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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와 동물, 그리고 윤리적 성찰

                

                                                  

 

  2014.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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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기획하고 있는 종교문화비평총서의 세번째 권이

                                          《종교와 동물 그리고 윤리적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발간 되었습니다.

                                             이에 발간총서를 소개하며 뉴스레터에 서문을 싣습니다.

                                             이 책은 2011년 11월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주최한 「종교와 동물」

                                             심포지엄 결과를 보완하여 출간한 것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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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에 관한 소식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애써 외면하려 해도 가슴을 저미게 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하루가 멀다하지 않고 들려옵니다. 죽음의 현상은 늘 인간 곁에 있어 왔기에 죽음의 소식을 접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전쟁이나 역병으로 떼죽음을 겪었던 역사도 있었기에 주검의 많고 적음에서 슬픔의 강도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정작 두려운 것은, 죽음의 연유가 자연의 탓보다는 인간의 탓인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그러한 죽음의 사태가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인간이 만든 장치에 의해서 인간의 실수로 죽음을 겪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사회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더욱 비참한 일은 그러한 죽음이 일상이 되어, 죽음의 의미조차 증발해버리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러한 사태에서 인간은 묻기를 단념할 것이고, 묻지 않음은 사유의 정지를 의미할 뿐입니다.

 

 

        이 책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삼는 이유도 물음의 정지가 낳을 해악을 감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오늘날 인간에게 동물은 어떤 존재로 남아 있는지, 그리고 남아 있어야 하는지에 관한 물음과 해명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공장식 대량사육과 유통과 소비의 경로에서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무수한 가축들, 그리고 인간의 신의에 목숨이 달린 반려동물의 운명, 전염병 확산의 방지를 위해 산 채로 매장되는 돼지, 오리, 닭 등의 떼죽음, 대규모 목장과 목초지 확보를 위해 파헤쳐지는 숲과 나무들, 인간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위해서 고문과 같은 고통을 겪는 실험실의 동물들은 우리에게 진지한 물음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과연 인간과 동물의 이상적인 관계 맺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대해서 종교는 어떤 입장을 취해왔는지, 또한 동물과 공존하기 위한 윤리적 관점과 행위는 무엇인지 등의 고민들이 이 책의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서구 종교학계에서 동물에 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활발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환경오염, 자연 파괴, 지구 온난화, 생물 다양성의 붕괴 등과 같은 생태학적 문제가 부각되면서 생태계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을 모색하는 데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동물과 관련해서는 주요 종교 전통의 교학이나 신학의 관점에서 동물과 인간의 본성, 그리고 양자의 관계를 규명하면서 동물의 존재론적 이해를 조망하고, 또한 동물의 종교적 표상에 담긴 동물에 대한 인간의 관념과 태도를 분석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또한 일부에서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주장하면서 생태주의의 이념적 모색을 통해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논의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들에는 몇 가지 공통된 관점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고정불변하고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방식을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도의 종교문화에서 희생제의가 강조되던 베다종교의 시대에는 제물로서의 동물 살해가 허용되지만, 자이나교에서는 살생은 강력하게 금지됩니다. 동일한 문화권이라도 시대와 그 문화에 영향을 주는 의미체계에 따라 동물에 대한 관념과 동물과 인간의 관계 방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둘째, 무절제한 인간의 욕망과 쾌락에 대한 경계와 비판의 목소리입니다. 인간중심주의의 무분별하고 탐욕적인 삶의 태도와 방식이 인간 자신만이 아니라 지구 생태계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지점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셋째, 인간 외의 생명체를 생명이 없는 물건처럼 대하고 소비함으로써 만족과 쾌락을 추구하는 소비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염려입니다. 인간의 삶 깊숙한 곳에 자리를 차지하는 반려동물조차도 생산과 소비의 고리에 옥죄어 있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의 자연적 본능을 개량하거나 지워야하는, 생명의 상품화 혹은 물화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도 이러한 논의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서구 학계의 논의에서 그들의 삶의 현실이 반영되고 있듯이, 이 책의 실린 글들에는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에 대한 고민과 기존 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1부 ‘종교와 인간-동물의 경계짓기와 넘어서기’와 2부 ‘동물과 인간의 윤리적 관계 맺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 방식이 종교 전통들과 종교학과 철학에서 어떻게 논의되고, 또한 논의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둔 글들로 마련되었고, 2부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 방식에 관한 윤리적인 성찰과 실천을 모색하는 글로 짜여 있습니다.

