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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가톨릭·개신교계 NGO들의 공개 집담회를 다녀와서


 

2013.12.17

 

불교·가톨릭·개신교계 NGO들이 지난 12월10일 조계사 신도회관 4층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회의실에서 공개집담회 ‘종교, 한국정치를 말하다’를 개최하였다.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와 참여불교재가연대, 우리신학연구소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생명평화마당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등의 대표들이 함께하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의 강론에 따른 정교분리 논란 등을 진단하고 이 시대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논의하였다. 논의 순서는 박창신 신부의 발언으로 인해서 촉발된 종단 내 천주교와 정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현실을 각각 종단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전개되고 있는 이 상황을 각자의 시선에서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 그리고 3대 종단이 모여, 3대 종단의 NGO를 대표하고 있는 단체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동 집담회는 이미 기존 언론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한 인상만 소개하기로 한다.

 

이번 집담회에서 주로 논의가 된 것은 이 시대 종교인의 현실참여와 종교의 사회참여 방안이었다. 각 참석자들은 이 시대 종교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사회전반에 스며들어 사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가 품고 있는 평화의 가치 실현이 무엇보다 절실하다.(이원영 가톨릭평화공동체 공동대표), 이 시대의 종교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은 생명과 평화의 내면화를 통한 정치프레임 극복에 있다.(김영철 생명평화마당 집행위원장), 해방정국에서 통용됐던 정부의 반공주의 공포마케팅이 다시 살아나 사람들을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정부가 ‘종북’이라는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담론지형에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종교밖에 없다.(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종교는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국가를 공정한 중재자로 만들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며,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를 위해 종교의 공의제 전통과, 청빈·나눔의 덕목을 사회로 투영시켜야 한다.(정웅기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성직자들이 사회에 던진 화두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정윤선 참여불교재가연대 사무총장) 등의 여러 의견들을 쏟아내었다.

 

이번 집담회에는 종교인의 현실참여와 정교분리, 그리고 최근 우리사회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종북과 대선불복 프레임과 같은 용어들이 그 중심에 있다. 이들 논란의 부분에 대해 좀 더 가닥 잡으려면 이들 개념들을 좀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정교분리의 문제는 우리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이미 많이 걸러진 문제이지만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본래 종교와 정치의 분리는 제도상의 분리이지 삶의 현장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종교는 영원히 인간의 고통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세속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가 시민에게 고통을 준다면 당연히 종교의 발언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바다. 특히,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재단되는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정치참여는 시민의 기본권으로도, 이 같은 종교의 본래 사명과도 맞닿아 있다. 종교가 정치권력의 분점을 요구하지 않는 이상 종교의 정치 참여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이를 보면 성직자의 정치적 발언을 무조건 정교분리 위반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폄하하기 위한 덫에 지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정부의 종북프레임 문제다. 최근에 들어와 우리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압살할 만큼 국가 안보가 위기에 있는가. 우리사회는 종북 이데올로기가 단순한 이데올로기 차원을 넘어 모든 문제에 전가보도로 기능하는 등 종교적인 차원으로 까지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어디에나 정치적인 문제가 생기면 합리적인 절차 없이 종북으로 몰아가는 공포 분위기다. 1980년대 민주화를 통해 형성된 우리사회의 청사진들, 특히 국가에 대한 개인의 기본권 보장이 이미 사상누각이 되어버린 듯하다. 과거 한국 사회를 강하게 지배했던 냉전논리와 전혀 바를 바가 없다. 한편, 이런 종북과 쌍벽을 이루는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글로벌 차원의 시장 경쟁 속에서 약자의 삶은 그저 피곤함과 억울함에 젖어 있다. 이들이 생명과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종교를 필요로 하고 있다. 무한 경쟁의 시장 질서를 보완하여 시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마치 시장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종교인의 현실참여는 기본으로 권력만을 위한 권력을 시민차원에서 감시하는 데 있다. 그것에 무슨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사회의 문화전통과 시민 삶의 상황에 의해 그 수준이 결정된다. 정교분리의 문제도 무슨 고전적인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교를 분리한 현대국가의 형성과정이 다르고 또 현재 국가마다 정치체제가 다르고 종교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교분리의 운영과 실제는 해당 사회적 필요에 따라 계속 변해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종북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거 50년대 미소 진영의 논리인 냉전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남북의 체제경쟁도 국제적인 문제가 아닌 민족 내부의 문제가 되었다. 종북의 개념을 아무 곳에나 무분별하게 사용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미래 통일국가의 장래와 연결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차단해 버리는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적어도 남북이 서로 적대하면서 의존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협력하면서 의존하는 사회를 지향해야하지 않을까? 3대 종단의 NGO를 대표하고 있는 단체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도 여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seyoyun@daum.net


논문으로 〈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 〈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방안〉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 《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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