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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개혁유대교 여성 칸토르-겸-랍비 안젤라 부흐달과의 대화

 

 

 

2013.12.10


안젤라 와닉 부흐달(Angela Warnick Buchdahl)은 1972년 서울에서 유대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시아계-미국인 여성으로, 예일대에서 종교학을 공부했으며, 맨해튼의 개혁유대교 신학교인 히브리유니온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999년에 칸토르 안수*를, 2001년에 랍비 안수를 받았다. 현재 맨해튼의 가장 큰 개혁유대교 회당인 센트럴시너고그(Central Synagogue, 1839년 회중 창립, 1872년 건축 완공)에서 수석 칸토르이자 부담임 랍비로 시무하고 있다. 안젤라 부흐달에게는 몇 개의 ‘최초’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그녀는 아시아계-미국인으로서 랍비 안수를 받은 세계 최초의 인물이며, 아시아계-미국인으로서 칸토르 안수를 받은 것 역시 세계 최초다. 또한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서 칸토르와 랍비 두 가지 안수를 모두 받은 것도 그녀가 세계 최초다. 덕분에 안젤라 부흐달은 미국과 세계의 유대 공동체는 물론 미국 사회 전반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어떤 언론은 그녀를 ‘현대 유대교의 새 모습’을 대표하는 인물로 집중 조명하기도 했으며, <뉴스위크>는 2012년에 그녀를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랍비 50인’ 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센트럴시너고그는 안젤라 부흐달이 부임한 뒤로 지난 몇 년 간 회중의 규모가 거의 두 배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안젤라 부흐달과의 대화에는 필자와 한백교회 양미강 목사님* 이렇게 두 사람이 참석했다. 우리는 부흐달 칸토르와의 만남을 위해 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오후 센트럴시너고그 옆 블록의 커뮤니티센터 4층에 있는 부흐달 개인 집무실을 방문하였으며, 4시 30분부터 예배 시작 30분 전까지 약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혈통의 절반이 한국계라서 더욱 그랬겠지만, 따뜻한 인상, 친근한 태도, 활달한 목소리, 그리고 성직자다운 명료한 영어발음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질문지를 미리 준비해가기는 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정돈된 인터뷰라기보다는 잡담처럼 편하고 두서없는 대화가 되었다. 아래에 정리한 문답 형식 대화록은 녹취와 메모를 토대로 대화 내용 일부를 임의로 재구성한 것이다. 정리와 번역은 김윤성이 했다.

 

(문) 한국인 어머니와 유대인 아버지. 사람들이 당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 흔히 가장 먼저 또 가장 자주 언급하는 사항이다. 가족 얘기, 인생 얘기를 좀 들려 달라.
[답] 친가 쪽 뿌리는 루마니아의 유대인 집안이며, 미국으로 이민을 온 것은 몇 세대 전이었다고 한다. 외조부모님은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거기서 살다가 서로 만나서 결혼하셨고, 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해방 후에 조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정착하셨다. 일본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거의 본 적이 없으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독립운동 자금과 정보를 나르는 활동을 하셨고, 이 때문에 집에 계시는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뿌리를 찾아서>라는 TV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선조 중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있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한국에서 일하시던 중 어머니를 만나셨고, 나는 5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 그 후로 한동안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이 더 강했고, 미국 사회에도, 유대 공동체에도 온전히 합류하지를 못했다. 10살을 지나면서 비로소 또 다른 나, 즉 유대인이자 미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문) 어머니가 불교신자이시라고 하던데.
[답] 내가 랍비가 되기로 결심한 데에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신심에게서 받은 영향이 더 컸다. 물론 나에게는 한국 문화, 유대 문화, 미국 문화, 그리고 아버지의 영향과 어머니의 영향이 두루 섞여 있지만, 종교적 측면에서는 불자이신 어머니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외가 쪽 친척들은 모두 개신교다.

 

(문) 종교가 서로 다른 일가 친척이 모이면 어색하지 않은가?
[답] 사실, 외가 쪽 친척들과 만날 기회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에 종교의 차이로 인한 어색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모는 지금도 나에게 종종 개신교로 개종하라고 말씀하시고는 한다. (모두 웃음)

 

(문) 왜 개혁파 유대교에 속하게 되었나?
[답] 친가 쪽이 오래 전 유럽에서부터 이미 개혁파였기 때문에, 나도 유대 공동체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 자연스레 개혁파의 일원이 되었다.

(문) 유대교 개혁파와 여타 교파들의 차이가 무엇인가?
[답] 많은 교파가 있지만, 크게 세 교파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통파(Orthodox), 보수파(Conservative), 개혁파(Reform)다. 보수파는 다른 두 교파의 중간쯤 되므로 생략하고, 정통파와 개혁파의 차이만 말하자면, 핵심은 경전*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다. 정통파는 경전의 저자가 신 자신이며, 경전 내용은 하나도 빠짐없이 문자 그대로 모두 진리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개혁파는 경전이란 신의 영감을 받은 인간의 산물이며, 오랜 편집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따라서 역사적 맥락에 따라 항상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통파와 개혁파의 관계는 개신교의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관계,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문) 유대교에서 여성이나 성소수자의 처지는 어떠한가?
[답] 정통파는 여전히 여성에게 랍비 안수를 주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랍비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더러 있고 나름대로 계속 분투해 왔지만, 아직 랍비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보수파와 개혁파는 일찌감치 여성 랍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개혁파의 경우 41년 전에 (1972년) 처음으로 여성이 랍비 안수를 받았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교단이나 개인 간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유대교계 전반적으로 대체로 개방적인 편이다. 개혁파에서는 20~30년 전에 일찌감치, 보수파에서는 몇 년 전에, 성소수자들에게도 랍비 안수를 주기 시작했다. 정통파는 성소수자들에게 랍비 안수를 주지 않는다.

