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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정치
2013.9.3
최근 종교와 정치에 관한 연구논문을 『담론201』제16권 2호에 게재하였다. 종교와 정치는 그 자체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종교의 현실적인 목표는 신자수를 증대시키고, 교세를 확장시키며, 자기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치권력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반면에 정치권력은 지지 세력을 많이 확보하고 자신이 행사하는 권력을 성스러움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종교의 도움이 필요하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제를 다루면서 몇 가지 혼란스러웠던 문제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무종교인은 말할 것도 없고 특정 종교의 신자인 정치인들이 각종 종교행사에 참석하면서 보여준 친화적인 태도에 관한 것이다. 물론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것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선거에서 다른 종교로부터 받을 불이익 때문에 어떤 종교의 지도자를 만나서도 또 어떤 종교 행사에 참여하더라도 동일하게 친밀감을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태도가 단순히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고, 여기에는 종교 자체가 보여준 어떤 변모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후기 세속사회에서의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쓴 페라라(Alessandro Ferrara, 2009)의 세속화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현대가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여전히, 또는 점점 더 크게 세속화가 진행되는 시기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하면서 세속화의 개념을 단지 제도종교의 쇠퇴와 종교의 사사화 현상으로만 정의해서는 그 실상을 모두 포괄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페라라는 세속화 개념을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살아있는 체험'의 관점에 기반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특히 세 번째 세속화 개념은 현대사회의 종교 변화와 긴밀하게 관련된다. 우리는 신을 믿는 것(종교)이 전혀 도전 받지 않고 문제가 되지 않던 과거의 세속주의 사회가 아니라, 종교가 여러가지 삶 중 하나의 ‘선택'으로 이해되는 현대의 세속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현대사회는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종교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의미이다. 이 세 번째 개념의 세속주의의 관점으로부터는 신앙과 비신앙은 술어로서 경쟁하는 라이벌 이론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상이한 방식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대선 후보자들이 이렇게 한결같은 태도로 종교 순례를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삶에서 하나의 선택이 된 현대 종교관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종교 신앙을 가진 정치인들이 그들이 믿는 종교의 가치와 이념을 정치사회적 이슈에 반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톨릭 신부인 박정우교수는 ‘가톨릭신자 정치인에게 요구한다’에서 지난 18대 국회의원 299명 중 개신교 신자는 118명(39.5%), 가톨릭 신자는 79명(26.4%)으로 두 그리스도교 종교를 합치면 모두 65.9%에 이르고, 대통령도 개신교의 장로이며 그가 다녔던 특정 교회의 인물들이 국가의 주요 보직을 맡아왔으나 지난 4년 동안 우리나라 정치와 입법 활동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비판하였다. 가톨릭 신자 정치인 역시 마찬가지로 2008년 5월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난자 매매를 허용하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 가톨릭교회는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벌였으나 그 개정안은 결국 단 한 표의 반대도 없이 통과되었는데 그는 이를 “진리와 양심보다는 정치적 이익과 대세를 따르는 모습, 혹은 교회 가르침에 대한 무지의 소산”으로 진단했다. 지난 몇 년간 가톨릭교회는 4대강 사업의 위법성과 환경파괴 등 정부의 여러 정책의 비윤리성을 지적해 왔으나 이런 사안에 대해 여당 가톨릭 신자 국회의원 중에 당파적 입장을 떠나서 신앙과 양심에 따르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음을 지적했다(가톨릭신문 2012. 4. 22). 이것은 정치가 종교적 신념보다 우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세계에서 종교가 너무 쉽게 포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종교는 하나의 거대권력으로 정치판에 끼어들기보다는 종교적 가치가 정치를 정화하고 지향점을 확실히 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와 관련하여 법정 스님이 한 말은 두고두고 되새겨볼 만하다. “종교와 정치권력은 같은 시대와 사회에 존재하면서도 그 지향하는 바는 다르다. 정치권력은 어디까지나 이해에 민감해서 비정하고 현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할 수 없다. 그러나 종교 활동은 영원한 진리와 만인을 위한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무한하다. 온갖 박해 속에서도 종교가 꺾이거나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우리 인간의 심성 안에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서화동. “대통령 선거와 종교.” 『한국의 대통령선거-97 대선 완벽 가이드』(월간조선 1997년 신년호 별책부록). p.383.]
전명수_
고려대 사회학 박사.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
54mschun@hanmail.net
주요 논문으로〈정보화 사회와 종교문화의 변용〉,〈한국의 경제발전과 개신교의 역할에 관한 고찰〉,〈현대적 불안의식과 종교의 역할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종교와 대중문화의 관계 연구〉,〈한국 종교와 정치의 관계: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등이 있고, 저서로는《뉴에이지 운동과 한국의 대중문화》,《한국의 종교와 사회운동》(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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