 

 

        1부에서 장석만은 「종교와 동물, 그 연결점의 자리」에서 종교학의 풍토에서 동물에 관한 논의가 어떤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서구 학계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그 속에서 간과하고 있는 근대적 시각, 특히 종교와 세속과 동물과 인간의 이분법적 경계 설정에 담긴 서구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방원일은 「원시종교 이론에 나타난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19세기 토테미즘의 이론 형성에 동원되었던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토테미즘 이론이 동물에 대한 원주민의 태도를 근거로 원주민을 열등한 존재로 타자화하면서 구축되었음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전세재는 「포스트휴먼: 의인화와 동물 되기의 기법」에서 서구 역사에서 인간 이외의 종에 대한 배타적 경향의 진원지들을 살펴보고, 데리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을 통해 인간중심주의의 틀을 넘어서는 포스트휴먼의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곧 인간-동물의 경계를 횡단하는 새로운 존재 방식을 제시하려는 시도입니다. 「인도 종교에 나타난 동물 존중 태도」에서 이병욱은 인도의 종교문화는 아힘사(불살생)의 관념을 공유하면서도 종교 전통에 따른 세부적인 입장 차이를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의 문헌 분석을 통해서 상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형민은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동물윤리」에서 『바이블』에서 제시하는 하나님과 동물 및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검토하고, 동물에 관한 신학적 입장과 교회의 실천 과제를 논의합니다.

 

 

        2부에서 유기쁨은 「현대 한국 종교의 ‘생태영성’과 의례」에서 2000년대에 생태운동 현장에서 ‘생태영성’이 형성된 배경과 비인간동물에 관한 감수성이 생태영성과 의례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효과를 창출하는지를 사례 분석을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박상언은 「간디와 프랑켄슈터인, 그리고 채식주의의 노스탤지어」에서 19세기 영국채식주의와 간디의 사상을 검토하면서 영혼의 정화와 정치적 저항이 채식 행위에서 합류하는 지점을 밝히고, 타자-동물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한 도덕적 공감 혹은 도덕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채식주의의 윤리학적 근거」에서 김일방은 채식주의를 비판하는 입장들을 검토하고, 채식주의의 윤리적 정당성을 환경윤리학과 동물윤리학의 관점에서 세심히 논증하고 있습니다. 허남결은 「서양윤리의 동물권리 논의와 불교생명윤리의 입장 -‘동물개체의 도덕적 권리’를 중심으로」에서 동물에 대해서 도덕적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서양윤리학의 동물권 논의들을 분석하고 불교의 생명윤리에 입각한 현실적인 실천 방식을 제시합니다.

 

 

        여기 모인 글들은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닌, 물음의 시작입니다.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에게 가하는 고통과 상처, 그리고 억압적 태도를 문제 삼는 이유는, 우리가 타자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도덕적 공감과 실천의 소실을 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회적 약자가 비인간동물의 위치에 서서 고통과 아픔을 겪는 상황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강자가 약자에게 폭력을 가할 때 약자가 동물의 자리로 추락하는 사태를 직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동물과 인간의 관계 방식에 대한 학문적 검토와 윤리적 성찰은 윤리적인 동물로서 인간의 자리와 책임에 대한 물음과 직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엮은이 박상언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laetor@hanmail.net
논문으로 <'Beauty Will Save You': THe Myth and Ritual of Dieting in Korean Society>, <소전 정진홍의 몸짓 현상학에 나타난 의례연구 방법론 고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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