태도가 그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로 돌아가 예를 들자면, 인도의 베다 시대 바라문들은 자신의 제자만을 ‘무릎 가까이’ 오게 하여 비밀교의(우파니사드)를 전수했다고 한다. 바로 최근의 웃지 못 할 사례도 있다. 나의 한 지인이 불교신자로 개종을 하였다. 그런데 우연히 그녀가 찾아가게 된 사찰의 주지는 그 곳이 기도에 영험한 절이므로, 행여라도 다른 절에 가거나 다른 스님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고 단단히 이르더라고 했다. 순진하고도 초심불자인 그녀는 정말 걱정이 많이 되는 듯, 불교가 원래 그런 것이냐고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어디 그런 문제뿐인가. 교육기관이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개설되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글을 몰라서 경전을 스스로 읽지도 못하였다. 어쩌다 절에 가서 스님의 설법을 듣는 것이 평범한 불자들에게는 귀한 지식의 창구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사정이 달라져 여기저기서 불교공부를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재가불자라도 절에 가면 여전히 스님중심으로 일방적인 법문을 듣고 배워야 한다. 목사나 신부의 설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성직자와 평신도 혹은 출가수행자와 재가수행자 사이의 차별적인 관계는 어디서 왔는가. 종교관련 지식의 학습과정에서 교육자와 피교육자라는 권위적 상하관계의 관행 때문이고, 아울러 지식이 권력화 된 탓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정보를 권력의 도구로 삼는 일은 현대의 전문가 집단에게서도 발견되지만, 종교계는 실제로 그리 전문가가 아닌 경우조차도 전문가인양으로 재가신자(평신도)를 차별한다는 점이 문제다.

 

둘째, 종교가 가진 권력요인의 한 가지는 성역할(gender)에 관련된다. 불교든 기독교든, 성 역할에 관한 교의해석에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종교가 가부장적인 권위를 지금껏 전승시켜 온 것은 어찌된 일인가. 여성학에서 말하듯이 남녀간의 생리적· 심리적인 성차(性差)라든가, 문화적· 사회적인 학습차(學習差)를 굳이 여기서 논할 생각은 없다. 그 사이 일반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바뀌었지만, 유독 종교계의 남녀 역할은 그 어느 집단에 비해서도 보수적이다. 여성신자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종교조직의 상급자가 되기 어려운 점은 크게 변함이 없다. 남녀를 막론하고 일반신자들이 여성인 출가자나 목회자를 대우하는 태도 역시, 남성인 출가자나 목회자를 대우할 때와 비교해보면 너무도 평등하지가 않다. 예를 들면 과거 불교계의 한 설문조사 결과, 비구니스님들이 신도로부터 받는 보시금(수입)이 비구스님들이 받는 보시금에 비하여 평균적으로 훨씬 적었다.

 

여기에 덧붙여야 할 점이 있다. 신자가 자신의 가정이나 직장생활에서는 남성편중의 위계의식을 벗어난 것처럼 보여도, 자신의 종교기관에서 여전한 가부장적 문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나 저항이 없는 이중적 태도를 갖고 있다. 단지 관습적인 종교문화가 해당 신자들에게는 외부사회보다 더 공고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어느 유명한 사찰의 법회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법회 뒤에 의례히 신자 대중은 공양간(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여성들이 간이식판에다 배식을 받는 한편 스님과 남성신자들에게는 밥상이 차려진 것을 보았다. 그 절에 오는 남성신자가 많지 않아서 평소에도 그렇게 특별히 상을 차려서 대접을 해왔다는 설명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여성신자들 중 누구도 그 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없어 보였고, 오히려 당연한 듯 대하는 점이었다.

 

종교계는 지금도 변함없이 앞장선 소수의 남자들과 뒤따르는 다수의 여자들로 판이 짜여 있다. 일단의 출가수행자(성직자)가 남자라는 점과 선도자(先導者)라는 점이 이중으로 엮인 권력체계 속에서, 여성 종교인들은 그들을 ‘아버지처럼 남편처럼 아들처럼’ 후원하고 지지하고 돌보며 스스로 복종하고 자기를 스스로 낮추는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남녀를 막론하고 보수적인 신앙심이 종교계의 젠더 권력을 이의 없이 보호·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종교권력을 강화하는 또 다른 요인은 종교의 사회서비스에 있다. 종교계 사회 서비스는 주로 전문적인 사회복지실천과 자원봉사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 영향력이 크고 풍부한 민간복지자원은 종교계로부터 나왔다. 종교교의에 따라서 어려운 이웃에게 재물을 보시하고 노력봉사를 하던 전통이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으로 발달해온 것이다. 오랫동안 자선의 역사를 거치면서 종교는 서비스 수혜자 개개인에게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점점 더 큰 권위와 권력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 한국전쟁과 같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종교단체가 지원을 하면, 결과적으로 그만큼 해당종교의 위세가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종교계는 선량한 사회봉사의 역할과 더불어, 한편에서는 그 좋은 명분을 이용하여 포교(선교)를 위한 재력과 인력을 쌓아가고 있다.

 

그런데 현대 전문화된 사회복지영역에서는 복지가 시민적 권리라는 인식이 커짐에 따라 종교계 서비스는 더 이상 포교(선교)를 우선시 할 수 없다. 모든 대상자에게 가치중립적인 서비스를 해야 한다. 정부로부터 위탁받은 복지현장에서는 더더욱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지 못하게 되어 있다. 비록 100% 순수한 종교계 자원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일지라도, 종교권력의 시혜적(施惠的) 성격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과연 종교계 복지시설 중에서 종교적 상징이 없는 곳은 얼마나 될 것이며, 실무자들이 종교적 표현의 유혹을 얼마나 잘 이겨낼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종교계 시설에서 서비스를 받은 사람들이 개종을 하는 경우가 있다하더라도, 거기에 혹시 어떤 강제가 있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물론 나는 종교적 상징이나 표현들이 무조건 문제가 된다는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복지법인과 공익단체들이 늘어남에 따라서 종교계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이 분야에서 자칫 종교권력의 무리한 개입과 무분별한 역할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실제로 과거에 어떤 복지시책에 대하여 종교인들의 압력단체활동이 편향적으로 전개된 경우도 있었다.

 

이상과 같이 종교지식의 차별적인 교육 행태와, 신자들의 여전히 가부장적인 상호작용, 그리고 약자와 위기에 제공되는 사회 서비스 등의 세 가지가 서로 서로를 매개하여, 종교의 권위와 종교계의 권력을 강화하는 요소가 된다. 종교권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종교인 각자의 성찰과 함께 좀 더 인본적인 종교사회운동이 필요할 것이다.


 

 

이혜숙_
금강대학교 객원교수
hesook56@hanmail.net
주요 저서로 <<종교사회복지>> 등이 있고, 주요논문으로 <불교사회복지 평가에 관한 연구>, <종교사회복지 현황과 과제>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