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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연구자가 癸巳年을 돌이켜 보며


 

2013.12.24

 

 

지금, 올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서 있다. 바쁘게 자기 일에 몰두하며 지내온 한 해를 돌이켜볼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종교 연구자라면 돌이켜보는 일 가운데 우리가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종교학에 대한 것이다. 이른바 종교학이라는 학문 분류의 틀, 인식의 틀이거나 또는 그에 상응하는 제도적 틀에 대해서 돌이켜 보아야 한다. 종교 연구자인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종교 및 종교학의 잣대로 생각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그것이 몸에 배인 일상의 관성일 수도 있고 또 사회에서 우리에게 요구된 사항일 수도 있다. 한 해를 마감하는 때에 이런 우리의 관성을 돌이켜 성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풀리지 않는 세속의 문제, 즉 서로 얽힌 난제가 제기 될 때 마다, 사회가 종교적인 해법을 요구하는 듯이 보인다. 종교가 현안 문제의 최종 결판자로서 나서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럴 때, 화쟁적 태도, 상생적인 접근, 하늘의 뜻 따르기라는 말들이 제시된다. 모두 현실 해법의 수사학으로 제시되는 말이다. 이 모든 용어가 종교와 관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종교가 현실 문제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종교 연구자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지난 달 11월, 희수 축하연에서 정진홍 교수는 “종교학이 삶의 자리의 어디에 위치하는가?”란 물음을 던졌다. 그는 종교를 다루는 작업의 위상을 물으며, 일상적 삶의 자리와 종교학적 삶의 자리의 관계에 대해 우리 모두의 화두를 던졌다. “우리가 관성적인 자기 길들이기(self-domestication)라는 인식의 악순환 속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물음이었다. 혹시 종교연구자인 우리가 종교를 ”책장 속의 불교” “성서에 갇힌 개신교” 그리고 “성당 속에 밀폐된 가톨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속(聖俗)의 전혀 다른 두 영역을 설정하면서, 종교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를 이분화 해버린 것은 아닌가? 그리고 세속의 모순이 극심해지면, 성(聖)의 세계로 도피하여 성의 세계를 자기 안전판으로 삼아 손쉽게 초월적 위치를 점유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성속이란 두 영역을 자기 인식의 합리화에 이용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두 영역으로 엄격하게 구분함으로써 합리화하는 종교연구 관점은 최근 현실의 난맥을 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문제를 더욱 더 꼬이게 하고 있다. 예컨대 종교 이념이 오히려 전쟁의 명분으로 이용되는 것을 우리는 얼마 전에 미국에서 보았다. 악의 제거와 정의로운 선의 승리를 외치며 전쟁을 선언한 조지 부시 대통령이 그랬다. 하지만 그런 일이 어찌 미국에서만 일어날 것인가? <<종교가 사악해 질 때>>(찰스 킴볼)라는 제목의 책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종교는 폭력과 사악함을 증대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절대적 진리의 주장, 맹목적 복종, 이상세계의 대망,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태도, 성전(聖戰)을 선포하는 일 등이 바로 종교가 부패하고 사악하게 되는 결정적인 징후다. 우리가 빠져버릴 수 있는 종교 폭력과 사악함의 구렁텅이는 대개 위장되어 있고 우리의 생각보다 더 커다랗다. 그리고 이는 모든 종교에 내재되어 있는 위험이다. 이를 부정 할 길은 없다. 바로 우리 종교의 현장도 그렇다. 종교 현장만이 아니라 우리의 세속의 현실도 그런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한 해를 마감하는 자리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물을 수밖에 없다. 우리 일상의 자리, 종교학의 자리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자본주의의 병폐는 교정되어야 한다.”는 프란시스코 교황의 말을 마르크시즘으로 몰아 배척한다거나, 동성애자가 교회로 다가와 위로를 구할 때 교리를 내세워 문전박대하는 일에 종교 연구자로서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가? 적어도 종교학이 삶의 현장에 서 있을 때, 저항을 시작할 수 있다. 책상과 신학과 초월적 도피처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지혜(인식)와 자비(실천)는 함께 가는 것이다. 알고 인식하는 한, 참여하여야 한다. 그래야 보살행일 터이고 사랑의 실천일 것이다. 파행을 거듭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어느 수도자가 한 간단명료한 발언을 명심할 만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현실에서 명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반드시 정치 문제로 삼아야 한다.”(Jeanne Hersch)



이민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minyonglee@hotmail.com


주요 논문으로 <불교학 연구의 문화배경에 대한 성찰>,<서구 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고, 역서로

 

《성스러움의 해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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