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295호-2014년, 새해 인사드립니다(정진홍)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4. 4. 25. 15:05

 

 

                        2014년, 새해 인사드립니다

 

 

                                

 

2013.12.31   

 

    또 새해입니다. 마음짓도 몸짓도 일상과는 다르게 채색되고 움직입니다.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는 마음이 맑고 흐린 삶의 자취를 살피느라 분주했고, 밀린 일들을 서둘러 추스르느라 몸이 한가할 수 없던 지난 해 끝자락도 어느 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아쉽게, 그러나 설레며 새해에 들어섰습니다.

 

    이제는 거의 잊힌 ‘낡은 인사’가 되었습니다만 지난 해 지내고 새해를 맞는 어귀에서 우리는 늘 ‘송구영신(送舊迎新) 하십시오!’라든지 ‘송구영신하셨습니까?’ 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옛것 훌훌 털어 보내고 새것 환하고 반갑게 맞이하라’는 덕담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보다 더 절절한 희구를 담은 인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희구라기보다 더 강한 규범적인 엄격함이 그 속에 담겨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년에는 그 인사를 다른 분에게는 하지 못하고 저 스스로 자문(自問)하듯 이렇게 발언하곤 합니다. ‘낡은 것 버려야 비로소 새것 맞게 되는 것인데 너 그렇게 했느냐?’

 

 

    생각해보면, 그리고 우리가 다 겪어 알듯이, 새해는 거저 오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새해는 마지막 달력을 넘기면 저절로 내게서 펼쳐지는 ‘새로운 시간’이 아닙니다. 지난 세월을 끊고 버리지 않으면 새해가 와도 여전히 세월은 낡음의 지속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끊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좋든 그르든 사람들은 여전히 ‘지난날에 대한 연민’을 놓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아무리 새해가 와도 새해는 낡음이 점점 더 첩 쌓이는 것이 될 뿐, 그래서 그 낡음의 압력에 의해 새것이 새것으로 현존할 수 있는 터를 점점 낡음에 의해 빼앗기면서 새해는 자기를 발휘할 기회를 잃고 말뿐, 끝내 새해는 새해일 수 없는 세월로 굳어지면서 세월을 헤는 수자만 늘어가는 것으로 새해를 경험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해를 넘기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옛 것을 버리지 못하고 새해를 맞는 이러한 암담함을 저는 ‘미래의 지평이 열리지 않는 새해맞이’도 있는 거라고 묘사하고 싶기도 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성취한 것에 대한 긍지가 왜 없겠습니까? 기리 지키고 보존하려는 가치가 왜 없겠습니까? 아픈 일이지만 그것이 충분히 반면교사가 될 귀한 경험이라는 깨달음이 없을 까닭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을 새해가 되었다고 어찌 버릴 수 있겠느냐는 ‘귀한 의지(意志)’를 모른 채 해서는 안 됩니다. 새해에는 그것을 더 발전시켜 새 시간의 기반으로 삼고자 한다는 ‘진정한 선의(善意)’를 외면한다는 것은 실은 불경(不敬)한 일이기 조차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지속은 ‘이룬 것의 재연(再演)’이라는 ‘늪’을 지니고 있습니다. 진정한 지속은 이전 것의 재연이 아니라 ‘새로 지은 것을 이전의 이룸에 첨가하여’ 비로소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저 재연하려는 의지만으로 새것 앞에서 옛것을 지키느라 새것을 외면하는 일은 지난 세월의 늪에 빠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캐더린 벨(Catherine Bell)이던가요? ‘상상과 기억의 만남이 몸짓으로 번역되는 것이 의례’라고 말한 분이요. 공감이 됩니다. 결국 새해도 하나의 ‘의례’로 현존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새해 세배를 하면서 어떤 상상과 어떤 기억이 내 안에서 만나는 것을 경험했는지 자문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송구영신’이라는 기원으로 다듬었던 우리 새해 인사를 아예 이렇게 바꿔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새해에는 기억과 상상이 만나 펼치는 새 누리를 누리시길 바랍니다!’라고요.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의 새해,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고 격려해주시는 모든 분들의 새해가 새삼 기억과 상상력이 만나는 의례로부터 비롯하시길 빕니다.



 

                                                      2013.12.31
                                   (사)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정진홍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