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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은 종교를 정화한다


                            -대만의 불교문화에 대한 단상-

               

                                                      

      

2014.7.1

 

 

 

 <나눔이 필요한 세상, 기부문화의 확산>

 

      최근 기부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상하고 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이 풍요롭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IMF를 거치면서 심화된 사회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사회적 안전망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여론의 관심과 선거의 이슈로 부각되기도 하고, 대통령이나 총리 후보 등 사회의 지도층으로 출마하는 사람들이 재산의 일부를 기부하거나 재단을 만드는 뉴스가 신문지상을 종종 장식하기도 한다. 지도층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나서고 있다. 2013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15세 이상 한국인의 34.5%가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 전 국민의 1/3 이상이 기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기부가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합법적인 재산 보존과 증여 및 세금우대의 혜택 등을 위해 재산을 출연하는 위선적 기부와 남들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따라 하는 일률적이고 타율적인 기부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스스로 관심이 있는 곳을 찾아나서는 자발적 기부와 재능기부를 포함한 다양한 기부가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기부하는 사람들 중 41.1%가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서 기부한다고 답변했고, 26.9%가 기부단체나 직장 등의 요구를 받아서 기부한다고 했다. 이외에도 종교적 신념 때문에 기부한다는 답변은 7.9%, 개인적 신념 때문에 기부한다고 한 응답은 17.6%에 달했으며, 세금상의 혜택을 이유로 든 경우는 극히 미미했다. 종교적 신념과 개인적 신념까지 포함하면 기부자의 2/3(66.6%)에 달하는 사람들이 내적인 동기에 따라 자발적으로 기부한 것이다.

 

 

 

 <빛과 소금을 잃은 종교,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

 

      그런데 전체 기부금 지출 가운데 절대다수인 89.9%가 종교 기부금(월평균 41,962원)인 반면, 사회단체나 기타기관의 기부금은 10.1%(월평균 4,679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종교 기부금은 대부분 종교단체 운영을 위해 내는 헌금이지, 종교단체를 거쳐 가난한 이웃 구제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재물의 흐름은 종교에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법인데, 오히려 세상에서 종교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염불보다 잿밥을 앞세우고 하느님이 있어야 할 곳에 맘몬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종교는 세상을 정화(淨化)해야 한다. 종교는 세상이 타락으로 썩지 않고 어둠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때 온전한 사회적 역할을 감당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는 세상이 종교를 억지로 정화시키고 있다. 종교단체와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복지사업들의 비리와 탐욕이 방송사들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오르내린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세상을 정화해야 하는 종교가 불가사리처럼 세속적 물욕(物慾)으로 비대해져 가자, 도리어 세상이 종교를 정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종교를 정화하는 나눔의 실천>

 

   이제 조롱당하는 처지로 전락한 종교들이 사회적으로 회생하는 길은 ‘나눔’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방법뿐이다. 서양의 그리스도교는 어렵고 힘든 시절, 자선의 손길과 더불어 소망을 나누어 주는 이웃으로 다가와서 한국에 광범하게 정착했다. 그리고 열사의 땅 중동지역을 장악한 이슬람은 라마단이 끝날 때 연수입의 2.5%를 기부하는 ‘자카트’를 이슬람을 지탱하는 5대 기둥 중 하나로 삼았다. 모두 재물에 대한 애착으로 인한 죄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이웃과 함께 하는 자선의 기쁨과 영혼의 정화를 이루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눔의 실천과 영성의 계발은 둘이 아니다>

 

   대만의 불교문화는 최근 기부문화의 확산의 측면에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가치가 있다. 대만 사람들은 식사와 장례식에만 돈을 쓸 정도로 검소하지만 보시는 은행대출이라도 받아서 할 정도로 나눔의 실천이 유명하다. 본래 규모가 약했던 대만 불교는 산간의 출가자 중심의 사원 경영에서 세간의 재가자 중심의 사회 교화로 나아가면서 종교적 자비의 실천을 통해 사회적 관심과 주목을 받아 크게 교세가 성장했다.

    영성의 계발은 나눔의 실천으로부터 구현되었고,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근대화에 성공한 불교문화를 일구게 되었다. 예컨대, 대만 북동부를 대표하는 자제공덕회는 대만 최대의 불교계 자선/구호기구로서, 전세계 33개 국가에 150여개의 지부를 갖고 있으며, 58,000명이 넘는 봉사자와 508만 명에 이르는 후원자들이 있다. 1년 사업비만 10조원에 이르는 이 기구는 1966년 화련시장 증엄스님이 아줌마들에게 50전씩 이웃돕기성금을 모으면서 시작되었다. 증엄스님은 인순스님의 ‘인간불교’ 이념을 계승하여 인간자선, 의료, 교육, 인문(문화)의 4가지 커다란 사업[四大志業]을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에 따라 전개하면서, 국제구호, 골수기증, 사회봉사, 환경보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침으로써 자비의 사회적 실현에 성공하였다.

 

     한편, 나눔은 교육적 지성을 아우르는 영성 계발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중-남부지역의 불광산사와 중대산사는 경전 공부와 선수행도 철저하게 실천하면서 교육에 열성을 기울이고 있다. 예컨대, 34층 108m에 이르는 중대선사 건물은 불교의 교리를 예술적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와 과학까지 접목하려는 노력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공부와 수행을 철저하게 하고 있다.

 

     이렇듯 대만 불교는 자원봉사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를 통한 사회참여를 통해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영성 계발과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나눔 실천이 불이(不二)로 어우러지는 보살행을 적절하게 구현함으로써 대만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는 신도가 돈을 보시하고 스님은 법을 보시하는 재가자-출가자의 이분법적 틀을 넘어서서 중생 속 이타적 보살행이라는 ‘인간불교’의 모습을 통해, 교리와 실천이 분리되고 성직자와 신자의 이분법적 권위주의 위계질서가 고착화된 한국의 현대종교문화에 신선한 자극제가 될 만하다. 종교가 세상을 정화하지 못하고 세상이 종교를 정화시키는 현실에서 종교문화의 갱신은 나눔의 실천을 통해 영성과 신앙의 길이 열리는 길을 찾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영성과 실천, 신앙과 나눔은 둘이 아닌 것이다.

 

 

 


 박종천_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
baummensch@naver.com
논문으로 <조선 후기 유교적 가족질서의 확산과 의례적 양상>,<다산 예학의 경세론적 성격>,<상제례의 한국적 전개와 유교의례의 문화적 영향> 등이 있으며, 저서로 <<서울의 제사, 감사와 기원의 몸짓>>,<<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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