(문) 여성 랍비로서 어려움은 없는가?
[답] 아무리 개혁파라고 해도, 사실 여성 랍비에게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 일반에서 여성들의 성취를 가로막고 있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은 유대교 전반은 물론 심지어 개혁파 안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여성 랍비들은 이를 흔히 ‘스테인드글라스 천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론상으로나 제도상으로는 여성이라고 차별을 받거나 하지는 않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유대교에는 위계적인 총회 조직 같은 게 없기 때문에 교파 내에서 여성 랍비들의 역할이 딱히 제한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성 랍비가 큰 시너고그의 담임을 맡는 일은 여전히 거의 불가능하다. 가장 큰 이유는 아직도 여성이 가정과 자녀를 돌보면서 풀타임으로 랍비 일을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여기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우 예외적이고 운이 좋은 경우인데, 이곳 센트럴시너고그의 현 담임 랍비께서 몇 년 뒤에 은퇴하시면 내가 담임 직을 승계하기로 되어 있다.

(문) ‘칸토르’란 무엇이며, 예배에서 역할은 무엇인가?
[답] 유대교 예배에서는 교파를 불문하고 찬양이 매우 중요하다. 개혁파의 경우 칸토르의 역할이 특히 커서, 랍비는 강론만 하고, 예배의 시작부터 끝까지 찬양을 중심으로 예배 전체 과정을 이끄는 것은 칸토르다.

(문)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답] 우리는 맨해튼의 개신교 및 이슬람과 긴밀한 협조를 해오고 있다. 신학적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물론, 특히 홈리스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복지사업에서 함께 협력하고 있다.

(문) 오래 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선민(chosen people)’ 사상에 대해서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로부터 ‘선민’ 사상을 이어받은 뒤 이를 재해석해 스스로를 ‘새로운 선민’으로 규정했는데, 그리스도교 역사를 보면 ‘새로운 선민’이라는 자부심이 왜곡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오늘날 근본주의 개신교 진영에서는 ‘선민’ 사상을 심하게 왜곡시켜 종교적으로는 배타주의를, 민족적, 정치적으로는 쇼비니즘을 조장하고 있는 것 같다. 유대교에서는 어떤가?
[답] ‘선민’ 사상이 배타주의와 쇼비니즘으로 빠지기 십상이라는 것은 분명 사실이며, 유대교의 역사에서도 그런 오류가 많이 벌어져왔다. 하지만 개혁파는 ‘선민’ 사상을 현대적 맥락에서 새롭게 이해하려 하고 있다. 이를테면, 개혁파에서는 ‘선민’을 특권적 집단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신조(creed)’가 아니라 ‘행위(deed)’다. ‘선민’은 특권보다는 의무, 세상 속에서 윤리를 실천할 의무를 지닌 존재일 뿐이다. 상처 입은 세상을 ‘회복’(redemption)시키는 게 선민의 사명이다.

(문) 민감한 정치적 질문을 하나 드렸으면 한다. 엊그제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공격했다. 중동 문제,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과 외국의 유대인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는가? 또는 교파 간에 견해 차이가 있는가?
[답] 일단 이스라엘의 유대인들과 외국의 유대인들 사이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중동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 문제로부터 거리를 두기도, 다르게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그들에겐 이것이 단순히 신념이나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유대인들은 견해가 극과 극이다. 철저하게 이스라엘 편에서만 보려는 사람도 있고,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다르게 보려는 사람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견해 차이가 교파별 차이와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생각의 차이는 교파가 아니라 개인의 판단에 따른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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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토르[cantor]는 히브리어로 핫찬[hazzan], 독일지역 유대인의 히브리 방언인 이디쉬어로 크잔[khzan]이라고도 하는데, 유대교의 찬양 전문 성직자를 말한다. 유대교 예배에서는 찬양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며, 칸토르는 예배 시작부터 끝까지 독창도 하고 회중 찬양을 이끌기도 하면서 예배의 전체 흐름을 주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 양미강 목사님은 한신대 신학과 출신으로,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총무를 지냈으며, 이번 학기 컬럼비아대 인권연구소 방문연구원으로 와 있게 되어서 처음 만났다.
* 여기서 경전이란 모세5경인 ‘토라[Torah]’를 말한다.
* 부흐달은 한 남편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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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뉴욕에 방문중인 김윤성 교수의 안젤라 부흐달과의 인터뷰 글을 뉴스레터 길이에 맞게 줄인 것입니다. 전문은 김윤성 교수의 블로그(http://jssance.egloos.com/11065358)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김윤성_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부교수, 뉴욕 컬럼비아대 방문학자


yskim@hs.ac.kr

 

 

주공저로 <종교전쟁>, <동아시아 여신 신화와 여성 정체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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